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4

4. 꿈풀이

by 박래여


나는 꿈에 대해서 좀 예민한 편이다. 부처님을 독실하게 믿는 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인지 모르지만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일어나기 전에 새벽녘에 꾼 꿈이 어떤 것이었는지 먼저 챙긴다. 어떤 친구는 새벽에 아내와 살을 섞고 나야 하루가 개운하다지만 내 정력은 새벽에 아내를 건드릴만큼 강하지도 않았고, 어떤 친구처럼 머리맡의 자리끼나 담배를 먼저 찾는 것도 아니다. 무슨 꿈을 꾸었더라. 곱씹으며 뭉그적거리기 일쑤다. 언제부턴지 선명하고 좋은 꿈을 꾸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침마다 아내에게 지청구를 들으며 일어나는 것이다.

"눈 떴으면 벌떡 일어나 시원한 아침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그러면 오죽 좋아예. 영덕이 데리고 약수터에라도 다녀오시면 밥맛도 좋으실 테고 건강에도 좋을 텐데. 다른 집에서는 남편이 나이 들수록 새벽잠이 없어져서 피곤해 죽겠다고 난린데 당신은 그 반대가 돼가니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네."

"모르는 소리. 데카르트는 아침 이불속에서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위대한 철학적 명제를 깨달았다고. 혹시 아는가. 당신 남편이 그런 위대한 사람일지."

"알았어예. 그러니 일어나기나 하이소."

"어머이는?"

"아, 어머이가 아직 잠자리에 계시는 것 봤읍니꺼. 진작 영덕이랑 나가셨지예."

그러면서 이불자락을 확 낚아채면 나는 못 이기는 척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내 머릿속엔 여전히 간밤 꿈이 뭐였더라 하는 것만 가득 차서 오늘 일진이 사나울런가, 좋을런가 에 온 신경을 모으곤 한다.

내겐 가끔 너무 비슷하고 선명한 꿈을 꾸는 일이 있다. 다 허물어진 고가를 찾아가는 꿈이다. 숲이 꽉 우거진 고즈넉한 곳의 오솔길을 걸어가면 육중한 돌담길이 나오고 여러 천년쯤 된 기와집이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 집 뒤엔 언덕도 있고 골짜기도 나오고 널찍한 회색 바위 위에 앉아 철철 흐르는 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아래에 외나무다리가 놓여 있기도 하는 것이다. 꿈에서도 '어, 또 여기를 왔네.'하기도 하고 '지난번에 왔던 곳이잖아'하면서 신기해하기도 한다. 꼭 생시 같아서 소스라쳐 깨고 보면 꿈이었다.

그런데 구체적인 장소를 제공한 것이 지난번에 본 그 고가였다. 그곳이 낯설지 않았고 어디선가 본 것 같다고 느낀 순간 꿈을 깨고 보니 늘 꿈속에서 찾아갔던 곳이 거기였다는 것을 겨우 깨달았을 때는 벌써 여러 달이 훌쩍 지나간 후였다.

간밤에도 나는 그곳에 갔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한 분이 마루에 쭈그리고 앉아 긴 담뱃대를 댓돌에다 탁탁 두들기며 내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것 같은데 누군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그분이 소름 끼치도록 무섭다 느끼며 뒷걸음을 치는데 머리꼭지를 누군가 꽉 틀어쥐고 있는 것처럼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아 용을 써다가 꿈을 깼다.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무슨 꿈을 꾸길래 그리 끙끙 앓아 샀습니꺼?"

아내가 돌아누우며 걱정스레 물었다.

"내 땜에 잠이 깼나?"

"인자 일어날 시간이라서 예. 영진이 도시락 쌀라 쿠모 서둘러야 되것네예."

나는 김 주사가 했던 말을 떠 올렸다. 그 집은 여자가 죽어나가고 상피가 붙는 흉가로 소문이 났다 했다.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왜 자꾸 그 집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눈 좀 더 붙이실소."

아내는 이불속을 빠져나가며 새벽 단잠을 즐기는 내 습관을 들어 잠을 더 청하라 했지만 이미 잠은 창문을 통해 밖으로 훨훨 달아나고 없었다.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며 오늘은 김 주사에게 그 집 내력이나 들어볼 요량을 했다.

사무실 내 책상 앞에 앉았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 업무에 바쁠 김 주사를 불러 물어볼 수도 없었다. 사무실 안에서 사담하는 것을 금지시킨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내가 그 집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이해시킬 말이 없기도 했다. 술좌석에서 지나가는 말로 묻는 듯이 해 볼 도리밖에 없었다.

퇴근 시간이 되었다.

"김 주사, 나 좀 보세"

김 주사는 서무과 건설 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자네 오늘 시간 있나? 술이나 한잔 했시모 싶은데......"

"어젯밤 꿈이 좋더니 이거 웬 횡잽니꺼. 과장님이 술사는 깁니더."

"당연하지. 총각이 데이트 약속 있는 거는 아닌가?"

"걱정 마이소. 다음 주에 만내기로 했십니더."

"허, 그 새 애인 생겼나, 내 딸은 우짜고? 사람이 그리 조석지변이모 안되는데."

"아이고 마, 지 애간장 태우지 마이소. 영진이 기다리다가 우리 엄니 숨넘어갈 판인데 우짭니꺼."

"그래 어떤 처닌데?"

"고향 아지매가 중매를 섰지예. 거기 농협에 다닙니더. 집이 그 아랫 담입니다. 알고 봉께 코흘리개 적 친구 동생이라 예."

나는 왠지 정겨운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을 나서면서 주고받는 실없는 이야기지만 그 상대가 김 주사고, 김 주사의 고향 처녀라는 것에 따뜻함을 느낀다. 나는 시골을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 알 수 없는 부러움 같은 것을 느낀다. 그 고향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그곳에 산다는 처녀를 본 적도 없으면서 호감을 갖는다. 묘한 감정이다. 단지 그 처녀가 현재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 때문일까.

내겐 아늑한 운치를 느끼고 그리워해야 할 고향이 없다. 부산에서 나고 자랐으니 부산이 내 고향이고, 엄밀히 말하면 자갈치 시장 골목이 내 고향인 셈이다. 그런데도 나는 도시 냄새를 싫어한다. 변두리 촌 동네로 이사 다닌 것도 따지고 보면 흙냄새를 맡고 싶고 풋풋한 자연의 입김을 쐬고 싶어 하는 속내가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든가. 언젠가는 전원생활로 돌아가 텃밭을 가꾸며 수묵이 우거진 아늑한 정원도 손질하며 사방이 푸름으로 뚝뚝 떨어지는 조용하고 아늑한 농가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아들 영덕이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그늘에서 영덕이는 숨을 쉴 수 없는 아이로 자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그 아이가 숨 쉬면서 살아갈 터전이 어디일까. 농촌, 목가적인 삶이 아이에게 맞지 않을까. 나는 농촌의 넉넉한 품 안을 생각했다.

그랬다. 아들은 지능이 모자라니 단순했고, 대신 몸은 건강했다. 아들은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을 사랑했다.

'여보, 하나님은 참 공평한 분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예. 제 나름대로 한 가지씩은 쓸모 있는 재주를 주시는 걸 보면. 영덕이가 화분을 만지면 다 죽어가던 것도 싱싱하게 살아나예. 그 애가 만지면 잎이나 줄기에 윤기가 도는 걸예. 거짓말 같지만 참말입니더. 그 애가 가장 아끼는 화분이 어떤 건지 압니꺼? 당신이 산에서 캐다 심은 산죽이라예. 어째서 그 애는 대 종류를 좋아하는지 몰라.'

그 산죽은 몇 해 전 겨울에 지리산 등산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그 아래 가겟집에서 얻어 온 것이다. 산에 나는 대라 해서 산죽이라는데 대나무처럼 생겼지만 보통 손가락 굵기가 다 자란 것이었고, 마디와 마디 사이가 길며 잎은 댓잎보다 넙적하고 두텁고 거친 편이다.

그날 하산 길에 음료수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다가 가겟집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가게 안의 평상에 앉아 조리를 엮고 있었다. 하도 신기해서 그 조리 엮는 것이 대나무를 쪼갠 거냐고 물었더니 대가 아니고 산죽이라고 했다. 산죽이 어찌 생겼느냐니까 자기 집 뒤란으로 가자고 했다. 집 뒤편 언덕에 우묵하게 자란 것을 가리키며 산죽이라 했다. 조리 만드는 산죽은 태어난 지 일 년생으로 처녀 아이의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죽의 마디는 길고 매끈했다. 옛날부터 묵은 산죽은 긴 담뱃대 만드는 재료로 사랑을 받았고 발이나 삼태기, 소쿠리 등을 만드는 재료였다고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설대라고도 하고, 조릿대라고도 한다. 사철 푸른 잎사귀를 볼 수 있고 자잘하니 분재용으로 키우면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 그 뿌리를 한 줌만 파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삽으로 뿌리를 떠서 봉지에 담아주는 것이었다. 아이는 그 산죽 분재를 무척 아낀다.

"과장님 와 그리 서 있습니꺼? 오데로 갈랍니꺼?"

"응! 그래, 나이 탓인지 요새는 자주 멍청이가 되는 것 같으이. 어쩌까?"

"지가 모시께예. 전철 타고 가입시더. 지 중매쟁이 아지매 아구찜 솜씨 뵈 드리고 싶은데. 아구찜이 싫으시모 다른 곳으로 가시고예. 사방 천지가 먹자판인데 돈만 있으모 만고 땡이라예."

"총각이 돈돈 하모 도는 수가 있다던데 자네 모르나?"

"과장님도 농담 잘 하십니더."

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한마디로 북새통이다. 나는 지하철 이용객이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편리한 것은 좋지만 머리 위에 고층 건물이 내리누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지진이라도 일어나면 그대로 생매장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하면 오금이 저리다. 내 아들이 나의 이런 점만 쏙 빼닮아 저능아가 아닐까 하는 한심한 생각도 한다. 늘 다니는 길도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미로가 따로 없고 어디가 문인지, 타는 곳인지, 몰라 허둥대기도 한다. 부산 토박이라는 사람이 방황 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이 때론 기가 막히기도 하고, 때로는 우습기도 해 혼자서 실실거리다가 하도 파헤치고 새로 만들고 하는 도시의 하루살이로 그나마 버티고 살아가는 것이 대견한 일이 아닌가. 스스로 타당성을 만들기도 한다.

"내릴 시더."

서너 마장을 왔을까. 김 주사의 안내로 나는 지하철 입구를 나와 온갖 상표가 다닥다닥 붙은 휘황찬란한 상가를 지나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주로 학생들을 상대하는 지역인지 분식점 상호가 많았다. 그중 허름한 음식점 앞에 섰다. <고향 아구찜 전문>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었다.

"여깁니더. 보기엔 이래도 찜 맛 하나는 기똥 찹니더. 아지매! 저 왔십니더."

"이? 뉘라꼬? 경수 총각 어서 오이라. 어서 오이소. 총각, 손님하고 일로 앉으소. 그라네도 요새는 발걸음이 뜨음해 숙이랑 우째 잘 안되나 했거마. 이거 중신 어미 노릇 잘 못 했다고 뺨 맞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더이. 낮에 숙이 저거 옴마가 전화를 했더라. 둘이 잘 되는 눈치람서?"

육십은 됨직한 주인 아낙이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와 호들갑스럽게 반겼다. 푸짐하게 생긴 육덕에 사람 좋은 얼굴이었다. 빠글빠글 볶은 머리가 촌스럽고 텁텁한 맛을 풍겼다.

"아지매, 우리 과장님이십니더. 그라고 아구찜 큰 거하고 쐬주 주이소. 과장님 청하 할랍니꺼? 무학 할랍니꺼?"

"소주라면 역시 무학 아닌가."

"아지매 들었지 예?"

"하모, 경상도 사나이는 무학 소주가 딱 체질이제. 쐬주 맛을 아시는 분이네."

사실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샐러리맨 치고 술을 안 마시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회식이다 한 잔, 기분 좋다 한 잔, 기분 잡쳤다 한 잔, 손님 대접에 한 잔, 친구 좋다 한 잔. 한국 남자들에게 술은 마음을 풀어주는 약인 셈이다. 그래서 나도 술을 마신다. 사람들과 휩쓸려 다니며 마시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호젓이 마시는 것을 즐긴다. 아마 지난 십여 년 사이에 내 주량이 다 늘었을 것이다. 한 때는 폭음을 서슴지 않았었다. 영덕이를 보는 것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내 아이가 정상인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다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어째서 내 아이가 저능아란 말인가. 나는 늘 영리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내 아내 역시 그랬을 것이다. 영진이 역시 천재가 아닌가 했었고 아내는 영재 교육을 시켜 보고 싶다고까지 하지 않았든가.

그러나 엄연한 사실 앞에서 우리 부부의 절망감만 더 깊어질 뿐이었다.

"쬐끔만 기다릴소. 금세 내 올낑께내."

아낙은 소주와 잔과 깍두기를 상 위에 내놓고 부리나케 주방으로 향했다.

나는 왠지 그 아낙과 김 주사기 부러웠다. 한 고향 사람을 타향에서 만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어쩐지 김치 한 보시기라도 더 얹어주고 싶고, 고향에 일가붙이가 없어도 이웃들의 안부를 묻고, 코흘리개 적 이야기에 신명을 내는 걸 보면. 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면 친척을 만난 것처럼 반갑다고 하지 않든가.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시골에 고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고 친척 많은 사람들이 부럽다. 내겐 친척이라곤 없으니까.

"아지매, 아직 멀었십니꺼? 생소주만 마신 깨 속에서 난린데."

"다 됐구마."

"요새는 손님이 별론갑네예?"

"그라모. 방학 아니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야 찜은 제철 인기라."

주방과 홀 사이를 오고 가는 두 사람의 대화가 정겹다.

"과장님, 말씀 하이소. 술을 살 때는 무슨 일이?"

"일은 무슨. 자네 고향 소식이 듣고 싶길래 겸사겸사 술 생각도 나고. 그 웃담에 있던 고가 말일세. 그리 괜찮은 집을 와 그리 방치를 해 놨는가. 궁금해서 물어볼라 했네."

"아, 그거 예. 농촌에는 그런 빈집이 쌨십니더. 옛날에는 떵떵 기림서 살았던 집일수록 자슥들이 장성해서 도시로 나가 살고 노인네만 집을 지키다가 자슥 따라 나가든가. 돌아가시고 나모 빈집이 되는 기지예. 저거 살만하모 굳이 몇 푼도 안 되는 시골집 팔라고 합니꺼. 그렇다고 자주 와서 돌볼 수도 없다 보니 폐가가 되는 기라예. 그렇다고 도시 맹키로 세를 놓을 수도 없고, 또 농촌에 들어가 살라는 사람이 그리 흔합니꺼. 집은 사람 훈기가 있어야 안 썩는다는데. 그 집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꺼."

"그 집에는 내력이 있다면서?"

"아, 그거 예? 나중에 아지매한테 물어 보이소. 지가 자세히는 모르 거마 예."

김이 무럭무럭 나는 아귀찜이 나왔다. 아귀찜은 푸짐했다. 맛깔스러운 것이 어머니의 솜씨와 비슷했다. 아귀찜은 매콤하고 감칠맛이 나야 하고, 먹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야 제 맛이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무척 맛깔스러운 편이다. 재료가 그다지 든 것 같지도 않은데 먹어보면 입에 짝짝 붙었다.

"어머이, 저이 입맛은 지가 못 맞추것테예."

하면서 가끔 아내는 내 입맛이 까다롭다고 푸념을 했다. 그 속내는 어머니가 너무 야무지셔서 외동아들의 입맛을 까다롭게 해 자기가 힘들다는 시위 같은 것이었다.

"에미 손맛에 길든 탓일 끼다. 그리 걱정마라. 남정네가 입 까탈 부리모 지만 손해니라. 안 그라모 굶어라 쿠람. 금세 니 손맛에 길들낑깨 그리 타박 마라."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의 단수는 아내보다 한 수 높았다.

"과장님 맛있지예?"

"그러네. 아주머니도 이리 오시라 쿠람 손님도 없는데."

"아지매? 쐬주 한 잔 받으실소. 중신 잘 하모 술이 석 잔이라 캤는데 우선 한 잔만 잡술소. 우리 과장님이 아지매한테 물어볼 말도 있다쿠는데. 퍼떡 이리 오이소."

"아이구마, 말라꼬. 늙은 기 주책스럽고로."

댁호가 보촌댁이라는 아낙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김 주사 옆에 와 앉았다. 내가 술잔을 채우자 단숨에 비우고 내게 술을 권했다.

"아지매, 우리 과장님이 우리 동네 웃담에 있는 그 벼락 부잣집 이약이 듣고 싶답니더."

"그 집을 우찌 알고?"

아주머니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함산에 등산 갔다가 둘러보고 맘에 든 모양이라예. 그 집이 탐이 나는 갑는데. 아지매가 아는 기 있시모 말해 주이소."

"나도 처니 적에 어른들한테 들은 이약밖에 모르거마. 그 집은 재수 없는 집이라 예. 그 집 외동아들이 살았시모 한 칠십은 될 낀데. 진작 죽었다는 소문이고, 딸이 미국인가 캐나단가 어디에 산다는데 잘 모리것고. 몇 년 전에 한 분 나왔다 갔다는 소문만 들었제. 아매 그때 집을 팔았다제, 새 쥔이 눈 지는 알 수 없제."

"아지매가 아는 대로만 이약 해 보이소."

"잿골 할매가 더 잘 알낀데."

"잿골 할매가 눕니꺼?"

"그렁께 총각 신부 될 처니 하고 먼 친척 간이 거마."

"웃담에 삽니꺼?"

"그렇제. 그 할매하고 그 벼락 부잣집 사촌 여동생 하고 친구 정도 될 끼 거마. 촌수로 따지모 외종은 된다 더마 모르제. 한 이웃이 촌수 따져 올라가 보모 다 친 인척 간 아니 것나. 과장님, 촌에는 넘이 없십니더. 한 동네 사는 사람들은 다 핏줄이란 기 쪼깬 씩은 섞인 기지예."

"그람 아지매하고 지 촌수는 우찌 됩니꺼?"

"사돈에 팔촌쯤 되것제. 총각 옴마를 내가 성님이라쿵깨. 어쨌거나 아는 만큼 이약은 해 드리리다."

보촌댁의 이야기는 그저 전설 같은 내력이었다.

그 집터는 꿈에 용이 가서 앉은자리라 했다.

나는 꿈을 찾아 나왔다가 꿈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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