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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Apr 30. 2021

독서 일기: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2021-04-30 사월의 끝에서



문창과 다녔을 때 한창 많이 읽고 좋아했던 시집 

시집 밑등을 보니 16년이라고 찍혀 있으니 그 무렵인 것 같다


우리 학교에 시인님이 강연도 오셨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요즘은 노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는 예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가만히 펼쳐본다




생일


흰쌀이 익어 밥이 되는 기적을 기다린다

식기를 가지런히 엎어 두고

물기가 마르길 기다리듯이


푸르한 것들의 꼭지를 따서 찬물에 헹군다

비릿한 것들의 상처를 벌려 내장을 꺼낸다


이 방은 대합실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파리함과 피곤함을 지나쳐 온 사람이

기다란 의자에 기다랗게 누워 구조를 완성한다


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이 오로지 슬퍼 보인다

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만이 오로지 사람다워 보인다

안식과 평화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침상을 차린다


나쁜 일들을 쓰다듬어주던

크나큰 두 손이 지붕 위에서 퍼드덕거릴 때

햇살이 집안을 만건곤하게 비출 때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

간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돕고 있다


살점을 떼어낸 듯한 묵상이

눈물처럼 밥상에 뚝뚝 떨어진다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모은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더니 괴로운 일이 너무도 많다.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알려진 한 보호종료아동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200만원 가량의 금액을 보이스피싱으로 잃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사람의 죽음에는 한가지의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그러므로 200만원을 사기 당해 처지를 비관하여 삶을 놓았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굉장히 무례한 발언일 수 있다. 그러나 요 며칠 언론들은 사기와 그 금액에 집중하여 그의 죽음을 조명하는 듯했다. 200만원. 사람들은 그 금액에 대해 제각기 생각하겠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에게 200만원은 마냥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잃었어도 금세 털어낼 수 있는 금액 정도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것은 내일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의, 나아가 미래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의 사고방식인 것 같다. 기댈 곳이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단순한 금액을 넘어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그리고 그는 한 방송을 통해 만 18세가 되는 보호종료아동은 500만원 정도의 지원금만 가지고 사회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주었다. 만 18세에 500만원. 내가 듣기에 그건 한 사람에 대한 지극한 무관심이자 절벽으로 타인을 떠미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나는 나의 고통을 털어놓기 바빴지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려는 적이 있었던가. 참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아주 많이 고통스럽다. 


디딤씨앗통장을 통해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며칠 전 신청을 했는데 아직 매칭이 되지 않아 연락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이는 월 5만원 선에서 한 보호종료아동에게 후원을 하면, 그 금액만큼 정부가 더해 후원금을 적립해주는 시스템인 듯하다. 나도 많은 금액을 적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을 때, 그가 독립했을 때 전자레인지라도 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힘이 되어주고 싶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고. 그 지지대가 없어 괴로워하는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다.


디딤씨앗통장 https://adongcd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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