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를 속으로 줄줄 욀 정도가 되었음에도, 봤던 영화를 또 볼 만큼 본 것을 여러 번 보길 좋아한다. 닳을 대로 닳은 드라마 재방송을 매번 흥미롭게 시청하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습관인 것 같다.
익숙한 것을 반복해서 보는 행위는 인간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얼핏 보이는 나는 자극 추구형 같을지 모르나 새로운 것이 쏟아질 때, 나는 설레기보다 두렵고 이 홍수 속에서 지레 달아나고 싶다.
언젠가 인생을 관철하는 격언처럼 클립이 되어 돌아다니는 바닷가재 이야기를 본 적 있다. 랍스터는 몸집이 성장함에 따라 탈피를 하는데, 탈피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글쎄 영생할 수 있다고... (최고령 랍스터는 무려 200살 어르신!) 살을 조여 오는 압박에 집처럼 여기던 껍질이 불편해지는 순간. 탈피를 할 때가 된 것이다. 매년 10%~15%의 랍스터는 탈피를 포기하거나 도중에 지쳐 자연사한다고 한다. 낡고 망가진 외피는 살아남기엔 약하고, 두터워진 껍질은 살을 옭아맨다.
- “아~ 행복하다. 엄마!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 더는 자라고 싶지 않아”
유치원생 딸이 그렇게 말했을 때, 엄마는 내 딸이 이번 생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에게도 껍질이 있다. 언젠가 나와 한 약속. 원하는 것을 쥐여주겠다는, 가능한 생생한 삶을 살아보겠다는, 그런 것을 곱씹으면 명치가 찌릿찌릿하고 눈물이 줄줄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겁먹지 않은 것처럼 척척 발을 디뎌본다. 실은 무서우면서 머무르고 싶으면서 이런 지루함이 달가우면서.
매사가 그리운 것 투성이라면. 아직 때가 아닌 거라고. 아직은 아니라고. 때가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