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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경 May 02. 2021

독서 일기: 죽은 자의 집 청소

2021-05-02 일요일 애도가 필요한 시간




“자살 직전의 분리수거라니,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 이전에 다른 자살자의 집에서 번개탄 껍질을 정리해둔 광경을 본 적은 있지만, 이것은 너무나 본격적이다. (…….) 자기 죽음 앞에서조차 이렇게 초연한 공중도덕가가 존재할 수 있는가. 얼마나 막강한 도덕과 율법이 있기에 죽음을 앞둔 사람마저 이토록 무자비하게 몰아붙였는가.” (p.25)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집안의 분리수거를 마친 한 고인에 대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는 끝내 버리지 못하고 생을 떠난 이. 그의 집에서 소리 없이 운 가족. 장례식장이 없어 고인의 집 앞에 향초와 꽃을 놓아두어 추모의 뜻을 전한 익명의 사람. 


일본에서는 고독사라는 단어를 공식적 매체에서는 고립사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고독과 고립. 이 책의 저자가 말하듯 둘은 연관되어 있는 단어다. 물론 고독한 이들이 모두 고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독은 금세 고립을 불러오고 이는 한 개인이 버티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고립사 현장에는 가스, 전기 등이 끊어진다는 통보 딱지와 실제 이를 끊었다는 내용의 쪽지가 자주 붙어 있다고 한다. 심리적인 고립 역시 물질적 고립과 분리되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이 쓰레기장이 되어 있는 이야기나 텐트를 치고 집에서 생활했던 광경, 이사를 자주 다니느라 옮겨 다니는 박스에는 테이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그려낼 수 있다.


다만 나는 이런 글을 볼 때- 타인의 죽음을 대하는 글이나 매체를 접할 때 고인에게 초점을 두기보다는 차라리 그 장소나 기타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왜냐하면 죽음에 대한 글(매체)과 글을 읽는 내가 죽음을 물질화하여 소비시키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다. 인터넷과 여러 플랫폼의 발달로 요즘의 시장에서 비단 죽음뿐만이 아니라 무엇이라도 ‘소재’가 될만한 것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한 것 같다. 이 책이 굉장히 많은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기를 망설이게 된 이유는 어쩌면 그 점에 있는 듯하다. (이 책을 비방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이유 혹은 변명에 가깝다.)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인이 된 이들을 불쌍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당연한 것일 테지만 이러한 동정심 같은 것이 도를 지나치면 자극적 소재로 쓰일까 자칫 조심스럽다. 타인의 죽음에는 어느 정도의 애도와 침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점은 알지 못하는 채로 두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애도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글이 굉장히 미문이라 읽기가 어렵다는 평이 많은데, 아마 작가분이 문학을 전공한 영향이 큰 것 같다. 출판, 취재, 집필과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셨다고 하는데 확실히 이 글은 고독사(혹은 고립사)에 대한 르포보다는 고인이 된 개인에 대한 개인적 회고록(과 상상)에 가깝다. 미문이라는 점이 글 자체를 비평할만한 점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때때로 기준치보다 화려한 비유들은 내용 자체의 본질을 오독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남는다.


그러나 충분히 필요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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