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손 편지
우리 동네에 오래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물건이 있다.
빨간 우체통이 내게는 그렇다.
길을 걷다가 빨간 우체통이 눈에 띄면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옴을 느낀다.
‘요즘도 우체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오도카니 혼자 서 있는
우체통에게 다가가
빨강 원복 입은 귀여운 유치원생 머리를 쓰다듬 듯다가,
불현듯
발렌타인 day, 화이트 day, 빼빼로 day처럼
손편지 day도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게는 골동품처럼 오래 될수록
더 보물 같아지는 편지함 하나가 있다.
지금까지 여덟 번이 넘는 이사를 할 때도,
미니멀리즘으로 삶의 틀을 바꾸고
집 안의 물건을 죄다 버리고 정리할때도...
남편의 오랜 와이셔츠 통에 담긴
편지만은 열외였다.
아이들 애착인형처럼
내 삶에 착 달라 붙어 다닌다. 히힛
그걸 버리면
왠지 내 삶의 어느 시절을
도둑 맞는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절대 절대 못 보냅니다요.' 다
아마도 죽을때까지 나와 함께 할거다.
퇴직 후 넘쳐나는 시간들이
권태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추억의 곶감 빼 먹듯
손편지함을 열어본다.
카드 하나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엄마 사랑해요"
마흔이 코 앞인 장남이 초등학교 일 학년 때
글자를 막 깨우치고 쓴 첫 카드.
삐뚤빼뚤한 글씨!!
어설프게 만든 카네이션 종이꽃!!
정겨움과 사랑스러움이
오랜 시간을 통과해 다시 내게로 온다.
그날 젊은 엄마는 얼마나 행복했던지?
아마 세상 다 가진 듯
'이까짓 맞벌이, 육아 힘듦 아무것도 아니다.'
불끈불끈 힘이 났었다. 히힛
해묵은 편지는 내 입가에 미소와
눈가에 이슬을 맺히게 한다.
'오월은 가정의 달' 이라고
계몽에 가까운 홍보를 한 시절이 있었다.
촘촘히 붙어 있는 기념일들이
주머니 사정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기는 했어도
가족 기념일들이 때때로 있어
그나마 삶의 아름다운 의미를 짚으며
살아가게 해주었다.
어린이날은
큰 맘 먹고 놀이동산도 데려가고
어버이날에는
내 아이에게 맑고 꾸미없는 사랑 고백을 받았더랬고,
내 늙어 가는 부모님들께도
쑥스러워 못하고 가슴에만 꽉꽉 눌러 놓았던 말을
살짝 꺼내어 보기도 했었다.
"아버지, 어머니,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손 편지에 담아 내면
마음의 부채를 조금 덜어 낸 것 같은 기분에
한결 가뿐해졌다.
언어는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치유자다.
우리 일년에 한 두번쯤 손편지를 쓰면 어떨까요?
인문학자처럼 제안하고 싶다.
오래된 손 편지를 다시 꺼내 읽으니
마음이 따스한 스웨터를 걸친 듯 포근해진다.
내 삶에 온기가 더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