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떠러지에서 선택한 길

사주타로상담사

by 조 경희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우울함 속에서 나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다.
거실 너머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을 한참 바라보던 날이었다. 노란 은행잎은 이미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었다. 무인도에 혼자 놓인 기분이었다.


남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등산에 재미를 붙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해변을 다닌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돌아오겠지.” 나는 늘 그렇게 믿었다. 믿음이 무너진 자리에서야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내가 나를 세워야 한다고.


그때 내가 붙잡은 것이 사주와 타로였다. 신기함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의 삶 앞에서 책임을 배우는 일이었다.


15년 전, 사이버대학을 마치고 방문교사로 일하던 나는 밤낮없이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자동차 시트를 붉게 물들일 만큼의 하혈로 수술을 받았다. 그 일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더는 몸을 혹사하며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그때부터 사주 공부에 깊이 들어갔다.


사주 카페에서 2년을 일하며 상담의 세계를 배웠다. 부잣집 자제도, 의사도, 변호사도 자신의 불안을 들고 찾아왔다. 겉모습은 달라도 사람들의 질문은 비슷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요?” 그 질문을 들으며 깨달았다. 상담은 점을 치는 일이 아니라, 불안을 견딜 언어를 함께 찾는 일이라는 것을.


강남의 타로 숍에 처음 나갔던 날을 잊지 못한다. 경험이 많다고 말했지만, 실전은 냉정했다. 메인 상담사와 하루 매출이 100만 원 차이가 났다. 한 달 뒤 나는 하루 한두 팀 들어오는 한직으로 발령 났다. 사람이 물밀듯이 드나드는 거리 한복판에서, 나는 비로소 알았다. 이 길은 신기함으로 버틸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가의 삶을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되는 자리라는 것을.


코로나 시기, 동업으로 들어간 지역은 유흥가가 많은 곳이었다. 찾아오는 이들의 사연은 달랐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혼자 키우는 미혼모, 학업을 멈춘 채 관계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 나는 답을 내려주는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대신 그들이 스스로 버틸 수 있는 말을 함께 찾으려 했다.


연애 상담이 가장 많다. “상대방 속마음이 궁금해요.” 하지만 결국 문제의 중심에는 늘 ‘존중’이 있다. 싸울 때도, 결정을 내릴 때도, 상대를 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으면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상담실에서 나는 그 단순한 원칙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매일 다시 배운다.


남편의 자리, 건강의 균열, 생계의 불안이 한꺼번에 밀려왔을 때 나는 낭떠러지 끝에 서 있었다. 그 끝에서 선택한 길이 사주 타로였고, 그 길에서 내가 만난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다.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언어를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담실에서 들은 수많은 삶의 조각들을,나는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벼랑 끝에서 시작된 나의 길이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길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