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치를 위한 안전장치는 없듯이』

by 이찬우

바늘이 빨간칸을 피해 초록칸을 날카롭게 겨냥하면,

그때는 안심해도 되는 줄 알았지, 나는.

근데 몰랐던 거야.

안전장치를 위한 안전장치는 없다는 것을.

슬그머니 새어 나오는 내용물을 겨우 붙들어 매는

작은 매듭에 안심한 내가 바보지.

너무 어렸어, 지금도 그렇고.

가시 돋은 밤송이처럼. 나는 그러고 싶었다.

어딘가 부딪혀도 내가 아프지는 않은 그런.

근데 가시를 벗기려는 발길질에

알맹이 살갗이 너덜너덜 떨어져 나가더라고.

가시를 지켜줄 상위의 무언가는 없던 거지.

큰 욕심도 없었어.

그냥 투박하게 살고 싶었는데 잘 안되더라고.

완벽하고 싶은데 스트레스를 못 버틸 때면

열등감은 그샐 못 참아 차오르고,

그러면 또 스스로가 역겨워서 차라리

투박해지고 싶었는데

돌아보니 이것도 합리화더라.

내 성격을 피해 비상구를 찾는 습관 자체가

결국 내 성격이었던 거지.

이런 생각이 돌고 돌다 한 지점에 모이면

그곳은 철저히 짜인 철창 같았어.

안전장치를 위한 안전장치는 없는데

증오를 위한 증오는 너무도 많다고 느꼈거든.

증오, 후회, 열등감.

세 개가 삼박자를 이루는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잘 몰라서

그냥저냥 시간만 흘리고,

여차저차 있는 길 따라가다 보니 정말 많이도 지났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길을 정하지 못하니 길을 잃을 걱정도 없더라.

그래도 너는 꼭 갈 길을 정하면 좋겠다.

혹여나 길을 잃더라도 네가 고른 길을 가면 좋겠어.

사람 사는 곳엔, 적어도 너 있는 곳엔 기쁨이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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