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0분 1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새 Apr 20. 2022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나보다

닭내장탕집의 풍경

======================


호소문


거리두기 단계가 오래 지속됨으로 인해 가게의 매출이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조속히 거리두기 단계가 조정되어 가게가 망하지 않게...


=======================


이제는 철 지난 호소문 옆으로, 술을 붓는 아저씨 둘의 얼굴이 초저녁인데 이미 붉다. 이미 빈 소주 몇 병과 닭내장탕 구수하게 끓는 냄비 사이로 친구 사이 오가는 시선이 거나하다. 그런 시선이 오랜만인지 얼굴 위로 눈웃음 깊게 파인 주름이 둘을 떠나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어라, 만난 것만으로 오가는 이야기의 내용은 둘이 괘념하는 바가 아니다.


그 아저씨들 뒤로 한 아주머니가 사랑하는 이에게 이렇게 배신당할 수는 없다는 표정이다. 내가 쳐다보는 것은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듯, 똥그래진 두 눈알이 못 잡아도 30년은 함께했을 배우자의 미간을 똑부라져라 찌른다. 아저씨의 눈은 아래를 향하고, 무안한 오른손만 술잔을 만지작인다. 둘 사이에서 보글보글 끓는 내장탕이야말로 쫄아들까 애가 타는데, 둘은 어찌할 바를 모른채 그들만의 이야기를 더 진행시킬 여력이 없어 보인다. "술 시키셨죠~" 하며 무심하게 높은 톤으로 소주잔을 놓고 가는 서빙 아주머니.


그 모든 이야기가 상관없다는 듯, 우리 옆 테이블 꼬마 아이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 아이를 또한 신경쓰지 않고 이제 막 어머니 노릇을 시작한 두 여자가 서로의 푸념 늘어놓기에 전념한다. 저 푸념들 사이에 끼어 있는 자기 이야기를 듣고는 있을까, 아이가 이따금 냄비로 향하는 숟가락질은 아무것도 모르는듯 무심하다. 난 어릴 때부터 닭내장탕집에 와서 숟가락질을 배우는 아이가 내 나이가 되어 무엇을 먹을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 건너편 노부부는 딸 둘을 데려왔는데, 딸 하나가 취하더니만, 아버지 머리 벗겨진 것을 걱정하고 만다. "아빠, 샴푸 잘 씻어내셔야 한다고요."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안 떠지는 한쪽 눈을 뒤로 하고 남은 한쪽 눈을 껌뻑이고 웃고 마신다. 그런 가벼움이 딸의 가슴에 무겁게 얹혔는지, 딸의 눈꺼풀은 더 짙어만 가고, 아버지는 그런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마주앉은 여보에게 술 한 잔을 건네고 만다.


그 풍경들 사이로 서빙하는 아주머니가 신출귀몰하며, 사람들의 주문을 훔쳐낸다. 이런 닭내장탕 집에서 술을 참을 수 있나, "소주 한 병이요", 나도 짐짓 시원하게 소리를 내질러본다. 하지만 내 시선을 훔친 건 우리 위로 흐르고 있는 전기줄, 가스배관. 못해도 20년은 넘어보이던 가스배관 위로 우리네 사정 만큼이나 많은 때가 묻었나보다. 못 참고 아주머니께 여쭈어보니, 50년도 넘은 집이란다. 서빙만 20년 하셨단다. "아이고, 이렇게 맛있게 주시면 어떡해", 하는 내 실없은 소리 위로 아주머니도 실없이 웃더니, 또 오라신다.


실없는 소리들이 오가는 동안 우리네 마음 속에 켜켜이 기억들이 쌓여간다. 간만에 만난 친구가 나누던 시선, 배우자의 미간을 뚫어져라 쳐다봤던 기억, 무심히 닭내장탕으로 향하던 자식의 손을 몰래 쳐다보던 기억, 무심했던 아버지의 사람 좋은 웃음. 드디어, 코로나가 끝나가고 있나보다.





- 지음 피드백 (같은 주제로 같이 쓴 지음의 글 링크 https://brunch.co.kr/@cinemansu12/6)


이렇게만 묘사하면 너무 좋을 듯. 마치 카메라가 한테이블 한테블 훑고 지나가듯 묘사하는데 클로즈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한 화면에 들어올듯한 거리를 두고 카메라가 있는 듯함. 다만 제목에서 코로나를 언급하고 마지막에 글을 닫을 때 코로나를 다시 언급하는데 뭔가 맞는 듯하면서도 아쉬움이 있음. 생생하고 재밌는 글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무는 위로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