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휴일저녁에 아내와 이런저런 쓰레기들을 모아 분리수거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종이상자는 종이상자대로, 비닐봉지는 비닐봉지대로, 스티로폼은 스티로폼대로 모으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병도 맥주병, 소주병 등은 따로 표시된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잡병(雜甁)’이라 표시된 곳이 있습니다.
‘잡병(雜甁)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들도 엄연히 사람이 지어준 참기름병, 간장병 따위의 이름이 있는데, 왜 ‘잡병(雜甁)’으로 매도하고 한 곳에 쓸어 담듯 하는 것일까요. 사람도 ‘잡놈’, ‘잡것’이라고 하면 기분 나쁘고, 들판의 풀도 ‘잡초(雜草)’라 하면 좋아할까요. 하긴 이름을 가진 숫한 나무들도 그저 ‘잡목(雜木)’이라 하니, 인간의 눈엔 크고 잘난 것들의 이름만 보이고, 작고 볼품없는 것들은 그저 ‘잡(雜)’이라는 글자 하나에 다 쓸어 담아 버리니 참 ‘잡종(雜種)’들입니다.
‘저 놈들도 다들 이름이 있는데, 잡병(雜甁)이라고 하면 얼마나 자존심 상할까요?’
혼자 말처럼 툭 내뱉으니 아내가 실없는 소리 한다는 듯 웃습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세상은 그 잘난 몇 놈만이 아니라, 수많은 잡것인 민초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습니다. 요즘은 쌀도 흰쌀 보다는 ‘잡곡(雜穀)’이 더 사랑받는 세상입니다. 잡것들을 무시하지 맙시다. 그들이 나라도 지키고, 피땀 흘려 들판을 일궈 고관대작(高官大爵)들도 먹여 살립니다.
아이들의 타고난 자질이 잡병 정도 밖에 안 되더라도, 스스로의 삶을 한탄하기 보다는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세상의 소금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은 가는 길이 다들 다릅니다. 모두가 양주병, 소주병, 맥주병만 하겠다면 간장은 어디에 담고, 고춧가루는 어디에 담을 것이며, 간장과 된장은 또 어디에 담아 쓸 것인가요.
잡것을 사랑합시다. 그들이 세상의 소금이고, 그런 소금의 가치를 제대로 깨닫는 자가 만백성의 임금이 됩니다. 그런 자가 진짜 군주입니다. 정치라고 어디 다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