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벌이 공화국

by 권태윤

대한민국을 ‘사고 공화국’이라고들 합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고도 워낙 자주 일어나지만 한번 났다하면 물적, 인적 피해가 막대합니다. 이렇게 재난을 수도 없이 반복하면서도 정부당국이나 언론들은 언제나 몇 달은커녕 며칠도 못되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이건 사실상의 집단치매 현상입니다.


다만 한 가지 잊어버리지 않고 얄밉게 되풀이하는 짓이 성금모금입니다. 사고가 날 때만 당국과 언론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신파극을 연출하고, 동정심 많은 서민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신속하게 호주머니를 털어갑니다. 물론 그 돈을 어디다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마치 “너희들은 돈이나 내면 되는 멍텅구리들이야”하고 비웃는 듯 합니다. 일년 내내 이처럼 성금을 받아내는 나라라고 해서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를 ‘성금공화국’이라고도 하고, 아예 ‘구걸공화국’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늘 사고만 생기면 성금으로 입막음 하려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모금도 아예 습관이 되어 기술만 늘었는지 서민들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술은 수준급입니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도 정부가 제도적으로 도울 생각은 않고 방송에 내보내 국민을 상대로 구걸을 하게 합니다. 중병에 걸린 가난한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내보내며 성금을 요구하고, 축구꿈나무를 키우는 일에도 성금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물난리 났다, 불났다, 가뭄이다 해서 그때마다 서민들 호주머니, 어려운 기업들 푼돈 털어 갑니다. 실직자가 생겨도 성금이요, 베트남 양민학살자를 돕자는 것도 성금이요, 나라를 부도내고선 사연담긴 반지까지 내놓으라고 손을 내밉니다. 도대체 이런 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실정에 대한 책임을 몽땅 국민에게 떠넘기는 정부가 양심이 있는 정부입니까. 애국심은 국가중심의 구걸행위를 교묘하게 속이는 포장술에 불과합니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해마다, 일 터질 때마다 손을 내민다면 그런 정부는 무엇에 쓰기 위해 필요할까요.


그러면서도 정부는 늘 국민을 위한다고, 서민을 위한다고 떠듭니다. 언론은 사고를 예방하지 못하는 정부를 혼내는 일보다 성금모금에 요란을 떱니다. 국민을 위해 경마장이니 카지노니 하는 도박장을 만들어 인간성과 가정을 여지없이 파괴시키고, 국민을 위한다며 담배사업을 전매해 세금은 왕창 뜯어가면서 오히려 건강은 무시하고, 그것도 모자라 ‘국민들의 인생을 역전시켜 주겠다.’는 사탕발림으로 로또복권이란 것을 만들어 서민 호주머니를 털어갑니다. 이건 숫제 국민을 ‘봉’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민족이 희망이 있는 씨알’이라면서 그 이유로 ‘착한 마음씨’를 꼽았습니다. “씨알의 마음에 선함이 있으니, 언젠가는 우리가 새 시대를 열어가는 주역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정부와 권력, 언론이 함선생의 이 말씀을 잊지 않아서일까요? 하지만 사람 좋다고 언제까지 등쳐먹고 이용해먹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사기꾼이거나 도둑놈 심보입니다. 이 땅의 백성이 언제까지 착한 마음에 동정심 잃지 않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성금모금에 이용당할 것이라고 믿다가는 큰 코 다칠 것입니다.


성금이 정말 제 뜻대로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껏 낼 수 있는 돈이 되려면 당연히 예방적 목적에 집중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해마다 물난리, 가뭄, 화재로 숱한 사람들이 생목숨과 재산을 잃는 한심한 현실을 근본부터 뜯어고치는 데에 쓰여야 합니다. 권력이 민생을 외면하고 딴 짓에나 열을 올리고, 관리들이 제 할 일을 옳게 하지 않으면서, 때마다 국민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염치없는 ‘국가 앵벌이’요 도적질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리석은 게 백성이라고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우려먹기만 할 것입니까.


그래도 그렇게 성금을 걷고 싶어 안달이라면 차라리 ‘예방기금’을 조성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부실한 제방도 고치고, 낡은 전철도 제 새끼 목숨 생각하듯 해서 나은 것으로 바꾸고, 교육도 내실 있게 바꿔야 합니다. 싸구려 지식 주입하느라 헛돈 쓰지 말고 내 아이, 우리 국민 생목숨이나 온전히 보존할 수 있는 교육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다양한 안전교육, 생존교육부터 제대로 시키자는 말입니다. 안전을 보장받기는커녕 항상 알아서 자기목숨 보존해야 하는 사고공화국에서 사람노릇이라도 하려면 우선 살아남고 볼 일입니다. 영재고 천재고 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오늘도 무사히’를 중얼거리며 이 땅에서 살아야만 하는 국민에게 언제까지 성금모금 타령만 할 것인지 이젠 정말 정부가 답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재난배상책임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 죽은 뒤에 그깟 배상금이 무슨 소용입니까. 예방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언론도 무뇌(無腦)집단처럼 사고 때마다 성금모금 떠들기 보다는, 정말 우리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감시하는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정당하게 세금 내는 국민들로서는, 이웃의 고통을 보고 측은지심에 성금을 내면서도 분노가 차오른다는 사실을 위정자들은 과연 알기나 하는 것일까요? 어렵고 힘든 이웃을 돕고자 하는 국민의 선한 마음을 더이상 시험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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