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는 새로 전학 온 급장(반장) 엄석대가 등장합니다. 학급은 철저하게 엄석대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담임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런 엄석대를 훌륭한 아이라며 끼고돌았습니다. 석대는 그런 무한한 신뢰를 배경으로 폭력과 회유를 통해 학급에서 사실상 왕 노릇을 했습니다. 급우들은 그런 엄석대가 두렵기도 하거니와 다른 녀석들도 모두 군소리 없이 따랐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엄석대에게 충성했습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서울에서 새로 부임한 김 선생이 담임을 맡으면서 석대의 ‘화려한 날들’은 한순간에 오뉴월 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김 선생은 아이들이 ‘엄석대 체제’에서 그간 저질렀던 비겁함과, 앞으로 삶에서 교훈을 얻으라는 뜻에서 반 아이들 모두에게 5대씩 호된 매타작을 했습니다. 그런 후 김 선생은 아이들에게 때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줍니다.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너희들의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 몫을 뺏기고도 분한 줄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그것도 한 학급의 우등생이라는 너희들이….”
반장은 정당에 비유하자면 당 대표와 유사합니다. 같은 신분인 의원들이 투표로 뽑는다는 점도 그렇습니다. 학급에서 반장은 대부분 ‘품행이 방정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뽑힙니다. 아이들로부터 신망받는 반장이 되어야 급우들이 믿고 따릅니다. 과거에는 사납고 폭력적인 아이가 반장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그 경우는 담임선생 대신 아이들을 통제할 대리인으로 반장이 활용될 때입니다. 당을 이끌었던(망친) 어떤 이는 ‘엄석대형(型)’ 대표였습니다. 품행방정(品行方正)과는 무관하고, 온갖 수치스러운 흔적을 줄줄이 달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후보로 출마, 낙선했고, 곧바로 반장선거에 당선됐습니다.
당 대표건, 학교 반장이건 품성(品性)과 행실(行實)이 바르고 단정(端正)해야 함은 제1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총학생회장 선거(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품성과 행실은 바르지도 않았고 단정하지도 못했습니다. 검찰의 체포 영장에도 여러 번 방탄으로 막아섰고, 수시로 재판정에 불려 다니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만약 학급 반장이 이 정도라면 어땠을까요?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학급에서의 도덕적 기준이 반장에게 있다면, 정당에서의 도덕적 기준은 당 대표에게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정당사에서, 도덕적 기준이 완전히 망가진 경우를 본 적이 있었던가요.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입니다. ‘민주화’라는 공(功)을 내세워 그동안 도덕성을 앞세우던 당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망가졌습니다. 혁신하겠다며 임명한 사람들의 면면을 보노라면, ‘親엄석대派’가 대부분입니다. 안팎에서 ‘개혁난망(改革難望)’이란 탄식이 절로 나오던 이유입니다.
반장이 신뢰받지 못해 학급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반장을 갈아치우면 됩니다. 그게 상식입니다. 정당이 신뢰받지 못한다면, 당 대표를 갈아치우면 됩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친엄석대파’를 구성해 학급을 혁신하겠다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금방 다다를 지름길을 그냥 두고 지뢰가 곳곳에 매설된 길로 가겠다는 것은 같이 죽자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혁신을 위한 길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너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 사람만 솎아내면 혁신은 쉽게 따라옵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김 선생은 학생들을 매질한 후 이런 말을 보탭니다.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모두 교단 위에 손 들고 꿇어앉아 다시 한번 스스로를 반성하도록.”
어떤 정당의 구성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김 선생의 이 일갈을 깊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