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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주 Apr 04. 2024

금색 친구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나는 이 카메라를 처음 만났다. 친구에게 취미를 선물하기 위해 중고 마켓을 살피다 얼렁뚱땅 내가 반하고 만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실수로 활에 찔린 에로스가 떠오른다. 둥글둥글한 바디와 촌스러운 금빛 외관. 전원을 켜는 것 만으로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은 굉음이 나고, 렌즈 덮개가 숨겨지며 전원이 켜지는 카메라는 여타 카메라 보다 고장이 쉽게 난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런 사실이었다. (실제로 내 곁에 온 뒤  아이는 2번 이상 고장이 났고, 친구의 곁으로 간 겉부터 견고하고 듬직해 보이던 녀석은 4년째 고장 한 번 없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 감수할 정도로 나는 이 아이를 사랑했다. 매력을 묻는다면 촌스럽고 쉽게 고장 나지만, 누구보다 멋진 결과를 내어준다고. 그의 단점은 내게 더 이상 단점이 아닌 듯 어깨를 으쓱대며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함께 이곳저곳 많이도 떠돌았다. 나를 거쳐간 많은 카메라들과 집에 고여버린 카메라들의 서운함을 살필 새도 없이 외출할 때면 덥석덥석 그를 쥐어 집을 나섰다. 어느 날에는 카메라 케이스에 붙어있던 명표가 떨어졌는데 내가 지어준 이름도 아니지만, 그것이 꼭 명찰 같아서 실과 바늘을 꺼내 꾀어둔 기억 이 있다. 맞지 않는 색의 실로 명찰을 달아두니 토이스토리의 앤디가 우디의 밑창에 이름을 적어둔 것처럼 우리가 친구라는 표식을 남긴 기분이었다.


첫 번째 고장

 함께 다닌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셔터를 누르자 무언가 끊기는 소리가 나며 힘없이 전원이 꺼졌다. 증상은 반복되었고 전원은 들어오지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그런 카메라가 되었다. 한순간에 잡동사니가 되어버린 너를 가지고 나의 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은 종로에 가는 것. 세운상가에는 오래된 카메라 전문 명의들이 있으니 나는 곧장 종로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지하철로 한 시간. 걷고 걸어 세운상가에 도착했다. 나 홀로 익숙한 아저씨의 얼굴에 반가움을 느끼며 재잘재잘 증상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돋보기안경을 쓰고 카메라를 열어 찬찬히 내부를 살폈다. 그리고 고친다 하더라도 반드시 같은 이유로 고장 날 테니 부품도 없고 낡은 일제 카메라 보다, 튼튼한 새 카메라를 마련하라 덧붙이며 수리를 거부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기분. 쓰임을 잃고 하잘것없는 폐품 취급 당하는 너를 보고 있자니 상가 전체가 먼지로 가득 찬 것처럼 답답했고 정말 그런 것이 아닌가 의심까지 되었다.

나는 당시의 날씨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지만 그날을 매우 흐렸다 기억한다.

 고장 난 카메라와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누워 눈만 꿈뻑였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처음 카메라를 구매했던 번개장터 아저씨에게 연락을 했다.(일반인은 아니셨고 카메라를 수리 판매해 파는 아저씨였다) 이러이러한 사정을 토로하며 수리하고 싶다 말하니 그는 우선 그가 있는 부산으로 카메라를 보내라 말했다. 카메라를 포장하며 잠시나마 한줄기 희망이 솟는 듯했다. 하지만 역시 같은 답변을 받았다.


- “카메라 다시 보내드릴까요? 버려드릴까요? “

”아니요! 다시 보내주세요. 제가 보관할게요 “


바보 바보 아저씨.

1년밖에 같이 안 놀았으면서.

바보 바보카메라.


두 달쯤 지났을까? 번개장터 아저씨에게 연락이 왔다. 뒤판이 깨진 같은 기종의 카메라가 생겼다는 것. 원한다면 보내줄 테니 가지고 있는 기기의 부품으로 교체해 사용하겠냐 물었다. 불확실했던 무언가가 다시 반짝이고 있음을 느꼈다. 비좁은 마음을 깨고 다시 너를 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일면식도 없는 그가 다시 연락을 줬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 부풀어 있는 마음이 텍스트에 느껴질 만큼 목소리가 들릴만큼 감사하다 답장을 보냈다.

 우리에게는 제 몫의 임무가 있었다. 내가 춤을 추면 너도 함께 춤을 추었다. 나는 자주 네가 더 이상 춤출 수 없는 몸이 될까 두려웠지만 그렇다고 멀리하지 않았다. 더 담으려 애썼다. 한 달에 한롤. 12개월간 사진을 촬영해 고이 묵혀 두었다가 12/31에 현상하는 일. 나는 이 작은 프로젝트 덕분에 몇 년간 12월이 오는 것이 마냥 싫지 않았다.

많은 사람을 담았고, 많은 사랑을 보냈다. 내가 사랑하게 된 것들은 너는 열심히 주워 모아주었다. 사랑이 실린 것 이상으로 사진에서 빛이 났던 것을 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너는 항상 얼핏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몇 번의 해외여행 이후 어슴푸레 고장의 신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간과한 것이다. 아직 고장난 것도 아닌데 기미가 보이자 망가져버린다면 어쩐담 몇 개월째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오랜만에 중국에서 돌아온 친구를 담기 위해 너를 챙겼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담는 일은 네가 제일 잘하니까.


아직 튼튼하다 말하듯 너는 굉음을 내며 춤춘다. 요즘 분주하게 오래도록 함께할 방법을 찾고있다. 매년 사랑의 춤을 추기 위해. 열심히 몸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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