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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주 Mar 27. 2024

나무 도감

내가 사랑한 나무들

 베를린의 나무는 키가 매우 작다. 베를린을 떠올리면 나무가 먼저 떠오를 만큼 돌과 벤치, 바닥을 가리지 않고 털썩털썩 앉아 나무를 지켜봤다. 유달리 짧고 두터운 기둥, 짧은 기둥이 무색하도록 길고 높게 뻗은 가지. 불룩 토양을 뚫고 올라온 뿌리를 보며 깊이를 상상했다.

 나는 사주에 나무가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게 닮은 것 같아 눈이 갔다. 잘난 기둥을 쭉쭉 뻗고 있지도, 눈과 코를 사로잡을 열매가 열려있지도, 몇 사람이 달려들어 끌어안아보고 싶은 모양새도 아니었지만 몸체보다 큰 팔을 활짝 펼치고 나름의 역할을 다하며  ‘나 좀 봐요!’ 소리치는 것 같았기에 응. 열심히 씨름하는구나. 껍질에 손을 문대보기도 하고 얼굴을 가져다 대보기도 했다.


 울룩불룩 나무를 처음 인지한 것은 약 2년 전.

이파리가 다 떨어진 하얀 가로수의 모양이 이제껏 지켜본 나무들과 달라 연달아 셔터를 눌렀었다.

그 후 나는 혹이 있는 나무들에 매료되어 반가움에  쉽게 앞을 지나치지 못했다. 유럽에 오니 유독 그 모양새가 도드라져, 일종의 현상일까 찍어둔 사진들을 지식인에 올렸다. 태양신, 우주신, 다양한 원예 전문가들의 답변에 따르면 해당 현상은 ‘나무 혹병’이라 했다. 호르몬이나 균에 의한 변이로 원인을 찾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한다. 으응 나무도 신음하는구나...

쿵하고 마음 한구석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 한켠에서는 사랑을 더욱 확신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언제나 저마다의 혹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제가 사랑한 나무들을 소개합니다.

마디마디 부러진 손가락을 닮은 나무

로테르담의 나무들은 그를 닮아 개성이 넘친다. 높낮이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내린 이끼 덕에 초록 옷을 입은 모습은 초록 장갑을 낀 손을 연상하게 했다.

잘린 가지 끝이 꽃처럼 보이던 나무

런던의 가로수는 가지치기가 되어있어 잔가지를 볼 수 없었다. 뭉툭한 그 끝 덕분에 얇은 팔이 주먹을 움켜쥔 것 같기도 했고 휴지로 만든 꽃봉오리 같기도 했다.

.. 같은 나무

무지갯빛 가지를 가진 나무

파리의 나무는 잔가지가 무성했다. 종일 흐리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해 뜨는 유럽의 날씨와 어울리게 가지 끝에 곱다란 무지개가 떠있었다.

심장을 꺼내둔 나무

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진 채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달리느라 벌렁벌렁 뛰어대는 심장 덕분에 나무에서 박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멋진 혹을 가졌구나.


 한 뼘 자라고 싶다는 욕심에 몸살을 앓는다. 갇히지 않기 위하여. 자라야 할지 혹은 깊어져야 할지. 착각과 상실 사이에서 저항하곤 한다. 봄이 오면 꽃을 틔우겠구나. 자연히 나이테도 늘어가겠구나. 어렴풋 나무의 마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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