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

군생활 절반 기행록

by 이찬우

0.18퍼센트. 군 생활에 있어 내 하루가 지닌 가치다. 이 작은 숫자에 기쁨, 또 슬픔이 담겨있다. 어느 날은 혼자 남겨진 것 같았고, 다른 하루는 오래 간직하고 싶은 설렘을 주었다. 0.18퍼센트 속에서 중심을 잃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되레 다른 사람의 중심을, 나보다 굳건히 박힌 그 중심에 도끼질한 적도 적잖다. 다 채우면 소원이라도 이루어질 것 같은, 기적의 보물 상자라도 되는 듯한 막대기를 보고 있노라면 많은 감정이 든다. 문득 훈련소 첫 주말이 떠오른다. 고작 1% 채우고, 텅 빈 것에 가까운 막대기를 앞에 두고 빡빡 밀린 머리의 동기들과 둘러앉아 벌써 1% 했다며 신나 하던 그때가 기억난다. 이젠 50% 조금 지났다. 허무맹랑함과 불행 중 안도. 이 두 가지가 교묘하게 스치는 순간에 내 0.18%는 크게 요동친다. 지난 절반에 어떤 하루를 골라 담았으며, 앞으로의 절반엔 무엇을 눌러 담을 것인지. 무엇을 얻었고 또 얼마나 잃었는지. 내가 다짐했던 것들을 돌이켜 보며, 이만하면 열심히 했다고 과거를 짜깁기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아픈 순간이 많기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로 설명하는 지난 절반은 방어기제의 구축이다. 사회에서처럼 행동하면 흔히 말하는 ‘폐급’으로 낙인찍히는 소사회에서 중간이라도 가려면 방어기제의 구축이 불가피했다. 하지 않던 생각을 해야 했고, 하지 않던 말을 해야 하며, 반대로 하던 말들은 꾹꾹 눌러 참는 편이 나았다. 그 때문에 조금 서럽기도 했다. 자신을 갉아먹어야만 타인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다면 그들의 시선을 바꾸고 싶었고, 고개를 바로 세워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내가 고른 것은 적응을 가장한 방치. 그리고 외면. ‘이래야 군대지’라는 변명에 너무도 많은 신념을 태워 보냈다. 광복의 순간에 내가 있었다면 아마도 행렬 맨 끝단에서 소심하게 태극기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되라고 배웠는데, 누구보다 나와의 타협과 합리화에 능숙한 어른이 된 스스로를 보고 있으면 믿어주는 사람들을 속이는 기분이다. 최현석 셰프는 셰프 위에 재료가 있다고 말했다. ‘재료’. 그래 결국엔 무엇을 담느냐의 문제이다. 매 하루는 어떤 기분을 담을 것이고 어떤 일을 담을지 정하는 문제이다. 다양한 재료에서 다양한 디쉬가 나온다면 버릇 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틔운다. 타인에게 떳떳한 하루가 아니라 나에게 떳떳한 0.18%로, 고집 있는 일상에 내 고집도 속삭이고 싶다.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불안을 덜어 평안을 채우고 싶고, 신경질적인 사람이 아닌 신경 써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막연한 성장이 아니라 여유와 부드러움을 가지고 싶고, 살랑이는 가을바람에 우리 마음이 흔들리기에, 스치는 낙엽 소리로 설렘을 주는 사람이면 싶다. 그리고선 같은 하루라도 그리움을 꼭꼭 눌러 담아 새하얀 겨울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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