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3

3. 아내의 눈물

by 박래여

일요일 아침, 나는 느지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사한 연둣빛 꽃무늬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멀리 바다와 닿아 있었다. 수평선은 어쩌다 해맑은 하늘을 볼 때만 선명하게 선을 긋는데 그것이 둥그스름해 보이는 것이 신기했다. 지구가 타원형이란 것이 옳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면 수평선을 바라볼 때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여름을 향한 햇살이 조금씩 달구어지는 중인걸 보니, 아침 햇살이 저리 맑은 걸 보니 한 낮은 이마에 땀깨나 달리겠구나 싶었다. 햇살은 맑은 데 콧구멍에 들어오는 공기는 여지없이 탁했다. 대기오염이 오존층을 파괴할 지경이니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 청명한 날씨도 오전 중에 잠시 맛 뵈고 말 것이다 싶으니 불현듯 그곳이 그리웠다.

"꿈뜰."

나는 기지개를 켜면서 꿈뜰을 외쳤다.

"야! 머라 캤십니꺼?"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나오던 아내가 빨래 통을 들고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다. 영진이는 아직 자나?"

"참 당신도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 하네. 시간이 몇 신데 그 아가 집에 있어예. 도서관에 공부 하로 갔십니더."

"같이 어머이께 갈라 캤더마. 우리나 댕겨 와야것네."

"그럴라고 했십니더. 얼렁 아침 드시고 나설시더."

자주색 프라이드 승용차의 아내 옆자리에 앉아 집을 나섰다. 아내는 무사고 운전 10년 경력자다. 녹색 면허증을 가졌다. 아내는 그 면허증은 영덕이가 준 것이라고 했다. 첫째도 아들의 안전이었고 둘째도 아들의 안전이었으니 항상 남에게 양보하고 천천히 다닌 덕이라 했다. 나는 아내의 옆자리에 앉아 편안히 잠들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한다. 내가 그 안락함을 이용하는 횟수는 극히 드문 일이지만.

나는 어머니가 계신 선암사를 생각했다.

선암사는 백양산 아래 고즈넉이 들어앉은 큰 절이다. 상수리, 해송, 잡목 등이 꽉 찬 숲 안에 숨어 있는 고풍스러운 절이다. 지금은 아파트 숲에 가려 있지만 삼십여 년 전에는 그 절에 한 번 다녀오려면 다리 쉼을 수도 없이 해야 했다. 산비탈 동네에서도 한참을 오르다가 후줄근한 달동네 판자촌을 지나면 길 아래 다랑논과 손바닥만 한 밭이 오밀조밀하게 있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걷다 보면 골짝에서 흐르는 물소리도 들리고 새들도 지저귀고 바람소리에 서로 몸 부비는 나뭇잎들의 속삭임도 들리는 아늑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심들제? 쉬엄쉬엄 가자."

어머니는 산 구비 하나를 돌 적마다 다리 쉼을 하며 관세음보살을 염송 했다. 어머니는 내 이마에서 땀을 닦아주시며 부산 시내를 내려다보곤 했다. ‘아가, 우리 집이 오데고?’ ‘저어기.’ 내 손가락 끝을 바라보다가 ‘아이쿠 내 새끼 장하다.’ 면서 업어주시곤 했다. 어머니가 아마 삼십 대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힘들다고 보채는 나를 업고도 가고 걸려서도 갔다. 길가에 핀 들꽃을 꺾어 주기도 하고, 산딸기 같은 열매를 따서 먹여 주기도 했다. 불교 설화를 재미있게 들려주시곤 해서 절에 가는 길이 그다지 싫지는 않았다. 평소에 어머니는 아들에게 무척 엄한 편이었지만 절에 가는 날만큼은 부드럽고 자상한 어머니였다. 그날만큼은 나도 마음껏 어리광을 부리고 장난도 쳤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과의 오붓한 나들이를 무척 즐기셨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딴 곳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매혹시킨 것은 부처도 아니었고, 풍경도 아니었다. 일주문 안에 험상궂게 서 있는 문지기 사천왕과, 늘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던 머리가 허연 조실 스님과, 대웅전 앞의 석등에 낀 푸른 돌이끼였다.

나는 선암사를 떠 올릴 때마다 그 세 가지 그림이 너무도 확연하게 떠오르기 때문에 어려서 본 신기루 거나 꿈을 꾼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어른이 되어서도 진짜처럼 믿는 수가 더러 있다지 않는가.

지금은 그 조실 스님도 저승에 드신 지 오래고 큰 불사를 일으켜 일주문의 사천왕도 새 단장을 했지만 꼭 한 가지 석등에 낀 돌이끼만은 더 묵직하고 푸르게 자라고 있어 내 기억 속의 그림이 만들어낸 환상은 아니었나 보다고 생각할 정도다.

"차가 너무 막히네예. 도로 사정이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니 늘어나는 것은 자가용뿐인 것 같아예. 요새는 전철 타는 기 빠르다는데."

아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보, 동전”

시내 통행로를 내는 곳이다. 동전 세 개를 통 안으로 던지자 차단기가 올라갔다.

주말인데도 도로는 차량의 홍수로 차들은 온통 거북이걸음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것이 차량이요, 고층 건물이었다. 오륙 년 전만 해도 중심가만 벗어나면 선암사 가는 길은 시골길 같았다. 산그늘에는 논밭이 있었고 푸성귀며 곡식들이 자라고 있었다. 들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습을 한가로이 즐기며 지나다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 근교가 변하고 있다. 선암사 입구가 그 사이 또 어떻게 변했을지 모를 일이다. 지난가을에 다녀오고는 못 갔으니 꽤 오랜만의 행보인 셈이다.

나는 아내의 옆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내는 온 신경을 운전에 집중한 채 앞만 살피고 있었다. 아내의 곱슬곱슬한 파마머리가 손수건으로 질끈 동여 매인 채 어깻죽지 있는데서 딸랑거렸다. 갸름한 얼굴에 오뚝한 콧날이 언뜻 보면 꽤 이국적으로 보였다. 자세히 보면 고집스러운 점도 엿보이지만 아내의 진지한 표정이 얼핏 어머니를 닮았다고 느꼈다. 생각을 그리해서인지 볼수록 어머니를 닮아 보였다. 한 식구 되어 같이 살다 보면 서로 닮는다더니 나와 닮아야 하는데 어머니를 닮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아내의 얼굴은 평온하다. 속마음도 저렇듯 평온할까. 사람이 절망과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이다 보면 체념도 되고 달관도 되는 모양이지만. 아내도 달관을 한 것일까. 나 역시 이젠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지만 가끔은 아니라고 왜 내가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느냐고 따지고 싶은데 아내는 오죽할까.

영덕이는 올해 열다섯 살이다. 사람들은 내 아들을 보고 바보, 좋은 말로 정신 지체아라고 말하지만 나와 내 아내에겐 단 한 명뿐인 귀한 아들이다. 내 아들의 십오 년 인생, 그리고 살아갈 남은 인생, 아내와 나는 아들의 장래를 준비해 주어야 할 짐이 있다. 부모가 없는 저능아의 남은 인생은 고달프고 불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부모가 되어 뭘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십여 년을 생각했다.

내 아들 영덕이가 저능아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꼭 십 년이 걸렸다.

처음으로 내 아들이 저능아라는 사실을 안 것은 두 돌이 지난 뒤였다. 첫 돌 때 아이는 겨우 문갑을 잡고 일어설 정도였다. 발육은 좋아서 또래 아이들보다 덩치는 컸다. 장군감이라고 어머니는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말을 못 했고 행동이 느렸다. 워낙 순둥이라 늦되는 모양이라고 예사로 생각했다. 두 돌이 지나서도 아이는 전혀 대 소변을 가리지 못했고 걸음걸이가 시원찮았다. 겨우 엄마란 말을 웅얼거리는 정도였다. 아내는 조금씩 조바심을 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의도 임걸용>의 전설을 이야기하시며 늦되는 아이도 있으니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임걸용의 전설은 지리산 아래 경남 산청군 시천면 내공리 정각사란 절터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긴데 선암사 스님에게 들었단다.

옛날 그곳에 가난한 엿장수 부부가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어찌 된 셈인지 일곱 살이 되도록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어미가 업고 다니며 엿장수를 했는데 일곱 살이 넘어 덩치가 커지자 업고 다니기가 힘들게 되었다. 부득이 아이를 집에 두고 장사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집안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부부는 밤새도록 엿을 만들어 다음 날 팔만큼만 가지고 집을 나섰다. 나머지는 그릇에 담아 방안의 선반에 얹어놓고 장사를 나가곤 했는데 장사를 나갔다 오면 선반에 얹힌 엿가락 수가 십여 개씩 없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엔 예사로 생각하던 아이의 어머니도 시일이 지날수록 엿가락 수가 모자라는 것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 말도 못 하는 아이가 있는데도 도둑질을 해 가나 싶어 도둑을 잡을 결심을 했다. 하루는 평소처럼 장사를 나가는 척하고 집 밖에 숨어서 망을 보았다. 해가 설핏 기울도록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미는 오늘은 엿가락이 다 있겠구나 싶어 안심하고 들어와 선반의 엿을 살피니 여전히 십여 개가 없어진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다음날은 더 눈에 불을 켜고 숨어서 망을 보았다. 온종일 사람이 얼씬거리는 흔적이 없자 집안으로 들어서는 중인데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요놈을 잡았구나. 살그머니 문 쪽으로 다가가 손가락에 침을 묻혀 구멍을 뚫고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어미는 방안의 광경을 보고 기가 꽉 막히고 괘씸한 생각에 열이 솟구쳤다. 구들장을 지고 누운 병신 아들이 호주머니에서 실 달린 엽전을 꺼내더니 윗목에 있던 화로에 던져 달군 후 선반의 엿 그릇에 던지는 것이었다. 엿이 엽전에 꽂혀 굳어지자 실을 당겨 엿가락을 떼어먹는 것이었다. 어미는 너무도 화가 나서 왈칵 문을 열고 들어서며 대뜸 한다는 말이

"요 도둑놈아, 아랫목에 똥 싸고 웃목에서 밥 쳐 묵는 놈아, 그래 구들장 지고 눠서 한다는 짓이 도둑질을 해 처먹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는

"옴마, 이름을 지 조서 고맙습니더."

하며 그 길로 집을 나가 삼남 일대를 주름잡는 대 도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임걸용은 팔도 거상의 봇짐을 털고 탐관오리, 서민의 피를 짜는 양반의 금고를 털었지만 부하 먹일 만큼만 남기고 가난한 빈민들을 구제했다. 해서 의적으로 칭송이 자자 했다 한다.

어머니는 영덕이도 그런 큰 사람 되길 바랐던 것일까, 아님 아내에게 임걸용의 어머니 같은 막된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삼가라는 말씀이었는지 모른다.

"그 에미가 장군 될 놈아 했시모 장군이 될 아이가 아니었것나. 방정맞은 여편네가 지 자슥의 인생을 망친 기제. 나라에서 임걸용을 잡을라꼬 용을 써도 잡을 재간이 있어야제. 나라에서 지관을 내리 보내 그 터를 살펴보라 했더니 한 나라의 임금이 태어날 자리 인기라. 이미 임금이 있는데 또 다른 임금이라니 역적 아닌가. 나라를 뒤집을 인재가 태어난다는데 나라에서 가만히 있것나. 그래서 임걸용을 더 잡을라고 혈안이 되었제. 후대에 또 그런 불상사가 나올까 봐 아예 그 터에다 절을 진기라.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를 모시모 이름 난 고승이 나올 자리라 해서 절이 들어섰다는 기다. 에미도 우리 영덕이 때문에 너무 가심 졸이지 마라. 삼시랑이 지 복주머이 챙기서 세상에 내 보내는 기다."

"어머이 지금은 이십 세기라예. 과학이 발달한 시대라고예. 답답해 죽것거마."

아내는 금세 울음보를 터뜨릴 것 같이 되어 서운해했다.

"의사 찾아 댕긴다고 타고난 팔자가 바뀔 리 없다. 다 소양 없다. 부처님의 가피를 바라는 수밖에."

그러나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학교까지 사직하고 아이에게 매달렸다. 아이를 태우고 다니기 위해 운전 면허증을 따고 우리 형편에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중고 자가용도 구입했다. 아내의 운전 연수 때는 어머니가 아이와 살림을 맡았고 차를 살 때도 어머니가 쌈짓돈을 내놓으시며 적극 권하시더라는 뒷말도 아내에게서 들었다.

"할 만큼은 해 봐라. 그래야 원도 한도 없제. 하시는데 그동안 서운했던 감정이 싹 녹음 시로 얼매나 고마웠는지 엉엉 울었어 예. 어머이랑 같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 부산시 교육위원회에서 주관한 교육 행정 5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다. 교육 위원회에서 관내 학교 서무과로, 교육청으로 전전하다가 스물일곱에 아내와 결혼을 했다.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아내는 고등학교 때 사귄 여자 친구다. 아내와 결혼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나중에 틈나면 이야기하겠지만 우선은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대로 따라가기로 하자.

내가 장가를 들자 어머니는 시장의 채소 좌판을 거두어 버리고 과일이나 건어물 등 행상을 하려 다니기 시작했다. 먼 시골을 찾아다닌다며 여러 날씩 집을 비우곤 했다. 우리에게 신접살림 맛을 보게 하려는 배려였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나는 어머니의 행상을 말렸다. 박봉이지만 이제 한 가정을 꾸리고 살만큼 든든한 직장인이 된 터에 굳이 행상을 하실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고, 둘이 벌어 세 식구 사는 데는 아무 불편 없다고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한 곳에 붙박이로 살았지만 이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면서 당신에게 떠돌이 근성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행상이 천직 같다 하셨다. 다만 손자가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자 하셨다.

"아직 나는 젊다. 홀 시에미 모시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을 게다. 그러니 나를 집안에 들어앉힐 생각은 마라. 청춘을 시장 바닥에서 살아온 내다. 사람한테는 돈보다 귀한 기 있니라. 지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음도 넓어지고 몸도 편한 기니라."

정말 어머니는 첫 손녀 영진이가 태어나자 행상을 그만두셨다.

아내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는 아내 대신 집에서 육아와 살림을 돌봐주셨다. 다시 둘째 아들, 영덕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둘째가 비정상이었다. 두 돌이 지날 때까지 아이의 발육이 좀 늦는구나 하다가 망치로 뒤통수를 호되게 맞은 격이었다. 아내는 직장조차 그만두고 아이에게 매달렸다.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이름난 병원마다 문전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이름 난 한의사며 점쟁이를 찾아다니며 아이의 증상을 호소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허탈감뿐이었다. 의학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상아보다 뇌의 발육이 더딜 뿐이라는 것이다. 저능아는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가 있는데 우리 아이는 유전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소리를 들은 아내는

"당신 웃대에 염색체 이상이 있다는 말 못 들었습니꺼? 우리 집안에는 없어예. 당신도 알다시피 웃대부터 교직에 몸담아 온 집안이라 깨끗하다는데. 내가 뭔 죄를 지었다고. 하나님도 너무 하시지. 벌 하시려면 나를 벌하시지 왜 우리 아이를, 왜 우리 애가 저래야 하냐고 예."

아내는 과거까지 들먹이면서 괴로워했다.

"또 그 소리. 염색체 돌연변이가 생겨 저능아가 탄생할 수도 있다지 않나. 우짜다가 봉께 우리가 그 몇 백분의 일에 해당된 기제. 자라면서 정상아가 될 확률도 있다니까 잘 키우는 수밖에 없는 기라. 당신이 그리 맹근거는 아니니 너무 자책하지 마라."

"당신은 우찌 그리 넘 이약 하듯이 합니꺼. 나는 속이 새까맣게 타는데. 참 편해서 좋겠네예. 당신 집안에 영덕이 겉은 사람 있는 거 아입니꺼? 우리 아들이 와 그래야 되는데예. 어머이는 맨날 절에 가 공 들이면서 와 우리 아들 사주 잘 타고나라고 안 빌었시꼬."

"어머이한테까지 화살 돌리지 마라."

"진짜 당신 웃대에 대해서 말해 보이소."

"나도 내 웃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했지 않소."

"뭔가 있어예. 안 그라모 어머이가 저리 태연하실 수 없어예. 바보 손자 낳았다고 며느리를 닦달할 만도 한데. 어머이한테 물어 보이소. 아는 기 있는지. 유전이라 쿠모 지 맘에 체념이라도 할 낀데. 환장 하것테 예. 넘들이 내만 쳐다보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고 다 내 잘못인 것 같아서 그 아랑 죽고 싶다고예."

아내의 절규는 너무나 처절했다.

나는 차마 어머니께 묻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해 왔던 그 말을 물어야겠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오랫동안 나 자신을 끝임 없이 괴롭혔던 문제, 어머니의 아픈 과거일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물을 수 없었던 나의 내력이었다.

그날은 어머니께서 늘 그래 왔던 초하루였다. 영덕이가 다섯 살이 되자 어머니는 나 대신 영덕이를 데리고 절에 다니셨다. 그날도 어머니는 영덕이와 그 대침을 가지고 절에 다녀오겠다고 나서는 걸 잠시 드릴 말씀이 있다며 붙잡았다.

내 손에 끌려 방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좌정하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이고?"

"어머이, 인자 말씀 해 주실 때도 된 것 같아서 드리는 말입니더. 저도 아이가 둘이나 되는 가장입니더. 인자 아버지 이야기를 해 주셔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예. 저는 어째서 어머이 성을 따랐습니꺼?"

한 순간 어머니의 얼굴빛이 파리해지면서 손끝이 가늘게 떨렸다. 하얗게 변해가는 입술과 표정을 바라보고 있기가 면구스러워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도 길고 무거워 나 자신이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 알고 싶었나?"

"예."

"모르는 기 약이라는 말도 있니라. 나는 고아라서 뉘 집 자석 인지도 모르고, 니는 내가 평생을 가슴에 묻어야 할 사람의 씨니라. 비밀이란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차마 지금은 말할 수 없구나. 이적지 가심에 묻고 살았시모 효도하는 셈 치고 이자 뿌리거라. 절에 댕기 오꾸마. 나무 관세음보살."

어머니는 더 이상 말하기가 괴롭다는 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가셨다.

절에 다녀온 다음 날로 어머니는 그만두었던 행상 보퉁이를 이고 떠나셨다.

아내는 아들을 특수아동 자활 센터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폐증 증세와 비슷했지만 지능지수가 지극히 낮은 그저 조용한 아이였다. 감정 표현이 별로 없는 무덤덤한 아이였다. 아이는 일곱 살이 되자 대소변도 가리고 간단한 의사 표현도 하여 우리 가족을 기쁘게 했다. 의사는 좋은 징후라고 했다. 나는 임걸용의 전설을 수시로 생각하며 내 아이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빌었다. 아내는 마치 아이가 긴 잠에서 깨어날 것처럼 기대에 부풀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부질없는 바람인가를 뼈저리게 깨달으면서도. 아내가 그런 희망마저 버린다면 살아가야 할 가치를 상실하고 말 것 같았다.

"당신에겐 자식이 또 있다는 것을 설마 잊지는 안았겠지? 영진이한테도 신경 좀 써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 애는 제 몫은 챙기는 야무진 아이니 걱정 안 해도 됩니더."

"아직 어린애 아닌가. 옴마 정을 그만큼 필요로 할 나이고 작은 애는 인자 포기 하자. 그저 건강하게 자라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하모 안 되것나?"

첫 딸을 낳고 우리는 행복했다. 어머니도 딸은 살림밑천이라 좋아하셨다. 아이는 또 무척 영특하고 올됐다. 딸은 일곱 달 만에 대 소변을 가리는 기특함을 보였고, 첫 돌 전에 마음대로 뛰어다녔고, 온갖 어휘를 다 구사해할 말을 했다. 그런 아이였기에 제 어미가 동생 때문에 저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투정 부리기보다 다 큰 아이처럼 의젓하게 굴어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나는 혹시나 딸애가 애정 결핍을 느낄까 봐 아내 대신 애정 공세를 펴곤 했다. 기껏 당직 날 사무실에 데리고 가서 동화책을 읽어 준다거나 선물을 사 주는 정도였지만 딸애는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가끔 딸애는 나를 당혹스럽게 하고 가장으로서의 무능을 일깨우게 했다.

"아빠, 영덕이는 아기 동잔가 봐요."

"왜?"

"착하니까, 착한 사람은 성 낼 줄도 모르고 욕심도 없대요. 영덕이는 착해"

"그래 영덕이는 아기 동자야, 너에겐 유일한 동생이고. 네가 누나니까 동생 잘 돌봐주어야 돼."

"알아요."

"우리 진이에게 엄마가 너무 무심한가 보다. 너도 엄마가 많이 필요할 텐데."

"아니, 아빠가 대신해 주시잖아요. 엄마는 영덕이가 말도 못 하게 개구쟁이면 좋겠다고 해요.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픈가 봐요. 자주 우시거든요. 엄마를 도울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는데 영진이 일은 영진이가 하는 방법뿐이었어요."

딸의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쪽이 아렸다.

나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 주었든가. 아내가 아이를 업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뛰어다니며 초조하게 그 수십 가지 검사를 하고 치료 방법을 찾아 의사의 조언을 구하는 동안, 강연회장이든 세미나든 심리학 강의만 있다면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는 동안, 두뇌 발달에 좋다는 민간약을 찾고 한의사를 찾아 동분서주하는 동안, 아이를 앉혀 놓고 말과 행동을 가르치기 위해 애써다가 아이를 안고 같이 우는 동안, 나는 뭘 했는가. 그저 사무실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줄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먼눈 보기만 하다가 현실 도피의 꿈만 꾸지 않았든가.

아내가 흘린 눈물과 한숨을 합치면 다대포 앞바다만 하지 않을까. 가끔 퇴근해서 아내의 얼굴을 보면 산후 풍 걸린 산모처럼 퉁퉁 부어 있곤 했다. 그럴 때 나는 속으로, ‘당신은 그리라도 울 수 있으니 다행 아니오. 나는 기껏해야 가족이 모두 잠든 밤 살그머니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소리 없이 울거나 퇴근 후 어두운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울다가 술 취한 척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것이 고작이었소. 그 심정도 모르고 당신은 날 타박했소. 어찌 그리 냉정할 수 있느냐고, 내 아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능아로 평생을 살아야 하는 운명인데 아비가 되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지만 내가 어쩌란 말이오.’ 하면서 아내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영덕이의 재활원 생활도 몇 달 만에 끝이 났다.

아이가 여덟 살의 가을, 우중충한 날씨였다. 태풍이 올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하늘이 끈적끈적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날이었다. 태풍 대비를 하라고 방송에서 방방 떨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출근한 길이었다. 마악 아침 조회를 끝내고 와 자리에 앉았는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네, 서무과 박 권섭입니다."

"여보, 빨리 좀 올 수 없어요?"

아내의 목소리엔 기운이 하나도 없었고 목도 쉰 것 같았다. 그 시간이면 아이를 데리고 재활원 센터에 나가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심상찮은 느낌이 들어 외출 계를 낸 후에 택시를 불러 타고 부리나케 집에 도착했다.

아내는 벌써 통통 부은 얼굴로 나를 맞기도 전에 울음보 먼저 터트렸다. 나는 아내의 야윈 어깨를 감싸며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한바탕 우는 것으로 속 풀이를 한 아내는

"쟤가 왜 저래예? 이젠 안 하던 짓을 다 합니더. 글쎄 재활원 가자고 옷을 갈아입히는데 갑자기 막 악을 쓰면서 버둥대더니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꼼짝을 안 합니더."

나는 아내를 떼어 놓고 아이방의 문을 열었다. 그 새 옷에 오줌을 쌌는지 지린내가 진동을 했다.

"영덕아!"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대침을 품에 꼭 안은 채 멀뚱히 천정을 보고 누웠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할무이 가, 아바, 할무이 가."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데려다 달라는 뜻이었다.

어머니는 그때 선암사에 계셨다. 선암사는 불사를 크게 일으켜 대웅전과 요사 채를 증축하는 중이었고 어머니는 공양주 보살로 아예 들어앉을 참인지 그곳에서 지내고 계셨다. 요사 채 방 한 칸이 어머니의 몫이라 했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영덕이의 근황을 알렸고 어머니는 서둘러 돌아오셨다.

"인자 이 아는 내가 맡으련다. 에미는 아 땜에 속 썩이지 마라. 다 부처님의 뜻인 것 같다. 부처님의 가피로 사람 구실을 할랑가도 모릉깨. 아 고상시킴서 싫다는 거 어거지로 하지 마라. 그만큼 했시모 됐다."

어머니의 말씀은 아주 단호했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린 서릿발 같은 명령으로 들렸다.

아내는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아내도 지칠만한 세월이었고 체념도 하던 중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절에 가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가끔 병이 도지는 것처럼 행상을 떠나시곤 했는데. 그럴 때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앉아 말과 글을 가르치는 것이 아내의 일과가 되었다. 포기했다가도 다시 꿈틀거리는 눈물겨운 모정에 나는 숨이 막히곤 했다. 아이는 희한하게도 무척 더디지만 한자 두자 반복 학습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가도 어머니가 행상에서 돌아오면 제 할머니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와 절에 다니면서 웅얼웅얼 염불도 외웠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천수경과 반야심경을 웅얼거린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신통방통하다. 좀 모자라면 어떠랴, 건강하게만 자란다면. 그런 심정이기도 하는데 아내는 아직도 아이의 재활을 포기할 수 없는지 특수아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문의도 하고 전문인의 상담도 받는 눈치다.

"일요일인데 무슨 차가 이리 밀리는지 원 인자 운전하기도 힘들어 못해 묵것네. 여보 다 왔어예."

아내의 말에 눈을 떠 보니 차는 이미 절 앞 주차장에 들어와 있었다. 절 코앞에서 다세대 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도시 근교의 자투리땅도 금싸라기가 되어 있으니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어도 집이 들어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일주문 주위엔 숲이 무성했고 굵은 홰나무와 상수리, 소나무가 절을 감싸고 있어 절에 드는 길은 아늑한 숲이라 절에 가는 맛이 난다.

아내는 언제 챙겨 넣었는지 차 트렁크에서 과일 상자를 들어냈다.

나는 아내에게서 과일 상자를 받아 어깨에 걸치고 일주문을 들어섰다. 사천왕이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봤다. 사천왕만 보면 없던 죄도 생길 것처럼 주눅 드는 것이 영 불편한데.

"여보, 영덕이가..."

대웅전 앞 석등 옆에서 아이가 손에 대빗자루를 든 채 우리를 바라보고 헤벌레 웃고 있었다.

"영덕아!"

아내의 목소리엔 벌써 울음이 담겼다가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가고 있었다. 순간 나는 머리가 허연 노승이 그곳에 서서 빙그레 웃고 있는 환영을 보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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