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만 조지는 것이 과연 능사(能事)일까?

by 권태윤

공기업은 정부로부터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업권을 부여받십니다. 그걸 이용해 국민을 위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임무를 수행합니다. 정부는 공기업이 제공하는 유무형의 서비스 이용료(가격)에 대한 직접 통제와 경영평가를 합니다.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일상적으로 공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과제를 부담시킨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익숙한 광경, 책임 떠넘기기가 재연됩니다. 정부가 나서서 조자룡 헌 칼 쓰듯 공기업들을 ‘조지고’ 있습니다. 권한은 갑(정부)이 갖고, 책임은 을(공기업)이 지는 게 당연한가요? 물론 공기업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게 본질이 아닙니다.


한국전력의 천문학적인 부채 역시 원인은 단순합니다.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받는 가격이 지나치게 낮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정권과 정치권이 요구하는 사업들(과도한 퍼주기, 과중한 사업)을 군말 없이 수용해야만 하는 을의 숙명이 더해집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도 임대주택 한 채를 지으면 1~2억 원의 적자가 발생합니다. 단순계산으로 임대주택 10만호를 지으면 10~20조의 부채가 새로 발생하게 됩니다.


LH 입장에서는 임대주택을 적게 짓거나 아예 안 지을수록 경영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 상황을 잘 알면서도 정부와 정치권은 수시로, 임대아파트를 많이 지으면서 적자를 줄이라고 공기업을 겁박합니다. 돈 1000원 주면서 “담배 두 갑, 소주 세 병 사고 500원 남겨 오라”는 악질 고참의 행태와 다를 바 없습니다. LH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좋은 택지를 팔아 빚을 갚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다시 정부와 정치권이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라고 하면 또 빚을 내 땅을 사야 합니다.


공기업 임직원 성과급 문제, 과도한 복지제도 따위를 공격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공기업을 감독할 책임이 정부 부처에 있고, 감시할 책임도 국회와 감사원에 있습니다. 공기업이 문제가 있다면 정부나 국회, 감사원이 직무를 유기했다는 말이 됩니다. 하다못해 호화청사도 공기업이 언제든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입니다. 전문성을 비롯한 경영 능력이 아니라, 내 편 자리 챙겨주기 위해 이뤄지는 정실인사가 공공연한 상황에서 정부나 정치권이 마치 자신은 정정당당하다는 듯 공기업들을 겨냥해 호통치는 모습은 그래서 우스꽝스럽고 민망합니다. 정작 건드려야 할 근본은 방치한 체 껍데기만 건드리는 격화소양(隔靴搔癢)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한 가지 더. 그렇다면 공기업의 수와 인력은 왜 늘어나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선 과거에 비해 정부가 수행해야 할 업무의 총량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정부 부처들은 자신들의 일은 덜고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공기업을 만듭니다. 이러니 인력증원 안 해줄 수가 있나요? 기재부가 공기업을 질타하지만, 늘어난 그 인력은 공기업 마음대로 늘린 것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습니다. 전부 정부가 승인해 줬습니다. 일례로 한국교통안전공단(TS)만 하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정부 업무가 공단으로 이관됐습니다. 당초 자동차 검사가 주 업무였으나, 현재는 철도, 항공에 이르기까지 업무영역이 광범위하게 늘어났습니다. 해당 공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공기업 비대화나 인력증원이 이렇게 정치권과 정부에 의해 이뤄진 것입니다.


공기업은 기본적으로 이윤을 내는 곳이 아닙니다. 당연히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그러라고 공기업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국 다시 공기업 인사에 대한 자율권, 요금 결정권 따위를 그들에게 줄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되돌아갑니다. 그걸 못하기 때문에 정부가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해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택시기사나 택시회사에 대한 반복적인 혈세 지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택시요금을 법인택시나 개인택시 자율에 맡기면 됩니다. 이렇게 시장원리에 맡기면 한 푼의 세금도 지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반대의 문제가 생깁니다. 국민 개개인의 택시 이용 요금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결국 공적 서비스의 비용을 국민이 공동으로 분담할 것인가, 아니면 사용자 부담원칙에 따라 이용자인 개별 국민이 부담케 할 것인가로 귀착됩니다.


국민건강보험제도나 자동차보험제도를 운용하는 것 역시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 중 하나를 국민이 선택한 것입니다. 누가 더 많이, 자주 이용하느냐에 따라 비용부담의 차등을 두는 제도가 아니라, 공적 분담의 영역을 인정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공기업을 통한 공적 서비스 제공시스템도 이런 구조 속에서 움직인 것입니다. 공기업을 개혁한다면 당연히 공기업이 요구하는 만큼 서비스 이용료를 인상해주거나 서비스의 종류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그게 효율성이나 공공성 측면에서 혈세로 보전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나아가 민영화를 했을 경우의 비용과 편익, 공기업을 유지할 경우의 비용과 편익을 비교 분석해 새로운 선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합니다. 그런 사회적 논의를 통해 근본을 뜯어고치는 개혁의 당위성을 먼저 국민에게 설명할 의무가 정부와 정치권에 있는 것입니다. 정부나 정치권이나, 목소리 높여 공기업만 조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문제의 원인을 자신들에게서 찾아야만 비로소 진정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참고로, '조지다'는 사투리나 비속어가 아니라 표준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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