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목적

by 권태윤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은 것은 사람의 기본적인 욕망입니다. 이런 욕망을 반영하듯 우리사회는 앞 다퉈 건강을 이야기 하고, 사람들은 무료 사은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처럼 필사적으로 뛰고 달립니다. 언젠가 채소가 사람에 좋다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이후 채소 값이 폭등하고 없어서 못 팔 정도가 된 적이 있습니다. 하기야 건강에 좋다면 온갖 것을 섭렵하는 우리들의 역기적인 탐욕에 비춰 본다면 채소를 즐기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한 철학자이자 레바논의 대표작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은 “신은 영혼을 위한 신전(神殿)으로써 우리들의 육신을 만들었으며, 그 신전은 신을 그 안에 모실 수 있을 만큼 튼튼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로마의 시인이었던 유베날리스(Decimus Junius, Juvenalis)는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유명한 말도 남겼습니다. 몸이 건강해야 건강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데 다른 의견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도대체 왜 내 자신이 건강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조건 건강을 외치거나, 그 목적이 다분히 육체적 욕망을 위한 경우가 많고, 정작 가꾸고 다듬어야 할 정신은 황폐하게 방치한 체 ‘좋은 몸매 만들기’에만 미쳐 있는 경우를 발견할 때면 정신없이 불어 닥치는 건강열풍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들은 몸에 좋은 것에 지나치게 정신을 빼앗기고 탐욕스럽게 달려듭니다. 붉은 포도주가 몸에 좋다는 보도가 나가면 금방 포도주가 동이 나고, 등 푸른 생선이 좋다고 하면 밥상엔 생선만 오르고, 곰쓸개가 몸에 좋다고 목숨을 걸고 쓸개즙 주사를 맞는 무지막지한 짓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사슴의 생피도 마구 빨아먹고, 뱀의 간도 꺼내 먹습니다. 그러나 몸에 나쁜 것들을 금하라는 소리에는 귀를 막습니다. 담배가 그렇게 나쁘다고 해도 흡연인구는 늘어나고, 술이 몸과 정신을 상하게 해도 음주인구와 술 소비량은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들의 건강이 망가지고 비만인구가 늘어만 가는 것은 탐욕에 있습니다. 혀를 만족시키는 달콤한 맛에 정신을 빼앗기고,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기피하니 자연히 몸은 비대해지고 숨이 가빠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놓고서 건강을 위한다며 온갖 약품을 섭취하고 지방을 뽑아내는 수술까지 받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먹는 것을 줄이면 될 것을 지나치게 먹어놓고 그것들을 소비하느라 다시 뛰고 달리는 어리석은 ‘다람쥐 달리기’를 계속합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며 새벽마다 달리기를 하던 어떤 전직대통령의 영향 탓인지, 건강을 위한다며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씩 운동을 하는 노인들도 많고, 아예 밥만 먹고서는 하루 종일 스포츠센터에서 소일하는 아주머니들도 많습니다. 전체가 10이라는 인생을 살며 절반인 5는 먹고 자는 일로 소비하고 다시 남은 절반을 뛰고 달리는 데 써버린다고 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잊어버린 체 ‘운동을 위한 운동’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아 붓는 인생이란 얼마나 허망한 짓인가 싶습니다.


언젠가 영국의 우주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운동하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라며 근위축증(筋萎縮症)으로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자신의 신체장애를 빗대어 우스개 소리를 한 기억이 납니다만, 그 말이 나에겐 결코 사소한 농담으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결국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없는, 단지 ‘건강을 위한 건강 챙기기’는 어리석은 짓일 뿐입니다. 게다가 건강한 몸을 만드는 목적이 육욕을 채우고 탐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까지 한다면, 그런 건강은 오히려 사회를 병들게 하는 폭력의 도구일 뿐입니다.


오래전 한 전문 ‘제비족’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제비족은 술은 물론이거니와 담배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러 여성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끗한 정신상태와 좋은 향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침마다 두어 시간씩 달리기를 하고 틈만 나면 스포츠센터에 들러 몸을 관리했는데, 그 이유란 것이 물론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몸은 건강한데 정신이 썩어있는 사례입니다. 물론 그 전문 제비족은 더욱 건강한 육체를 가진 또 다른 제비족에게 자기 아내를 빼앗겼고, 제비족 행세로 뜯어낸 돈도 몽땅 털려 폐인이 되다시피 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제정시대의 스토아 철학자였던 에픽테토스(Epiktetos)는 “생활에 있어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육체적인 것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음식을 탐한다든지, 또는 오락과 유흥에 몰두한다든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품성을 낮추는 결과가 된다. 사람은 그의 많은 시간과 행동을, 정신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탐욕을 채우기 위한 몸만들기는 정신은 물론이요 결국 육체마저 시들게 만들고 맙니다.


육체의 힘은 영혼이 주는 충격을 견뎌낼 정도로 강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강한 육체를 가진 사람도 정신이 병들면 쉽게 쓰러지고 맙니다. “육체를 조종하는 것이 정신일진대 정신이 정도(正道)를 생각하고 있다면 육체는 자연히 정도를 걷게 된다.”는 명나라 말기 홍자성(洪自誠)의 어록인 『채근담(菜根譚)』의 교훈은 그냥 흘려버릴 말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몸의 아홉 구멍에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백 천 가지 부스럼 덩어리의 엷은 가죽 주머니에 싸인 우리 몸엔 피고름이 가득 담긴 뭉치이므로 조금도 아까워 할 것이 못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몸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진정한 공부의 시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한 건강, 몸을 위한 건강에 매달리는 치열한 운동 보다는, 욕심을 줄이고 지켜야 할 정신의 가치들을 지키는 노력들이 더욱 소중하단 생각입니다. 생사(生死)의 갈림길에서 결국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강한 정신의 힘이었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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