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들> 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넘어 헌신할 수 있는 어떤 것, 희생해도 될 어떤 목적을 지향해야만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은 '역사적 사명'을 가지고 임해야 할 집단적인 것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희생하라는 말을 듣게 되며, 그렇게 하면 훌륭한 거래를 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희생의 결과 명예와 명성을 얻게 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영웅, 곧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이요, 작은 위험을 무릅쓴 대가로 큰 보상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극소수 사람들만의 가치가 인정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버림받는 시대의 미심쩍은 도덕률이요, 역사교과서에 한 자리 차지할 기회를 가진 정치적 귀족이나 지적 귀족의 도덕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강요된 희생은 단호히 반대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가 개입된 선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근 북한 김정은이 러시아전쟁에 병사들을 내몰고 그들의 희생을 영웅대접 하는 모습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개인이 스스로의 소명의식에 근거에 희생적인 선택을 하는 행위를 '정치적 귀족이나 지적 귀족의 도덕률', '극소수 사람들만의 가치가 인정되고 평범한 사람들은 버림받는 시대의 미심쩍은 도덕률'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의로운 희생은, 존엄한 한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당당하고 선명한 자기 의지의 실천이 아닐까요? 아마도 진정한 희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그 스스로 그 어떤 보상이나 명예, 인정도 바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