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만 일하다가, 쉬는 날 사회에 나가면 가끔 적응이 안 된다.
그 이유는 소통 방식 때문이다.
현장에서 일할 땐, 하루 종일 사람들과 말을 섞는다.
작업반장이 아무리 나이 많아도
“도면대로 안 맞춥니까?”
“일이 늦어지는데 이유 알아와라”
같은 말은 꼭 해야 한다.
서로 불편하더라도, 정확하게 말해야 일이 굴러간다.
물론, 이런 방식이 낯설거나 거칠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거다.
감정을 섞지 않고 일만 보자는 태도가
어떤 이들에겐 차갑거나 무례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게 더 명확하고 솔직한 방식이다.
때론 반장이 기분 상해서 반격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내가 먼저
“잘하자는 마음에서 한 말인데 왜 화를 내냐”라고 달래기도 하고,
도를 넘는 태도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돈 받았으면 제대로 해야지”라며 맞받아치기도 한다.
맞붙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게 곧 끝이거나 절교로 이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나이차가 많이 나도 인간 대 인간으로 잘 지낸다.
말 세게 하고 갈등 생겨도,
술 한 잔 하면서 “야, 고생했다”는 한마디면 또 풀린다.
그런 세계에서 살다 보니
스트레스는 덜하고, 숨기지 않아도 된다.
하고 싶은 말은 한다.
대신 그 말에 책임도 진다.
일의 퀄리티도 좋아지고,
사람 간의 동료애도 생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건 아니라는 걸 느낀 건 사회에 나와서다.
내가 서비스를 받으며 의견을 말하면
“조용히 좀 해라”
“그냥 주는 대로 받아라”
이런 식의 반응이 돌아온다.
나는 공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의견일 뿐이다.
물론, 이런 말을 듣는 입장에선
“왜 굳이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려하고 있고,
불필요한 갈등을 피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조차
“너 왜 그렇게 말이 많냐”
“굳이 그걸 꼭 말해야 돼?”
라는 반응을 한다.
순간, 내가 진상인가? 싶다.
말을 하지 않는 게 정말 친절한 걸까?
불편사항을 말하지 않는 게 좋은 사람일까?
나는 생각한다.
말을 순화할 수는 있어도, 아예 참는 게 미덕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을 부드럽게 전하면,
상대도 선택지를 가질 수 있고,
그게 사업이든 관계든 훨씬 나아질 수 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지나치게 솔직한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요즘은 조금씩 조절하려고 한다.
말투를 부드럽게 하고, 감정을 걷어내면서
“내가 말하려는 이유”를 같이 전달하는 연습도 해본다.
현장에선 난 인간적인 사람인데,
세상 밖에선 진상이 되어버린다.
그 괴리감이 가끔은 참 헷갈린다.
진짜 상남자?
말 많지 않다.
감정 앞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할 땐 할 말 한다.
싸움 뒤에 사과할 줄 알고,
질문 뒤에 책임질 줄 안다.
진짜 상남자는 없어진 게 아니다.
단지 요즘 세상에선 조용히 뒤로 빠져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