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온 마음을 건네는 법
물리치료사로 지방 근교에서 일하던 때였다.
아픈 분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연령대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이 많았다.
내가 만난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셨다.
마른 몸, 안경 너머로 너무나도 곱게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처음엔 가벼운 인사만 나누다가, 차츰 말이 길어지고 마음이 열리면서 어느덧
친한 할머니와 손녀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게다가 어르신 댁이 내가 사는 원룸과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아시고는 종종
말씀하셨다.
“이 선생, 일찍 마치는 날 꼭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응, 꼭 한 번 놀러 와.”
치료받고 가시면서도 약속을 하듯 꼭 손을 잡고 가시곤 했다.
그 뒤, 나는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고 어르신의 모습은 어느 순간 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 못 뵈었던 어르신을 다시 만났을 때는, 핼쑥한 얼굴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이었다.
걱정과 미안함이 밀려와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써 드렸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 주 토요일 오후, 어르신께 퇴근하고 잠시 들리겠다는 전화를 드렸다.
집 근처 시장에 들러 팥죽과 과일을 사서 찾아갔다.
할아버지와 두 분이 사는 40평대의 아파트는 생각보다 넓고 조금은 허전해 보였다.
현관을 들어설 때부터 미역국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날 보자마자 손을 잡고선 부엌으로 데리고 가 의자에 앉히셨다.
“이거 좋아하는지 모르겠네?”
“맛이 없어도 많이 먹어요.”
그건 어머니가 내게 종종 해주시던 찹쌀 수제비였다.
그 후 나는 다른 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어르신과의 연락도 자연스레
뜸해졌다.
몇 해가 지나 그 직장의 동료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서로 오가는 얘기 끝에 어르신의 안부를 물었다.
“참, 그 어르신 잘 계시죠?”
“몰랐어요? 암으로 돌아가신 지 1년도 넘었는데요.”
숨이 탁 막힌다는 게 이런 거였다.
안부 전화를 한 번이라도 드렸다면
이렇게 뒤늦게 듣진 않았을 텐데.
후회와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다른 곳이 더 아파져도, 이만큼 마음 아플 것 같진 않았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찾아뵐 수도, 목소리를 들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수 없이 흔들렸다.
사실은, 아주 조금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언젠가 맞이할 그날이 온다는 것도.
하지만 우리는 현재를 사니까,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그날 밤, 문득 이 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았는가 생각해 보라.
지금의 나는 나 혼자만 산 것이 아니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의 도움을 받고 살아온 것이다.
좋은 죽음은 그동안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마음이야.
그러니까 삶의 선물 같은 거지.”
찹쌀 수제비를 맛나게 함께 먹었던
그 시간처럼,
더 이상 슬픔만으로 담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보여주신 그 마음들,
선물처럼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도 그날이 오면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원래 없었던 것처럼
고요의 홀씨로 흘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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