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

by 권태윤


태어남이 일상이듯, 죽음도 일상입니다. 5년전 장모님 돌아가신 날은 빗줄기 사이로 하늘도 우중충한 오후였습니다. 상복 입고 따라간 화장장(火葬場)에서 삼베로 동여진 관은 소각로로 들어갔고, 이내 하얀 재와 얼마간의 뼛조각 흔적들만 남았습니다. 출생과 사망, 존재와 부존재, 오는 일과 가는 순간은 기쁨과 슬픔, 기억과 망각 그 어디쯤에서 어지러이 흔들렸습니다. 이별은 고작 그렇게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태어나 살아오면서 지켜본 가족들의 죽음은 항상 삶의 덧없음을 거듭해서 상기시킨 순간들이었습니다. 태어난 순간 이 세상에 이미 없었던 할아버지, 친할머니를 제외하고, 식중독으로 급작스레 돌아가신 새할머니의 주검을 곁에서 봤고,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 어머니 품에서 가늘게 죽어가는 모습을 봤고, 아침에 병원에 가셨다가 저녁에 주검으로 귀가하신 아버지를 품었고, 사고로 인해 심폐소생술 직후 숨진 세살 위 형, 여덟살 위 형, 열살 위 형의 주검을 안고 통곡했고, 폐암으로 한 달 반만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주검을 안았습니다. 떠난 이가 남겨진 이보다 더 많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런 숱한 죽음과 주검들 건너 삶과 생명은 여전히 소란스럽고 악착스럽습니다. 남겨진 자들은 돈을 두고 다투고, 사랑의 크기를 재며 다투고, 더 많은 욕망을 위해 분주하고, 미움과 분노로 몸부림치며 아웅다웅, 비틀비틀 위태롭고 날카롭게 살아갑니다. 거친 볼에 남은 눈물자국 반대편에 분노와 미움의 손가락질이 여전하단 사실은 슬프고 절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주검의 뒤편에서도 우리의 망각은 잔인하게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허망함, 나약함, 쓸쓸함, 외로움 따위는 마치 질긴 암덩어리처럼 잘도 자랍니다. 마음의 울타리는 자꾸만 낡아가고, 포기와 절망을 부추기는 유혹의 목소리는 커져만 갑니다. 생명은 질긴 듯 하지만 여리고, 인간은 강함을 가장하지만 작고 나약합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와 갈 것인가. 기댈 곳 없는 위태로운 새벽 갈림길에서 사내들은 날마다 몸서리칩니다.


깜깜한 어둠 속을 혼자서 걷다 보면, 두렵고 막막함에 온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그럼에도 앞을 향해 무거운 짐 지고 걸어야만 하는 사내의 길은 낯설고도 비장합니다. 산 자의 운명이요, 살아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게라 여겨보지만, 서러운 마음은 숨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먼 길 떠날 나그네의 운명이니 욕심을 덜어내고 몸을 가벼이 할 것, 미움과 분노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남김없이 사랑하고 용서하며 영혼을 풍요롭게 할 것. 여생의 숙제는 오직 그것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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