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기차에서 들은 가장 따뜻한 말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2006년 독일 월드컵이 한창인 여름에 유럽으로 40일간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다.
말 그대로 편한 여행이 아니라, 가격은 저렴하고 그 대신 몸은 힘든 진짜
배낭여행이었다.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숙소나 명소를 찾는 것도 많이 어려웠다.
일정은 또 얼마나 빡빡한지, 걷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 나였는데도 무거운 짐을 메고 이동하는 건 고역이었다.
그래도 여행이란 시간은 순간마다 나를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 힘으로 하루하루 버티며 즐겁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행 중 많은 기억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프랑스 근교에서 파리로 들어가는 기차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기차로 이동하려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승차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 같이 간 일행들 하고 수다를 떨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다.
우리가 탈 기차가 도착하기 10분 전,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졌다.
10분 뒤니까 조금만 참자는 생각을 했지만, 점점 힘들어졌다.
역사 화장실을 갔다 오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우리 플랫폼 반대편에 정차된 기차였다.
우리가 플랫폼에 들어서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을 때도 움직이지 않던
기차였다.
나는 일행들에게 눈짓으로 빨리 갔다 오겠다고 하고 그 기차에 올랐다.
화장실을 찾아서 급하게 들어서고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순간,
‘덜컹’ 하고 기차가 움직였다.
나의 몸은 그 순간 얼어붙었다.
그 짧은 순간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 나 한국에 못 돌아가는 거 아냐?’라는
불안감이었다.
그다음은 ’나 이제 어떡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승무원이 나타났다.
아무도 없는 기차 안을, 그것도 작은 동양 여자가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걸어오고 있으니 당연히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 승무원은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
“무슨 문제 있어요?”
나는 우물쭈물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기치를 잘못 탔어요."
그러자 다시 물어왔다.
“가는 목적지가 어디예요?”
“리옹...”라고 작게 말했다.
그러자 승무원이 환하게 웃었다.
정말 그렇게 웃어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들려온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돈 워리, 돈 워리”
두 손까지 흔들면서 걱정 말라는 그 말이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이 기차는 우리가 타려는 기차와 같은 역에 정차하니, 거기서 내려 기다리면 된다고 몇 번이나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뒤 우리 일행과는 정차한 역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울었다.
나는 이제 한국에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일행들은 정말로 날 잃어버린 줄 알았다며 서로서로 한참을 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만 나오는 추억의 단편이다.
그때 승무원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환한 얼굴로 “돈 워리”를 말해주는 대신, 무표정으로 다른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 말을 해 준 승무원 얼굴이 또렷하게 남아있다.
나도 누군가에게 ’걱정 마세요‘라는 말을 따뜻하게 해 준 적이 있었을까.
그때의 당신은 작은 친절 하나였겠지만,
제가 받은 당신의 친절은 아주 큰 사랑이었습니다.
그때도 말했지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Thank you very, very much, 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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