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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영화 리뷰(애국과 용기)

아무튼 용기

by 해운대 줌마

내게 가장 부족한 덕목은 용기이다.


꼬맹이들도 즐기는 놀이동산 청룡열차도 바이킹도

공짜로 타라고 해도 손사래 치며 도망치는 겁쟁이 중에 겁쟁이다.


사실 그런 건 사는 데 별 문제는 안된다.

살다보면 용기 없음이 비겁한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얼마 전 마트 계산대 앞에서의 일이다.

한 남자가 새치기를 했다며

뒤에서 계산 순서를 기다리던 여자와 시비가 붙었다.


남자의 막말과 여자의 따따부따가

탁구공처럼 퉁퉁퉁 오갔다.

남자가 잘못했고 여자의 옳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다들 그저 지켜 볼 뿐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단지 시끄러운 상황이 빨리 종료되기만을 바라는 눈치였다.


나 역시 상황을 중재할 용기는 커녕


“여기는 공공장소이니 조용히 해주세요!”

최소한의 시민의 권리를 말할 용기도

쥐콩만큼 작아지며 아무 맥을 못 춘다.


그저 방관자가 일인 추가다.




그 상황을 보면서 영화 하얼빈이 떠올랐다.

'영웅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나라를 위해 내 던질 수 있는지?

그 용기를 가슴 어디에서 끌어올리는지?


안중근!!

그는 애초에 나라를 구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 같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다는 것은

곧 자신도 붙잡혀 죽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 무수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얼빈 하늘에 대한독립 해방의 봄을 선물하고

훌훌 떠났다.


그의 용기는

부처나 예수의 마음을 닮지 않았을까?




한 대한의군은 일본군에게 생포되어

유독가스, 굶주림의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밀정이 되고 만다.

적장은 굶주린 짐승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고깃덩어리로 그를 회유한다.

가장 비열하고 가장 치졸한 방식으로~


고깃덩어리를 한 입 맛본 그에게

더 이상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겠다는 독립운동은

감정의 사치에 불과해진다.

자신의 배고픔을 채울 동물적인 본능만이 꿈틀된다.



와그작와그작

적장이 던져 준 고깃덩어리를 씹어 먹던 포로의 비루한 눈빛

대한 의군의 명예를 고작 배고픔을 채우는 것과 맞바꿔 버린 지괴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고 싶다는 본능이

뒤범벅되어 멀미하듯 자꾸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억누르며 고기를 씹던 그의 모습.


용맹 무쌍한 의군이기에 앞서

그도 한 인간임이 너무도 이해되었다.

울컥한 마음으로 공감 또 공감했다.


'어느 누가 밀정으로 변한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그이를 저승에서 만난다면

나라도 그 상황이면 그랬을 거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싶다.


안중근의 마음은 늘 사람을 향해 있었다.

인간의 자유를 억압당하는 민족을 해방시켜 주고자

감히 아무도 할 수 없는 크나 큰 용기를 내었고,


밀정으로 변한 동료에 대한 배신감에 분노보다는

그를 이해하는 마음의 넓은 용기를 보였다.


밀정을 바로 처단하자는 걸 애써 말류하며,

그가 처했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명예를 회복할 기회와 기다림의 시간을 준다.


밀정이 된 의군은 비겁했던 자신을 용서 못하고 괴로워한다.

일본군 적장을 처단함으로써 자신에게 용서받고자 한다.


독립운동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더 단단한 의군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애국'이라는 두 글자를 참으로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다.


초등학생 시절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전기문을 읽으며

물밀 듯한 애국의 쓰나미로 조그마한 가슴이 벅찬 적이 있었더랬다.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본받아야지!'

독서감상문 말미에 어김없이 쓰고 나면 진정되곤 했다.


어린아이의 굳었던 결심도

나이 들어가며 희미해져 버렸다.

지극히 개인적인 마음으로 똘똘 뭉친

모자란 국민이 되어 버렸다.


국경일마저 무관심이다. 국기도 내 걸지 않은 지 오래다.

온통 잘잘못 만을 떠들어대는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졌다.

뉴스 보기도 괴로워 예능으로 채널을 얼른 돌려 버린다.

'나만 잘 살면 돼!'

주말 드라마 제목처럼 각자도생만을 외치며 산다.



"조선은 왕은 어리석고 유생들은 부패하지만 백성들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이토 히로부미의 고민처럼

결국 나라를 지켜 내는 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임을 깨닫는다.


나라가 없고는 개인의 행복도 없다는

사실이 명징하게 떠올랐다.


지금 나라는 온통 혼란스럽다.

미래는 불안하고 초조하기만 하다.


우리의 삶의 터전과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지금 딱!

의미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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