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은 귀한 것이기도 하고, 흔한 것이기도 합니다.
거울을 보고 진짜를 알기란 쉬운 일이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진짜 거울은 유리로 만든 거울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울입니다.
내가 묻는 대로 답해주는 ‘메아리 거울’이 아니라,
내가 보기 싫어하는 나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진실의 거울’입니다.
그대는 그런 거울을 가졌는지요?
당 태종(唐太宗) 때의 명신 위징(魏徵)은
특히 직간(直諫)을 잘하여 임금을 적극 보필(輔弼)했습니다.
그가 죽은 뒤에 태종이 한번은 조정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르게 할 수 있고(以銅爲鑑 可正衣冠)
옛일을 거울로 삼으면 흥망성쇠를 알 수 있으며(以古爲鑑 可知興替)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밝힐 수 있는데(以人爲鑑 可明得失)
내가 일찍이 이 세 가지 거울을 다 가져서 속으로 나의 과실을 방지했는데(朕嘗保此三鑑 內防己過)
지금은 위징이 죽고 없으니 한 거울이 없어진 셈이다.(今魏徵逝 一鑑亡矣)”
여기서, 거울은 '현명한 재상'을 의미합니다.
북송시대 구양수(歐陽修)의 <신당서(新唐書)>에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망한 권력자들은, 단 한명의 진정한 ‘거울’도 가져보지 못한 셈입니다.
천하에 ‘거울’이 없어서가 아니라, 거울을 알아보는 눈을 갖지 못했거나,
아예 진실의 거울은 전부 내다버리고, 거짓 거울만 가까이 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도 가짜 거울들은 서로를 손가락질 하느라 날을 새고 있습니다.
구치소 안이나 밖이나 참으로 한심스런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