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고뇌(苦惱)

by 권태윤

우리 정치인들은 자칭 ‘고뇌에 찬 결단’이란 걸 많이 합니다. 사실 ‘고뇌에 찬 결단’이란 것은 치열한 괴로움과 자기성찰을 통해 옳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 정치인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고뇌는커녕 ‘잔머리 굴리기’으로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왜 그토록 환멸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면서까지 속 보이는 선택에 주저함이 없을까요.


물론 ‘권력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클 것입니다. 단 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매운 김치를 먹는 일이 쉽지 않듯, 권력의 달콤함을 맛본 정치인들이 그것을 쉽게 포기하는 일도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인간은 누구에게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가장 귀한 것들을 잃을까봐 두려워한다.


성경에도 두려움에 관해 1,500개 이상의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루마니아의 공산체제에서 박해를 받던 리처드 범브란트 목사는, 옥중에서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365번 있음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년 내내 사람들이 두려움에 쌓여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매일같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특히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큽니다. 대의명분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상실의 두려움을 다른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소수당에서 다수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것도 권력과 돈이라는 ‘다수당 프리미엄’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탓이요, 양지의 따뜻하고 넉넉한 여유와 느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 정치인들은 권력을 ‘행사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권력과 지위를 오로지 ‘누리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춥고 배고픈 야당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그것을 경험하기 싫어합니다. 마찬가지로 따뜻하고 배부른 여당생활에 길들여진 ‘가축 정치인’들은 ‘야생(野生) 정치인’으로 내몰리는 것은 곧 죽음과도 같다고 여깁니다. 당연히 정치권력은 봉사의 도구가 아니라,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하는 ‘생존의 도구’ 쯤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만큼 신나고 재미나는 직책은 없다”라고 말합니다. 존경은커녕 욕설만 듣는 국회의원이란 직책이,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신나는 자리로 꼽히게 된 것은 왜일까요. 그것은 물론 우리 국회가, 국민을 위해 고민하고 봉사하는 공간이 아니라, 열심히 놀고먹을 수 있는 ‘한량들의 놀이터’ 쯤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더할 수 없이 신나는 직책이라고들 합니다. 4년 동안 놀고먹어도, 온갖 비리와 자격미달에 시달려도, 선거 때 줄 잘 서서 지역감정에만 편승하면 무조건 당선이니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게다가 골프치기 위해 외유를 가더라도 국가에서, 그리고 해당 상임위 산하기관들에서 알아서 두둑이 여비를 챙겨주는 사례도 있습니다. 짜증나면 보좌진들에게 화풀이 하고, 더 심심하면 본회의장이나 상임위장에서 고함지르고 욕설하며, 더러 몸싸움도 즐길 수도 있습니다. 미운 놈 있으면 면책특권을 이용해 신나게 비난하고 중상모략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 국회의원이라면 즐길 수 있는 빗나간 ‘권력의 재미’는 너무도 많습니다.


하지만 낙선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돈 많은 사람, 돌아갈 곳이 든든한 사람들도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사실에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권력의 달콤함은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고, 상실과 고독의 두려움은 그만큼 큽니다. 실제로 낙선한 정치인의 경우 눈에 띄게 늙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입니다. 이러니 주변의 비난을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양심의 배신과 원칙의 포기에 대한 비난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별 볼일 없는 잔소리에 불과한 셈입니다.


‘존재를 잃어버리면 가슴을 잃는 것이다. 가슴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잃는 것이다. 세상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정치에 있어 다수당과 소수당, 여당과 야당, 원내와 원외, 주류와 비주류 따위의 관계는 ‘많이 가짐과 적게 가짐’이 아니라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로 구분되어 왔습니다. 그러니 전부가 아니면 전무인 살벌한 정치게임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전부를 가지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이 진정으로 간과하는 큰 문제는, 그 잃어버리는 것이 ‘권력’ 뿐인 줄로만 안다는 점입니다. 사실 그들이 느끼는 상실의 두려움이란 것도 실상은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배신과 야합, 양지 찾아가기, 무원칙 따위를 바탕으로 ‘전부’가 보장된 권력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정작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실’인지 모른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양심을 잃어버린 인간은 이미 인간이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1988년, 야당세력을 결집해 국민민주연맹을 결성하고 미얀마의 민주화투쟁을 이끈 아웅산 수지(Aung San Suu Kyi) 여사는 자신의 책 『공포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에서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공포”라고 말합니다. “권력상실에 대한 공포가 권력을 행사하는 자를 타락시키고 권력의 채찍에 대한 공포가 권력에 예속된 자를 타락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러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진정한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는 신성한 윤리의 원칙이 존재한다는 것과, 역사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진보한다는 강한 믿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공간에서 찰나의 시간만큼 사는 것입니다. 사는 것은 죽음이 있기에 값진 것이고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간의 권력상실이 두려워 원칙을 포기하고 양심을 포기한다면 그는 이미 죽은 자와 같습니다. 녹슨 불발탄은 이미 폭탄이 아닙니다. 진짜 상실의 두려움은 거기에서 느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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