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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Jul 02. 2020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정상성에 대한 반발

넷플릭스 드라마 리뷰



이 드라마의 원작인 책의 경우 그 자극적인? 충격적인? 제목 때문에서였는지 우리나라에 정발이 되었을 당시 언뜻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잊고 살다가 휴가 동안 넷플릭스를 보는데 TV드라마로 제작이 되어 있길래 호기심에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예상 외로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물음을 던지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 중 쿠미코와 켄이치 부부는 대학생 때 같은 빌라에서 만난 CC 커플로, 섹스 중 삽입이 불가능했다. 둘은 문제 의식을 느끼지만 언젠가는 해결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리고 삽입이 되지 않아도 그것이 결혼 생활 자체에 큰 문제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어떠한 기대감으로 졸업 후 취직을 하고 나서 공식적인 부부가 된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나서도 둘은 여전히 삽입 섹스를 할 수 없다. 삽입이 되지 않는 것이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쿠미코는 스스로를 '하자품'이라고 생각하고, 켄이치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완벽한 결혼 생활을 만들기 위해 집착한다. 그러다 켄이치가 윤락업소를 드나드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어떠한 선입견을 갖게 된다. 즉, 우리는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혹은 보면서도 왜 둘은 삽입을 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원인이 무엇이며 그 문제의 탓이 누군가에게 있는지 자각하기 전에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구글 연관검색어를 보면 이 드라마의 이름 뒤에 '원인'과 '결말'이라는 키워드가 붙어있다. 이는 그만큼이나 문제의 당사자를, 혹은 엮여 있는 사건을 알고 싶어하며 끝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지 파국으로 끝나는지에 우리의 관심사가 맞춰져 있음을 반영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원인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이 문제는 누가 원인에 있는 것도 아니다. (둘은 다른 이성과는 삽입 섹스가 가능하다.) 쿠미코와 켄이치는 이 '문제'로 인해 결혼 생활에 갈등을 겪지만 결국 삽입 섹스를 하는 것과 사랑은 별개의 문제임을 인정하고 나서야 관계를 회복하게 된다. 또한 아이를 가지고자 인공수정을 알아보지만, 이를 합의 하에 그만둔다. 즉, 삽입 섹스를 하지 않고(할 수 없고), 아이가 없는 상태가 자신들의 '정상'적인 상태임을 받아들이고서야 행복을 되찾는다.


결국 이 드라마는 '정상성'이라는 개념에 묶여 있는 기존 결혼 제도 안에서 둘이 진정으로 스스로다운 상태를 찾고, 함께해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원인이나 결말은 끝내 중요한 것이 되지 않는다. 둘을 제외한 주위에서는 둘 사이에 아이가 없음을 비난하고 큰일이 난 것처럼 굴지만, 쿠미코와 켄이치는 통상적인 사회 개념에서의 부부의 생활, 행복이라는 틀을 초월해서 자신들의 삶을 꾸려나간다.


결말을 보고 나니 드라마를 보기 전에, 혹은 보면서 가졌던 선입견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꼭 부부 사이에, 연인 관계에, 사랑하는 사이에 삽입 섹스가 있어야만 하는가? 아이가 존재해야만 하는가? 일을 그만둔 여성은 임신을 하기 위한 목적이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사회적인 '정상성'의 맞지 않는 관계는 결국 정상의 궤도에 들어가는 데 실패한 것인가? 그렇다면 이들은 패배자인가? 


쿠미코는 극 중 마지막 장면에서 이솝 우화의 예를 들며 우리가 포기한 것이라면, 실패한 것이라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을 켄이치에게 던진다. 켄이치는 대답한다. 그러면 어때? 그것이 설령 선택이 아니라 포기나 실패라고 해도, 둘은 둘다운 생활을 영위해나간다. 그리고 그곳에 행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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