현행범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의원이 회기중 국회 동의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도록 한 소위 ‘불체포 특권’은 우리 헌법 제44조 제1항이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폐지 운운은 사실 쇼에 불과합니다. 결과적으로 입법기관인 국회가 스스로 헌법을 부정하자고 나서기보다는 그냥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거론하면서 이런 주장들을 합니다. 국회의원 월급은 도시근로자 평균임금(2023년기준 약 400만 원)으로 하자. 의원실 지원비(1억2백만원)를 모두 폐지하고 보좌진을 3명으로 줄이자.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에만 후원금을 1억5천만 원 까지 받을 수 있게 하고 그 밖의 후원금은 모두 폐지하자. 선거비용 환급도 없애자 따위입니다.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려면 그보다 더한 일인들 왜 못하겠습니끼가. 물론 그런 상황이 되면 국회의원 하겠다는 상머슴 찾기가 쉽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궁금합니다. 그렇게 특혜와 권한을 줄이면, 그들의 불성실과 나태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을까요? 너는 국민의 머슴이니 돈을 조금만 받고 열심히 주인을 위해 일하라고 하면 말을 잘 들을까요? 주인(국민)이 만족할 만큼의 성과를 바란다면, 머슴도 자부심을 느낄 정도의 대우는 해줘야 합니다. 여기다 ‘특혜와 권한’에 맞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정치・제도적 환경을 만들면 됩니다.
그렇다면 ‘특혜와 권한’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제도적 환경이란 무엇인가요? 헌법과 국회법이 명령하고 있는 국회의원의 임무인 입법, 예결산심사, 국정감사 등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합니다. 수타짜장 달인에게 무도 기르고, 돼지도 잡고, 양파 뽑아와서 손질하라고 시키면 안 됩니다. 미장일하는 사람에게 시멘트 만들어 오고, 강에 가서 좋은 모래 퍼오고, 물 길어오라고 시키면 안 됩니다. 머리가 다리 역할, 손 역할까지 해야 하면 머리와 손발이 뒤엉켜 엉망이 됩니다.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이 처한 환경이 그와 같습니다.
국회법이 명령하는 입법행위를 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쉼없이 토론해야 합니다. 예산안을 심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정부가 던져주는 엄청난 분량의 예산서와 결산서를 제대로 읽고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죽도록 공부해야 합니다. 정부 각 부처를 감시하고 견제하려면 정책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효과검증을 해봐야 합니다. 수많은 국민의 목소리도 성실하게 들어야 합니다. 국회의원 노릇 제대로 하려면 이렇게 4년 내내 죽자 살자 공부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국회의원들이 그럴 여유나 시간이 있긴 한가요.
우선 지역구의 온갖 행사에 불려 다녀야 합니다. 안 가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당장 욕을 합니다. 경조사에 얼굴 안 내밀면 사람 참 못 쓰겠다며 흉을 봅나다. 유력정치인이 하는 행사, 동료의원이 하는 행사에 눈도장 안 찍으면 제 잘난 맛에 사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당합니다. 대선, 지방선거 내내 자기 선거처럼 선거운동에 매달려야 하고, 조직 동원해야 하고, 이리저리 마지못해 불려 다녀야 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당내 행사에, 온갖 보여주기식 이벤트에도 불려 다녀야 합니다. 도대체 제대로 공부할 시간이 없습니다. 유능하고 멀쩡하던 사람이 국회만 들어오면 바보가 되는 근본적 원인이 여기에 있습니다.
특권을 내려놓으라고 닦달하기 이전에, 바로 이러한 잡다한 일에서 벗어나 제대로 공부하며 대안을 만들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국리민복을 위한 과제들을 찾아내 공부하며 쉼없이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길을 찾을 수 있는 기본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게 국회 개혁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다른 건 대부분 허접한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결국 국회 개혁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전문성 있는 국회, 생산성 있는 국회’ 만들기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지역구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만 합니다. 시·군·구의회 의원, 광역의원들은 왜 존재하는 사람들인가요. 역할을 제대로 배분해야만 합니다. 상임위 배정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해당 분야 전문성이 그 기준이 되어야만 합니다. 차라리 비례대표는, 전체의석 중 50%인 150석 정도를 분야별 전문가들로만 구성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하게 전문성을 기반으로 국가장래를 고심하는 ‘상원’을 두는 것도 고민할 때가 됐습니다. 특히 지방의원과 국회의원의 역할을 명확하게 법률로 정해, 지역 현안은 기초 및 광역의원이 책임지고, 국회의원은 그들과 소통하면서 양질의 입법, 효율적 예산 배정, 미래세대와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