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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Apr 22. 2021

독서일기: 이연주 시전집 (1집 일부)

2021-04-22 목요일


이연주 시전집(1953-1992) / 최측의농간 


1985년부터 시 동인 활동을 시작, 89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 

91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첫 시집을 출간하였으나 

92년도 10월에 타계한 시인. 

93년 유고 시집이 나왔다.


이 <이연주 시전집>은 두 권의 시집과 동인지 발표작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몸 담았던 동인 '풀밭'은 시인의 유가족인 이용주님과 시인이 함께 활동했던 곳이라고 한다. 




오늘 같이 힘든 새벽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 휴대전화 보고 있는 것도 지겹고 

그것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아 차분히 시집을 읽는다.

시를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감정의 많은 부분을 위로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아름다움이란 얼마나 단순한지 

둥근 뼈의 집을 헤엄쳐다니는 안개의 숨소리,

핏줄들은 힘차게 팔딱거린다.

소금에 절은 바람도 거기선

비틀린 사랑을 배우며 살아온 어느 골방의 불규칙한 안식도

거기 도착하면 흐릿해진 알전구를 바꿔 끼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인생은 여러 번 바뀌어도 

사람의 고향이 몸 속에 있었다니......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기침이 나죠?

종이꽃잎들이 폐 속을 가득 채우고 있나봐. (p.19)




난 쉴새없이 마른 걸레가 필요해요

당신은? (p.20)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세상에 대한 기대없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1집

떠돌이, 행려병자, 창녀, 쥐새끼, 바퀴벌레, 옴벌레, 날짐승, 시신, 시궁창, 누더기 

얼핏 느끼기에는 시인 최승자의 것과 굉장히 닮은 작품이면서도, 

매음녀 연작시에서 느껴진 것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 앉아 있는 독특한 인물의 요소들. 

누구인 것도 같지만 그 누구의 얼굴도 하지 않는 그림자 같은 불행한 여성들. 



검진실, 이층 계단을 오르며

그녀의 마르고 주린 손가락들은 호주머니 속에서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찾아 꼬물거린다.

한떄는 검은 머리칼 찰지던 그녀,


몇 번의 마른기침 뒤 뱉어내는

된가래에 추억들이 엉겨 붙는다.

지독한 삶의 냄새로부터

쉬고 싶다.


원하는 방향으로 삶이 흘러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함박눈 내린다. (p.43-44 / <매음녀 4> 일부)


조금 더 깊고,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한 외로움이 느껴진다.

지금 읽어도 굉장히 진솔하게 쓴 시라는 게 느껴져서, 당시에는 얼마나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지,

또 이로 인한 두려움이나 힘듦이 있지 않았을지 책 바깥에서도 여러 생각이 든다.




한 서너 편 정도 중점적으로 읽었는데

읽는 시마다 생각의 시간이 길어져 도저히 한 번에 말을 하기는 어려운 책

무겁다. 무섭기도 하고


내가 읽은 1부에서는 (시인의 첫 시집) 겉잡을 수 없는 쓸쓸함이 많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쓸쓸함 사이사이에서, 그 공백 사이로 주는 묘한 위로가 강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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