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2020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리뷰
이 글의 제목을 이렇게 써도 되는 걸까.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든 첫 감상이 그랬다. 어떤 시인이 쓴 시 중에는 같이 학교를 다녔던 여학생들이 어디로 간 것이냐는 물음을 던지는 시가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금 그 물음은 최은영 작가에 의해 떠오른다.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보였던" 그 여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스물일곱 살에 대학교 삼학년으로 학사 편입을 한 편입생이다. 동기들에 비해 많은 나이로 편입한 '나'는 "너무 오래 헤매었다는 생각 때문"에 "가끔은 뜻도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대학교에서 영어 에세이 수업을 듣게 되고, 이를 담당하는 '그녀'를 만나게 된다. '나'가 수업 도중 월경의 양이 너무 많이 나와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때, 어쩐지 강사인 '그녀'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으로(우스갯소리로 생리 문제로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면 원수라도 도와준다는 말이 있다.) 말을 건넨다. '나'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차를 한 잔 얻어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 시간에 어떤 학생이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을 이야기했을 때, 다른 학생들 몇몇이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라면서 불편함을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그녀'가 젊은 여자 강사여서, 만만하게 보고 자신의 옮음을 뽐내는 남학생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이는 굉장히 현실적인 장면인데 실제로 내 주위에서도 여성학 수업에서만 이상하게 교수에게 반발을 하는 남학생들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들은 다른 과목의 수업에서, 여자 강사가 아닌 나이 지긋한 정교수인 남자 교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이상하게 '여성학' 수업이고 강사가 '젊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당연하게 자신들의 우위를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이 소설에서도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로 논문을 썼음에도 남학생이 당당하게 아는 척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가고, '그녀'와 같은 대학 강사가 되면서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의 이름으로 나온 글이나 번역서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십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p.85-86)
여성으로서의 불안감,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버틴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소외되고 낙오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필히 맞닿아 있는 듯하다.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물음은, 그리고 이에 대해 확답을 할 수 없는 '나'의 문제는 낯선 것이 아니다.
작고 깡말랐지만 누구보다도 단단하며 지적인 호기심을 품고 있었던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금도 강사 일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예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삶을 살고 있을까. 무엇이 되었든 나는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버텨나갔음을, 버티고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소설 밖의 존재하는 무수한 '그녀들' 역시 처음의 그 마음을 접지 않고 버텨나갈 수 있기를.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