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는 중요한 법안 하나를 폐기시켰습니다. 정부가 의원입법 형식을 빌려 제출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입니다. 이 법안은 재건축아파트 소유자들에게 2년 실거주 의무조항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이 법안이 폐기된 후 마치 자신들이 아량을 베풀어 이뤄진 것처럼 ‘양보’라는 표현을 담은 보도자료까지 배포했습니다. 황당무계한 ‘거짓말’입니다.
당시 국토부는 이 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끝까지 애썼고, 자신들의 주장을 ‘양보’한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국민과 언론은, 당시 국토법안소위 위원이던 모 의원의 강력한 반대로 이 법안을 폐기시킨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진실은 당시 법안심사 속기록에 그대로 실려 있습니다. 이 법안 폐기로 두 달 만에 강남 전세 물량이 크게 늘었다는 언론보도가 잇따랐습니다.해당의원은 지난 2020년 예산안 심사과정에서도 야당의원이면서 오히려 여당과 정부를 설득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의 지하철 노후 차량 교체예산을 사상 처음으로 반영했습니다. 서민의 발인 지하철이 무료승차로 인한 손실 누적으로 인해 노후 차량도 적기에 교체하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여당과 정부를 설득해 개선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국회의원 하는 맛, 나아가 국회의 맛입니다. 국회의원이 가진 ‘맛’을 제대로 알려면, 자신이 국민을 대리해 입법권, 예산심사권, 국정감사권을 가진 강력한 헌법기관이라는 자긍심을 한시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치열한 공부, 고통받는 민생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 국가 미래에 대한 깊은 사색이 기본적으로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간 많은 국회의원이 언론의 관심에서 비켜나 있는 숱한 문제에 대한 정밀한 분석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흔히 ‘오세훈 법’이라고 부르는 공직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우리 정치나 선거문화가 한층 선진화되었음은 물론입니다. 비록 과잉입법이라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어린이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발의되어 통과된 소위 <민식이법(도로교통법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어린이 교통사고 감소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민식이법을 제안한 16명 중 무려 12명이 21대 총선에서 당선됐었습니다. 불출마자 2명을 제외하면 14명 중 12명이 당선된 셈입니다.
이렇게 언론과 사회의 조명을 받는 입법도 있지만, 법안의 내용과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법안이 대다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이 국회의원의 맛, 국회의 맛입니다.
국민 다수의 반대 여론, 정치적 불리함과 손해에도 불구하고 정치생명을 걸고 국가의 미래나 국민의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은 반드시 해내는 것은 국회의원의 멋, 국회의 멋입니다.
과거 유승민 전의원이 새누리당 원내대표시절 강력하게 추진했던 공무원연금 제도개혁은, 100% 만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박근혜 정권이 만든 많지 않은 공적 중 하나로 꼽힙니다. 사민당-녹색당 연정이던 독일 제7대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때 4가지 입법으로 진행된 <하르츠 개혁(Hartz-Konzept)>은 독일 의회가 만든 멋이입니다. 당시 심각한 실업률을 감축시키기 위해 임시직 고용을 증진하기 위한 규제 완화, 소규모 소득의 일자리 창출 등을 추진해 독일이 부강해지는 데 성공했지만, 슈뢰더 정부는 결국 정권을 잃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성공과 실패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것이 ‘용기있는 개혁’이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선진 국회가 되려면 이런 멋진 정치인들이 다수를 차지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국회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흔히 국회의원에 대한 비용과 효용성을 따져 ‘국회 무용론’을 말하는 국민이 많지만, 사실 국회의원 1인이 불요불급한 예산 10억 원씩만 삭감해도 연간 3천억원 가까이 줄일 수 있고, 낭비된 예산을 찾아내 삭감하는 부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역구 예산도 사실 국회의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고 보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제대로 된 ‘맛’과 ‘멋’을 보여주는 정치인을 찾아내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것이 주권자의 의무이고, 이것이 또한 진정한 ‘국민의 맛’과 ‘멋’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