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에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늘 걷는 소나무 숲으로 향한다. 10년 전 소나무 숲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오면서 이제 하루 일과 중 맨발 걷기는 빠뜨릴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소나무 숲 입구에 서면 나의 몸과 마음은 무장해제 되어 모든 감각이 살아나는 듯하다. 솔향기, 바람 소리, 새소리, 발바닥을 자극하는 흙 알갱이들 모두 나를 반긴다. 단전까지 느껴지는 들숨과 날숨을 통해 나를 정화해 본다. 그리고 호흡 명상과 함께 맨발로 걷기 시작한다.
내가 이사 온 지 3년쯤 지나 포항 흥해를 중심으로 큰 지진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포항 시민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고 현재도 곳곳에 지진의 흔적은 내 마음을 요동치게 한다. 그때 힘들고 상처받은 나의 몸과 마음을 그저 말없이 바라보고 품어 주었던 숲이 북송리 북천수 소나무 숲이다. 사람들이 건네는 위로의 말은 오히려 나를 콕콕 찌르고 마침내 독이 되어 내 침대 옆 탁자에는 이름 모를 약들만 수북이 쌓이게 되었다.
이 소나무 숲은 조선 철종 때 흥해읍의 풍수해 방지를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조성했는데 현재는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요즘은 먼 곳에서도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이곳을 찾아와 맨발로 걷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숲이 어둡고 200년이 넘은 소나무의 거친 표면과 쭉 뻗은 모습이 어찌 보면 범접하기 두려운 존재 같았다. 그저 말없이 산책길만 따라 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마음에 드는 소나무 하나를 찾아보라고 권유했다. 그리고 그 나무에 이름을 지어 주고 숲에 올 때마다 쓰다듬고 안아주고 말을 걸어 보라고 하였다. 얼마 후 나는 소나무 한 그루를 찾아내어 내나무라고 점을 찍어 두었다. 그때부터 나는 그냥 걷기만 하지 않고 내나무를 찾아가 쓰다듬고 안아주고 무언의 대화도 나누었다. 기둥에 기대어 두 눈을 감고 내나무의 소리에 집중하고 간혹 뺨을 스치는 바람과 새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자 한동안 잃어버려 무뎌진 감각들이 깨어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나무의 이름을 상록수라고 부르기로 했다.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양희은의 노래인 상록수의 일부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하고 20대 시절 상록수 같은 사람이 되길 소망하기도 했었다. 내나무의 생김새나 그 품의 크기로 보니 영락없는 상록수였다. 상록수는 북천수의 많은 소나무 중에 나와 인연이 되어 지금도 갈 때마다 나에게 손짓하며 맞아 주고 큰 품으로 안아준다. 소나무 숲은 내 삶의 치료 약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년 넘게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푸르른 자태를 뽐내던 소나무잎이 단풍 들 듯 붉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맨발 걷기 중 몇몇 소나무 기둥에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흰색 줄이 감겨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보니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급기야 흰색 줄이 감긴 나무들은 포클레인과 전기톱으로 잘려 나가는 걸 보게 되었다. 나의 몸 일부가 잘려 나가는 듯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한번 감염되면 수개월 내에 소나무를 말려 죽이는 소나무재선충 때문이라고 한다. 재선충에 감염돼 말라가는 소나무들을 보니 몇 년 전 나를 보는 듯하여 안쓰럽고 도와주고 싶었다. 매스컴에서는 기후 위기나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연일 보도하고 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하다.
잘려 나가는 소나무를 본 뒤로 나는 거창하지 않아도 나만의 방식대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상록수를 대할 때 부끄럽지 않게 조금은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말없이 그 자리에서 힘든 나를 감싸 안아 준 것처럼 숲을 더 사랑하고 지켜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상록수는 어떤 줄도 감겨 있지는 않았다. 다만 끝부분들이 조금씩 누렇게 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잘려 나가는 친구들의 아픔을 묵묵히 바라보며 자신도 그렇게 될까 봐 얼마나 노심초사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며칠 후 상록수의 기둥 아랫부분에 구멍을 뚫어 방제약을 투입하는 것을 목격했다. 올 것이 왔구나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니 남아있는 모든 소나무에도 약을 처방하고 있었다. 살려고,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걸 보니 그동안의 내 삶과 중첩되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상록수야 힘들지?. 우리 같이 이겨내 보자.” 나는 살며시 상록수를 안고 쓰다듬으며 말을 건넨다. 눈을 뜨고 위를 쳐다보니 파란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카이로스적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