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官吏)의 길

by 권태윤

새벽에 일어나 문득 “공복(公僕)으로서 관리(官吏)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화두(話頭)가 떠올랐습니다. ‘공복(公僕)’이라는 신분을 항상 잊지 않고 공무(公務)에 임한다면 관리로서 크게 욕먹을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관리로서 최고봉이라는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재상(총리)은 어떠한가요? 임금(대통령)의 아래지만 모든 백성과 관리의 으뜸이라는 이 표현은 올바른가요? 이는 잘못된 표현입니다. 재상이 임금의 아래를 자처하는 순간, 잘못을 간(諫)하는 스승 역할에 충실하기 어려워지고, 만인의 우두머리 자리에 취해 본분을 망각할 여지를 만듭니다.


재상(총리)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존재가 아니라, ‘일인지상만인지하(一人之上萬人之下)’의 존재라야 합니다. 단 한사람, 맹호(猛虎)보다 무섭게 임금(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을 책무가 그에게 있고, 만백성을 하늘처럼 떠받들 책무가 또한 그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맹호부대에서 있었던 염순덕상사 피살사건을 다룬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당시 피의자(被疑者)가 속한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을 비롯해 육군, 국방부 최고위 인사들은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자세로 일관하며 그 참혹한 사건을 은폐(隱蔽)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부하를 제 몸보다 아끼고 사랑하기는커녕, 제 출세길에만 눈이 멀어 부하의 억울한 죽음을 나 몰라라 내팽개친 한심한 자들이 지금도 군의 수뇌부(首腦部)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나라의 꼴이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싶습니다.


윗사람이 된다는 것은, 높은 자리에서 제 욕심이나 채우며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리의 높이는 책임의 무게와 비례합니다. 책임의 무게를 잊고 높은 자리만 탐하는 고관대작(高官大爵)들은 그저 나라를 좀먹는 해충(害蟲)에 불과한 자들입니다.


한시라도 나라의 안위(安危)와 백성의 삶을 돌아보고 보살피지 않는 자는 즉시 관복(官服)을 벗어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민초의 혈세를 축낼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위정자(爲政者)들과 관료(官僚)들을 보세요. 그들 중 참된 관리가 누구이며, 그런 위정자, 관리가 몇이나 되는가요. 모두가 눈을 부릅뜨고 살피고 경계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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