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公職)만큼 무겁고 두려운 자리도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예(公僕)처럼 일해야만 하는 자리입니다.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감시하는 눈이 사방에 생겨납니다. 그만큼 자유가 제한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제대로 된 사람들은 공직 제안을 받으면 고사(固辭)함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공직이 주는 무게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제안을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이 공직을 탐하는 자들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공직을 무한봉사와 자기희생의 자리가 아니라, 꿀을 빠는 자리로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직을 가문의 영광, 단꿀을 빨 수 있는 자리로 여기는 자들이 이끄는 공직사회가 제 역할을 할 리 만무합니다. 특히 개인과 가정사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인사청문을 감내하고서라도 그 직을 탐하는 자들이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할까요.
입으로야 위국헌신(爲國獻身)을 말하지만, 감추고 싶은 개인의 이력까지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세를 ‘탐욕’이란 단어 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나만큼 더럽지 않은 자들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게 그들의 속내겠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그렇게 더럽지는 않습니다. 보통의 더러운 자들은 여간해선 관직에 나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주 철면피도 있긴 하지만 그게 상식의 세상입니다. ‘늘공’이야 시험을 쳐서 들어오니 예외로 봐도 되겠습니다. 문제는 ‘어공’입니다. 기본적으로 공직자로서의 기본도 안된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어설프게 선거판에 기웃거린 연줄로 고위공직에 오르고, 공공기관의 기관장, 임원을 차지하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조직의 기강이 바로잡힐 수가 없습니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입니다.
국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특히 국회 보좌진은 ‘어공’의 산실입니다. 선거판에서 굴러먹다 어느 날 갑자기 공무원이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과거에는 국회의원의 자식, 친인척도 하루아침에 ‘어쩌다 공무원’이 됐습니다. 이러니 공직에 대한 소명 의식이 있을 턱이 없습니다. 불법과 탈법에 대한 문제의식도 당연히 부족합니다. 갑자기 얻은 자리에 앉아 ‘늘공’을 무시하고,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소위 갑질을 서슴지 않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국회경력이 짧은 어떤 보좌관은 재직 중에 자식 둘을 퇴직 전에 서둘러 결혼시켰습니다. 온갖 산하 공공기관에 청첩장을 돌렸습니다. 청첩장 봉투 만드는 데 의원실 보좌진이 총동원됐습니다. 그러고도 수치심이 없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이런 자들이 법을 만들고, 정부 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한답시고 설치니 그 꼴이 얼마나 가관인가요.
과거 어떤 경찰직 고위공무원은 자기 아들 결혼을 시킨다며 모든 국회의원실에 팩스로 청첩장을 돌렸습니다. 그런 행위가 공직자로서 적절한지를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자기 허락을 받지 않고 보냈다’고 변명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늘공’마저 이런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 ‘어공’들은 오죽할까요. 언제부터인가 친부모 조사(弔事) 외에 장인장모 조사에도 부고(訃告)하는 행위가 일반화됐습니다. 더러는 형제상(喪)도 부고합니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경사이건 조사이건, 공직에 있는 사람은 알리는 대상을 극히 최소화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평생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타인의 장인, 장모상, 형제상에 부고하는 것이 옳은가요. 자기 결혼하는데 온 산하 공공기관에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국회 보좌진이 할 짓인가요. 도대체가 기본도 안된 자들이 국회에만도 너무 많습니다.
한 가지 더. 국회의원의 보좌진 인사(人事)에 관해서입니다. 국민이 피땀 흘려 낸 세금으로 보좌진 수를 늘려준 것은, 행정부 감시자 역할을 더 잘하고, 양질의 입법행위를 보좌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금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보면, 대부분 4급 보좌관 1인, 8급 또는 9급 행정비서 1인등을 지역관리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절반 이상의 인력을 아예 지역구 관리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근본적으로 국민을 배신하고 기만하는 인력 운용입니다. 국회법이 규정한 국회의원의 임무는 예결산 심사, 입법, 행정기관과 산하 공기업 감시 등입니다. 그런데 인력을 이렇게 개념 없이 운용하니 국가예산과 결산심사가 수박 겉핥기가 되고, 행정부 감시가 느슨해지는 것은 필연적 결과입니다. 정당개혁 운운하기 전에 이런 국회부터 개혁해야 마땅하고 옳습니다.
공직자가 된다는 것은, 무거운 등짐을 진 나귀 신세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근검과 성실, 공부와 고심, 국리민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실천해야 하는 자리가 공직입니다. “公事有暇(공사유가) 必凝神靜慮(필응신정려), 思量安民之策(사량안민지책) 至誠求善(지성구선)”. “공무 중 여유가 생기면 정신을 모으고, 백성을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선을 구하여야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 <율기(律己)편>에 적힌 글입니다. 이렇게 잠자리에서도 나라 걱정, 국민 걱정을 해야 합니다.
공직을 두려워하고, 공직자를 무거운 짐 진 자들로 여길 줄 아는 이가 참된 공직자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야 불법과 탈법행위, 부정과 비리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있는 공복’이 될 수 있습니다. 비로소 공직은 자랑스러운 훈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