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사과(謝過), 사죄(謝罪)의 필요충분 조건

by 권태윤

사전적 의미로, 사과(謝過)는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을, 사죄(謝罪)는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을 의미합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이나 깊이에 있어 차이가 많습니다. 물론, 같은 사과나 사죄라도 보는 이들의 눈에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지난 2020년8월19일, 당시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광주 5.18 민주묘지에서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1971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나치 전쟁범죄를 사죄한 독일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의 모습이 全세계적 감동을 주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무릎을 꿇은 모습은 동일했지만, 사죄가 주는 진정성과 감동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과이건 사죄이건 때가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버텼지만, 그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아무리 사죄를 한들 그것을 진정성 있는 사죄로 받아들일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때를 놓친 사과, 사죄는 안한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물론 올바르지 않은 사과 역시 분노를 자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이 없다고 우기거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지 않고 진실을 은폐하려 하거나, 일방적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면, 사과를 하고도 오히려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 그 순간만 모면해 보려는 하나마나한 사과는 용서는커녕 도리어 분노만 유발하는 역효과를 내게 됩니다.


'역설의 대가(prince of paradox)'로 불린 영국작가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Gilbert Keith Chesterton)은 “거만한 사과는 모욕(侮辱)과 같다(Haughty apology is another insult.)”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사과할 때는 쿨(cool)하게 제대로 사과하라”는 의미입니다.


더랩에이치 김호 대표와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역시,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에서 ‘사과의 충분조건 6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첫째, 사과한다고 말한 뒤 ‘하지만’이나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마라.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둘째,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라. 과오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셋째,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라. 사과를 했는데도 상대방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경우는, 사과에 책임 인정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충분한 보상책을 제시하라. 피해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면 더할 나위 없다.

다섯째,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여섯째, 쉽지 않지만 용서를 청하라.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다.


사과건 사죄건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번을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충분조건을 대입하면, 황제의전 논란 등에 대해 사과했던 분의 사과도 제대로 된 사과로 볼 수 없는 셈입니다, 김종인 前비대위원장이 백 번 무릎을 꿇고 사죄한들, 빌리 브란트가 단 한번 사죄한 것에 비할 수 있을까요? 사과건, 사죄건 하려면 제대로 하고, 하기 싫으면 차라리 안하는 게 낫습니다.


어디 정치판 뿐일까요. 잘못을 했다면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동료에게도 제대로 사괴하고, 사죄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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