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로 남는 사람

by 이 유림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떤 만남은 상처로 남고, 어떤 만남은 마음에 오래 머문다.

조금 쓰라린 상처가 된 만남도, 가슴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만남도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조금은 나와 다른 결, 다른 온도를 지닌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군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기억이 스쳐 가는지도 모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생각만 해도 마음은 어느새 그리운 무언가로 서서히 따뜻해진다.

그건 아마도 그 사람이 지녔던 '온도의 결'이 나와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난 직장 선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알고 지낸 연도로 따지면 20년이 넘는 세월이다.

지금도 가끔 필요할 때 안부를 전하곤 한다.


이제는 연락할 일이 생겨야만 찾게 된 것이 스스로도 미안한 일이 되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태도로 대해주는 그의 마음이 남아 있다.


처음 선배를 보았을 때는 화를 정말 못 내는 사람인 줄 알았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이 상하고 화가 날 일이 생기게 마련인데, 선배의 목소리는 그럴수록 더 차분해지고 낮아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나는 '먼저 목소리를 낮추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궁금함에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돌아온 선배의 대답은 자신도 화가 나지만 마음으로 다스린다는 것이었다.

싫은 사람에게 자신의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화를 삼키는 대신 마음을 내려놓는 쪽을 택한 사람이었다.

화가 나면 표정부터 솔직하게 드러나는 나와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2년 정도 함께 근무하다 선배는 개인 사정으로 통영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더 이상 얼굴을 볼 일이 없었다.

그러나 몇 년 뒤 우리는 다시 같은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가끔 안부 전화를 건네는 사이로 남아 있다.


20대 후반, 취미로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서 서너 살 많은 언니를 알게 되었다.

언니는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믿는 사람이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편에 서 주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그 확신이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조금씩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내 생각이 조심스레 밀려나는 순간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낯설어졌다.


서로 바쁜 직장 생활로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연락은 자연스레 끊어졌다.

10여 년이 흐른 뒤 우연히 다시 연락이 닿았고, 우리는 반가운 마음으로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몇 번 더 만났지만, 세월이 흘러도 언니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꼈다.

결국 내가 먼저 연락을 줄였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사람의 온기는 마음의 온도다.

마음의 온기는 그 사람을 생각하는 온도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온기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온도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온기로 남아 있을까.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같은 결로 온기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돌아보면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준 순간의 온기도, 차갑게 스쳐 지나간 날의 온기도 모두 나를 자라게 한 시간이었다.


상처와 이해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세월의 나이를 업고 지금까지 한결같은 자신의 온도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 온도 속에 스스로의 '괜찮음' 한 켠이 남아 있다면, 누구에게나 나눠 줄 온기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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