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傷處)

by 권태윤


돌이켜보면, 나의 삶에도 온통 연기(演技)가 많았습니다. 이미 국민학교 1학년 때 두 살 어린 동생을 졸지에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척 친구들과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고, 날 영화관에 종종 데리고 가 게리 쿠퍼가 나오는 서부활극도 몰래 보여주시던 할머니를 국민학교 2학년 때 식중독으로 잃고서도 친구들과 총싸움을 하러 가 얼굴에 생채기가 생길 정도로 쏘다녔습니다.


술독에 빠져 사시던 아버지를 중학교 2학년 때 하루아침에 잃고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읍내에 심부름을 갔습니다. 몰래 산속에 들어가 누워있던 사방의 풀들이 다 뜯겨져 나갈 정도로 3시간 넘게 통곡하며 울부짖었지만, 집에 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밥을 다 먹고 꼴을 베러 갔습니다. 군대 가 있을 땐 큰형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변해버렸을 때에도 변함없이 산을 달리고 총을 쐈습니다.


세상물정 모르던 둘째 형이 결혼사기를 당해 무너졌을 때도, 나의 결혼을 앞두고 바로 위 형이 지하철공사장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참혹하게 주검이 되었을 때에도, 감기를 앓던 어머니가 두 달 만에 폐암으로 돌아가셨을 때에도 나는 산속에서, 화장실에서, 때로는 차안에서 소리 내 울었을 뿐 그 어디서도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동네 어르신들은 날 ‘보살’이라고 놀렸습니다. 항상 웃는다고 붙여준 별명입니다. 군대 가서도 웃는 얼굴이라고 맞기도 했습니다. 속에 상처가 깊을수록 나는 자꾸 웃었습니다. 그러면 아픔이 덜어지는 듯 했습니다. 지금도 화가 나면 잘 웃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냥 사람 좋은 아저씨인 줄 압니다. 나는 속이 시커멓게 타 버려 술을 마시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어머니는 생전에 늘 당신의 삶이 책 여러 권 분량은 족히 넘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참혹한 사건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기술은 ‘잊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잘 잊습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늘 나무랍니다. 아이들은 이런 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아버지”로 오해합니다. 잊지 않으면 단 한순간도 온전히 살 수 없었습니다.


살아보니 인생의 9할이 연기더군요. 차라리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그 순간이 오히려 가장 참모습에 부합하는 진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연기는 특정인들의 재능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치열하게 삶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입니다. 내가 나의 참모습을 보인 순간은 대취하여 미쳐 가면을 쓰지 못했을 때입니다.


나는 가면을 씁니다. 상처를 가리기 위해 붕대가 필요하듯, 마음의 통증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씁니다. 나는 행복을 연기합니다. 그러다보면 진짜 행복이 나를 가득 채울지도 모를 일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하나씩 늘어가는 무덤들은 살아있는 자가 감당해야 할 고통의 무게지만, 마침내 그런 무게도 다 이겨내고 훨훨 자유인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살아갑니다.


무더위가 가고 가을이 오면, 떠나간 이의 무덤들을 돌아보며 말하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고통받지 않겠다고, 이제는 과거가 아닌 미래만 보며 살겠다고, 그러다 어느 순간 저세상에서 다시 만나면 그래도 이 세상 덕분에 재미나게 살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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