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X-파일’이란 것들을 만드는 자들의 이면(裏面)에는 둘 중 하나가 숨어있습니다.
‘공포(恐怖)’ 또는 ‘모략(謀略)’이 그것입니다.
상대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악마화하여 차도살인(借刀殺人) 하려는 수작이거나, 정상적으로 이기기 어려우니 비겁하게 옆구리에 비수(匕首)를 꽂겠다는 사악한 수작입니다.
이걸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드라마에 비유하자면 ‘완전한 허구’이거나, 실화에 바탕을 둔 ‘유사한 허구’입니다. 어떤 것이든 100% 팩트가 아니고, 가공(加工)된 것입니다. 문제가 되면 빠져나가는 방식은 하입니다.
‘아니면 말고’
물론 ‘전쟁’에서의 전략과 전술은 다양합니다. 어디 36計만 있을까요. 맨주먹으로 정정당당하게 일대일로 붙는 방법만 있는 게 아닙니다. 몰래 눈에 흙을 뿌리기도 하고, 흉기를 숨겼다가 써먹는 수도 있습니다. 별의별 술수가 동원됩니다.
그게 소위 ‘양아치들의 전쟁’입니다. 사시미칼, 쇠파이프는 예사입니다. 우리 정치와 선거가 이렇게 ‘양아치 판’이 되면 쓰겠습니까. 과거 2002년 대선에서 동원된 ‘김대업 병풍조작’ 사건도 소위 ‘양아치’들의 술수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양아치 전법’이 매우 효과적이라는데 있습니다. 더러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결정적 한 수가 되기도 됩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양아치 짓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
눈앞의 승리에 눈이 멀면 理性을 잃습니다. 양아치를 능가하는 악마가 되는 것입니다. 좋은 나라 만들어 보겠다는 경쟁을, 나라 망치는 병폐로 만들면 안됩니다.
宋나라 때 소식(蘇軾)이 지은 ‘제서림벽(題西林壁)’이란 시가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不識廬山真面目, 只緣身在此山中(부식려산진면목, 지연신재차산중)’
‘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 내 몸이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대상(政爭)의 안에 있을 때는 사물의 진상을 정확히 인식할 수 없습니다.
이성을 되찾고 좀 더 멀리 떨어져서 젠틀하게 싸워야 합니다.
그러자면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너저분한 탐욕의 구조도 좀 부숴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정치란 게 좀 더 넉넉하고 낭만이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