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 지붕 위에 바위솔이
하산을 하는 중이었다. 겨우 가파른 산비탈 길을 내려서서 산모롱이를 돌아 앞이 확 터인 작은 능선에 섰을 때였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끈적끈적하게 난 등의 땀을 식혀주기에 손색없는 바람이었다. 시원한 바람 한 자락에 그만 '허참 시헌 타'를 연발하며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던 찰나였다. 내 눈에 섬광처럼 휙 지나가는 빛을 본 것 같았다. 뭘까, 수건을 미처 얼굴에서 떼어내지 못하고 그곳을 직시했다. 저 댓잎이 반짝였나.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내 마음을 알아챈 것처럼 바람이 불었고, 대나무가 일렁이며 한쪽으로 기울자 그 실체가 드러났다. 낡은 기와지붕이었다.
‘뭔가 희끗한 걸 본 것 같은데.’
그랬다. 내가 그 집을 처음 보았을 때, <어셔가의 몰락>이 생각났다. 에드가 알렌 포오의 단편이든가. 그 집이 바로 소설에 나오는 저택과 흡사하다는 느낌, 금세라도 ‘으 흐흐’ 하는 귀신 울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음침하고 으스스한 느낌, 물론 그 저택과는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우리의 전통 가옥인 기와집이었는데도 첫 느낌이 그랬다.
무성한 대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것은 제법 규모가 큰 고가(古家) 같았다. 자세히 보니 낡은 기왓장 틈새마다 자잘한 풀이 자라고 가랑잎이 쌓여 있는데. 연꽃 봉오리가 쏙 올라온 것처럼 생긴 이상한 풀이 드문드문 솟아 있었다. 저것은 또 무엇일까. 순간 나는 뭔가에 감전당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예리한 칼날이 내 가슴을 쭉 긋고 내려가는 것처럼 짜릿한 통증이 가슴을 쳤다.
‘어머님이 늘 말씀하시는 그것이 아닐까. 대나무 밭에만 피는 연꽃! 아까는 어떻게 저 지붕을 못 봤을까.’
그랬다. 산을 오를 때도 그 대밭 옆을 지나쳤지만 대숲 안에 집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 푸르고 싱싱한 대나무만 너무 울창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 집은 마을 옆에 있는 논과 밭을 지나, 작은 둔덕 옆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산을 한참 오른 후에 뒤돌아보아야 보이는 집이기도 했다. 집을 포옥 감싸고 있는 무성한 대나무 때문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일 턱도 없는 그런 집이었다.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면 발복 하리라.’
뜬금없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 문장이었다.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면 발복 하리라.’ 그것은 어머니의 염불이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승복을 입고 염주를 굴리며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리면 발복 하리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고 계실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나무 밭에 연꽃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는 데도 어머니의 염불은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연꽃은 진흙 속에서만 피는 꽃 아닌가. 그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어머니의 염불은 한결같았다.
어려서 어머니께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었다.
"후제 니가 어른이 되모 알랑가. 이 말을 새기 놔라. 온젠가는 알 날이 있을 끼다."
그것이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어머님이 염불처럼 외우시던 그 문장이 생각난 것일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대나무 속의 기와지붕은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어찌 보면 아직 피기 전의 연꽃 봉오리 같기고 하고, 어찌 보면 꼭 마의 산의 돌탑처럼 솟아있는 이상한 풀은 내 머릿속을 헤집고 들어와 휘저어 댔다.
"어이, 저게 뭔가? 저 대나무 속에 있는 기와지붕에 난 저것 말이다."
나는 앞서서 부지런히 내려가는 일행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내 목소리에 일행이 멈춰 서더니 ‘어디 어디’하면서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을 바라봤다. ‘어, 저기 집이 있었네.’ 하는 사람도 있고, ‘기와집이 멋진데. 옛날에는 잘 살았던 집인가 봐. 근데 낡은 걸 보니 빈 집 같네.’ 자기들끼리 이야기가 분분했다.
”저거 와송인데. 항암 치료제로 쓰인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떤 일행이 아는 척 하자
"글쎄 예. 저거 하늘 돈네이라 카는 건데예"
하면서 김 주사가 나를 돌아봤다.
"글쎄, 하늘 돈네이? 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긴 한데. 가만, 그러고 보니 김 과장이 준 사진에서 봤던 것과 닮은 것도 같고. 그걸 뭐라더라. 바위 솔이라고 했지 아마."
”예? 바위 솔예? 이름 참 예뿌다. 우리 동네에서는 하늘 돈네이라고 합니더. 저거라먼 쌨을 낀데. 오래된 지붕이나 다랭이 논두렁에 많이 나는 건데. 저런 거 길가에도 쌨는데.”
그랬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김 과장이 보여준 사진 속의 식물과 닮았다는 것을. 그런데 내가 왜 그렇게 이상한 느낌을 받았을까. 암을 앓는 사람은 김 과장이고, 겨우 사진으로만 본 이상한 풀인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잠시 김 과장 생각을 했다.
김 과장은 얼마 전까지 관내 중학교 서무 과장을 했지만 위암으로 명예퇴직을 하고 투병 중인 사람이다. 그가 바위솔을 구해서 생즙을 내어 먹으니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면서 혹 시골에 가거든 오래된 고가나 오래된 돌담을 잘 좀 살펴보라며 사진 한 장을 주었다. 항암 치료제로 쓰이는 건데 옛날에는 여자가 애를 떼어낼 때 썼다는 독초이기도 하다면서 꼭 부탁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일설에는 어느 한의사가 재배에 성공하여 진액을 내어 판다지만 약값이 워낙 비싸 서민은 사 먹을 엄두도 못 낼 정도라고도 했다. 막상 구하려니 귀하단다. 몇 년 전만 해도 농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었지만 오래된 돌담이 헐리고 논밭이 경지정리가 되고 낡은 기와지붕이 뜯겨 나가는 바람에 귀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묵은 돌담이나 바위틈에 나는 여러해살이풀로서 소나무처럼 생겼다고 해서 바위솔, 혹은 와송이라고 하는데 지지부지란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단다. 지지부지란 이름을 아는 사람은 흔하지 않고, 보통 오래된 돌담이나 바위틈에서 자란다 하여 바위 솔이라고 하는데 김 주사 고향에서는 ‘하늘 톳나물’이라고 한다지 않는가. 바위 솔이 맞는 것 같았다.
"거서 더 잘 보이 지예?"
김 주사가 내 있는 곳으로 되돌아 올라오며 물었다.
"저것 보게 여자가 소복을 입고 다소곳이 서 있는 것 같지 않는가."
정말 그랬다. 가만히 바라보면 소복 입은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소복 입은 여자라. 순간 한 여자가 떠올랐다. 박영순, 내 머릿속을 탁 치고 가는 이름이었다. 그녀도 지금쯤 푹 퍼진 아낙네가 되어 어디선가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겠지. 가끔 불쑥불쑥 나를 흔들고 가는 여자다. 한번 만나 봤으면 싶은 그런 여자, 널 지켜주고 싶어. 네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몸과 마음 다해서 사랑할 수 있도록. 젊은 날의 치기였을까. 내가 지켜준 그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과거란 그렇게 흐르듯 흐르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머릿속에 멈춰 선 자리는 언제나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살아가는 한 과정이 아닐까.
"우리 과장님 문장가시네. 어찌 보모 그렇긴 하네요. 소복 입은 여자라. 으 갑자기 춥다."
김 주사가 너스레를 풀었다.
"내려가면서 저 집에 함 들러 보입시더. 묵카 놘 지 오래된 집입니더. 지붕에 올라가 저걸 딸 수 있으려나. 김 과장님 갖다 드리면 엄청 고마워할 낀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하늘은 시샘이 날 만큼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았고, 길섶에는 막 피기 시작한 한 무더기의 하얀 찔레꽃이 제 향기를 마음껏 뿜어내고 있었지만 나는 과거의 한 시점을 향해 줄기차게 기억의 파편을 주웠다.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사람들과 한껏 즐긴 날이다.
이번 교직원 산악회의 주말 등반에 끼어든 나는 객꾼이었다. 회원은 우리 학교 서무과 직원인 김경수 주사였고, 김 주사는 유난히 경상도 사투리가 심했다. 나는 김 주사의 권유를 받아 참석했으니 임시 회원인 셈이었다. 20여 명의 회원들은 각급 학교 서무실에 있는 사람들과 선생들이었다. 한솥밥을 먹는 처지다 보니 대부분 아는 사람이라 금세 친근해져 산에 도착했을 때는 일행으로 손색이 없었다.
김 주사의 말에 의하면 오늘 내가 오른 장함 산은 하루 등반 코스로는 꽤 알려진 산이라는 것이다. 첫길이지만 동네 입구에 큰 느티나무와 홰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울긋불긋한 베 조각이 매달린 새끼줄이 둘러쳐진, 장성 두 사람이 팔을 벌려 맞잡아도 닿을 것 같지 않은 돌무더기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인상적인 동네였다. 이제 거의 사라져 버린 서낭당이 지키고 있는 마을, 그러고 보니 그 당산나무 그늘에 들어서는 순간도 이상했었다. 꼭 고향의 품 안에 안긴 것처럼 포근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과장님 예. 여가 우리 고향입니더. 좋지예?”
”좋구먼. 그래.”
나를 앞질러 내려가며 김 주사는 고향 자랑이 늘어졌다.
김 주사는 초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모님과 함께 떠난 고향이지만 가까운 일가붙이가 산다고 했다. 오랜만에 고향 냄새도 맡고 싶고, 시간이 나면 일가붙이도 찾아보고 그럴까 하고 일부러 이번 산행의 길잡이로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친척이라도 만나면 아직도 장개 안 가고 뭐하냐고. 그 소리 딱 듣기 싫어서 잘 안 옵니더. 내사 장개 갔시모 딱 좋것지만 시집 올 여자가 없으니 우짭니꺼. 다들 눈이 삔기지.”
김 주사 말에 앞서 가던 일행과 뒤 따라오던 일행이 와그르르 웃었다. 김 주사는 쾌활한 호남이다. 서른이 넘은 노총각이지만 어딘가 풋감처럼 텁텁하고 인정스럽게 보이는 것이 매력이다. 웃음이 헤프고 경상도 사투리로 걸쩍지근한 농담도 잘해 사무실에서도 약방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사람이다. 덕분에 속없는 사람으로 보는 바람에 장가를 못 갔다고 너스레를 풀다가 와송을 가리키며 한다는 말에 일행은 다시 한번 웃음보를 터뜨렸다.
"저기예, 바람난 여편네들이 서방질하다가 알라 배모 넘 몰래 캐다 묵고 아 떼는 독초라 쿠는 깁니더. 옛날에 우리 할무이가 그라던데. 아 뗀다고 저걸 묵고 떼굴떼굴 넷 방구석을 맸답니더."
”저 집에 얽힌 전설도 있나?”
"아, 저 집예? 전에 우리 할무이가 저 집을 흉가라 했어예."
"왜?"
"참 과장님도, 와그리 관심이 많습니꺼. 저 집에 대해 아는 기 있습니꺼?"
"참 사람도, 이 동네도 처음이고, 저 장함산도 처음인데 아는 기 있다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흉가는 원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잖은가."
”맞아예. 전설 같은 이약 이지예.”
김 주사가 빙그레 웃었다.
다시 대나무 사이로 희끗하게 보이는 그 집을 바라봤다. 아직도 처음에 느꼈던 예리한 통증이 명치끝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묘한 느낌이다. 왠지 그 집에 대해 끌렸다. 꼭 그 집에서 나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등산로 입구에 내려오니 대숲은 바로 지척에 있었다. 마을에서 뚝 떨어진 외진 곳이기도 했다. 내가 그 집을 발견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길옆에는 커다란 무덤 두 개가 있는 동산이 둥그렇게 대나무 숲을 가리고 있었고, 무덤가에는 수백 년 묵은 노송 세 그루가 우산처럼 펼쳐져 대숲을 가리고 있었다. 집은 그 대나무 숲 안에 들어있었다.
마을 옆으로 오밀조밀하게 펼쳐진 들에는 누렇게 보리가 익어가는 중이었다. 들은 산골짝에서 시작해 아래로 삼각주 모양 완만하게 펼쳐져 보이지만 보통 어른 허리께는 오는 담장을 가진 다랑이다. 산골짜기 쪽은 여전히 구불구불한 다랑이였고 그 아래 논들은 경지정리가 끝나 네모 반듯했고, 직선으로 포장된 농로가 쪽진 여인의 가르마 같았다. 둥그스름하게 둘러쳐진 산 밑으로 작고 아담한 마을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 산 밑에 폭 싸 앉힌 동네가 마지막 동네였고, 우리가 타고 온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주차장이 갖추어진 곳이 아니다 보니 길가에 즐비한 것이 온통 외부 차량뿐이었다.
먼저 내려온 일행은 배낭을 차 속에 풀어놓고, 차 안에 있던 맥주 박스에서 맥주와 안주를 꺼내 목을 축였다. 나도 맥주 캔 하나를 달게 마시고 김 주사를 툭 쳤다.
"그 집에 가 볼까?"
"그럴시더. 뒤처진 사람들 내려 올라쿠모 시간이 쪼매 걸리것네예."
김 주사와 나란히 그 집을 찾아 나섰다. 그 집을 가기 위해서는 마을 뒤로 난 들길을 빙 둘러 산 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좁다란 논길을 지나 한 오 분 정도 걸어가니 둔덕 아래 움푹 꺼진 자리에 그야말로 이마를 탁 치게 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둔덕을 내려가기 전에 멈추어 선 그 자세로 꼼짝도 않고 집을 바라봤다. 또다시 관자놀이가 욱신거리면서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뭐랄까, 그런 느낌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마치 그 집과 내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던 것 같은, 언젠가 왔었던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고 나는 제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음침하고 오싹하는 찬 기운 속에서도 어딘가 나를 끌어당기는 무엇이 있어 당황했다면 옳은 표현일까. 대나무가 사그랑 사그랑 울었다. 짙푸른 대나무가 둥그스름하게 감싸 안은 가운데 자리에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떠억 버티고 있었다. 사랑채는 폭삭 내려앉아 뼈대만 앙상했고, 솟을대문은 문짝 하나가 너덜거려 바람이 불적마다 삐꺼덕댔다. 마당가에는 산수유, 풍개, 모과, 감나무들이 고목이 되어 집 지킴이처럼 서서 나를 관망했다.
나는 문득 태백산맥에서 읽은 대나무의 전설이 생각났다. 대나무는 욕심 많은 지주에게 죽임을 당한 소작인들의 마음의 대변이라는 것이었다. 소작인들은 등골이 휘도록 농사를 지어도 가을이 되면 지주에게 다 빼앗기고 배를 쫄쫄 곪아야 했으니 대나무처럼 속이 텅텅 빈다는 것에 빗댄 말인지 모른다. 그래서 대를 물린 가난한 넋의 환생이라 하여 대나무라 부르기도 하고, 혹은 남들 대신 죽어서 남을 이롭게 한 넋의 환생이라 하여 대나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나무는 가난한 소작인의 넋이라서 춥고 배고픈 것을 싫어해 기온이 따뜻하고 농지가 넓은 땅에만 산다고 한다. 추운 겨울에 댓잎들이 유난히 서걱거리는 것은 '추워, 배고파'하는 넋들의 읊조림이라고도 하든가.
내가 넋을 놓고 대밭과 그 고가를 바라보자 둔덕 아래로 뛰어 내려가던 김 주사가 돌아보며 소리쳤다.
"과장님, 빨리 안 오고 머합니꺼? 여게 새미가 있습니더.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기 기차네예."
김 주사가 한 아름은 됨직한 상수리나무 아래를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도 황급히 걸음을 떼어 샘가에 닿았다. 돌담에 이끼가 푸릇푸릇하게 난 샘이었다. 샘의 바닥에는 대나무 잎과 상수리 잎 등이 시커멓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물은 깨끗했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셨다. 달착지근한 물맛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났다. 도시인에겐 낯선 생수 맛이었다. 샘에서 흘러나온 물은 작은 도랑을 지나 그 아래 논배미로 흘러 들어갔다.
그 집에서부터 부채 살처럼 퍼져 내려간 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들 이름이 뭔지 자네 아는가?"
"꿈뜰이라 쿱니더."
"꿈뜰? 무슨 뜻일까."
"이름이 참 예뿌지예? 굼턱에 있는 들이라꼬 굼들인지, 꿈을 꾸는 들이라꼬 꿈뜰인지는 잘 모르것지만 이름이 참 마음에 듭디더."
"자네도 문장가 기질이 있군 그래. 집안에 들어가 볼 수 있겠나?"
김 주사가 씩 웃으며 앞장섰다.
저 들에 농사를 지으며 이 집에 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누가 살았던 것일까, 오래 전부터 빈집이었다는 것은 첫눈에 알 수 있었지만 나는 자꾸만 궁금해졌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어찌 살고 있을까, 이 돌샘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을 것이고, 저 집 옆의 넓은 공터가 타작마당이었을 것이니 그곳에서 탈곡을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지막한 돌담 옆의 고샅길을 걸어 들어갔다. 돌담은 오랜 풍상에 허물어진 곳이 두어 군데 있지만 대체적으로 단단했다. 고샅에서 담을 넘겨다보니 마당에는 쑥대와 억새, 방앗공이, 잡 넝쿨, 자잘한 대나무들이 꽉 절어 있고, 마루에 먼지가 뽀얗고, 마루 아래는 대 뿌리가 번져 잔가지들이 나풀거렸다. 하지만 몇 년 전까지는 누군가가 손질을 했었던 것 같았다. 집이 완전히 방치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아 보였다.
솟을대문 앞에 섰다.
"들어가 볼랍미꺼?"
"괜찮을까?"
"빈 집인데 우떻까예. 도둑질 하로 온 것도 아닌데."
"도둑질할 것이 있네 뭐."
"오데예?"
"저기 마루 위의 선반에 있는 거."
선반에는 여남 개의 크고 작은 개다리소반이 얹혀 있었다. 골동품상이 보았으면 탐 낼만한 물건이었다.
"아, 저거 예. 씨다몬할 낍니다. 진짜배기는 벌써 수차례 털어 갔답니더. 지가 쪼깬 할 때 벌써 들은 이야깁니더. 들어가입시더."
"그러세."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집 앞에 펼쳐진 다랑이 건너편 산이 볼수록 기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 아래쪽엔 밤나무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지만 위쪽은 솔이 울창했다.
"저 산이 무슨 산인가?"
"안산이라 쿠던가, 지도 잘 모르것네예. 볼수록 희한하게 생깃지예?"
진짜 묘하게 생긴 산이었다. 농익은 여인네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엎드린 형국이다. 봉긋봉긋한 두 짝의 엉덩이 같은 산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거뭇하게 골진 우묵한 숲이 푸르르 떠는 것 같았다. 그것이 색기를 동하게 하는 것일까, 이상하게 두 다리 사이가 뻣뻣해져 온다. 슬쩍 김 주사의 눈치를 살폈다.
"참 요상하네."
김 주사 역시 기분이 묘한가 보다.
"이 집이예. 저 산 때문에 망했다는 소문이 있지예. 저 산이 음기가 강해서 여자들이 명 보전을 못 한답니더."
"음기가 강하모 남정네가 명 보전을 못해야 옳은 거 아이가."
"듣고 봉께 그렇기도 하네예. 어쨌든, 저 산이 시샘을 하는지는 몰라도 이 집안 남자들은 장개를 서너 번은 갔답니더. 안 그라모 상피가 붙는다데예. 아매 그래서 흉가란 소문이 났을 낍니더. 구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나도 새 장개나 들랑가 이 집에 와서 살아 보까?"
"참 과장님도, 애처가로 소문난 과장님이 그런 말 하모 지나가던 소가 웃지예."
나는 싱겁게 웃으며 그 집안으로 들어섰다. 무릎까지 오는 풀을 제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데 어디선가 불쑥 뱀이 나와 허벅지를 물것만 같아 간이 졸아들었다. 마당에서 축담에 오르려면 돌계단을 다섯이나 올라야 했다. 축대가 내 허리만큼 높았다. 축담에는 디딤돌이 한 아름은 됨직한 반듯한 바위덩이다. 주춧돌 위의 가운데 기둥이 내 한 아름은 족히 되었다. 나는 대들보를 올려다보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대들보는 아무리 오랜 풍상에도 끄떡없을 만큼 힘차고 굵었다. 저만한 소나무 등걸이라면 아마도 강원도 같은 깊은 골이 아니면 없을 것이다.
"귀신이 나올 만하네예. 어쩐지 으시시합니더."
"어떤 귀신이 나온다는데?"
"할배 귀신 예. 어려서는 이 옆을 몬 지내 갔지예. 그 할배가 아이들만 보모 잡아간다 했지예. '어떤 놈이 내 집에 들어 오노, 당장 안 나가나?'하는 소리가 꽹과리 소리처럼 컸답니더."
"재밌구먼."
김 주사가 할배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실없이 웃는데. 나는 왠지 처음 느꼈던 그 음침하고 불길한 느낌에서 풀려나는 것 같았다. 온기를 느낀다면 이상하겠지만 겉에서 보고 느낀 점과 안에 와서 보고 느낀 점이 달라지는 것은 확실했다. 아니 알 수 없는 애착 같은 것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집이 무척 마음에 들어. 예전에는 무척 잘 살았던 집인가 봐. 워낙 재목이 좋아서 조금만 손보면 멋진 집이 될 것 같아. 이런 한옥은 쉬 보기 어려운데."
집안이 온통 거미줄과 먼지가 켜켜로 쌓였고 창살이며 문짝조차 성한 것이 없었지만 그것이 더 정겹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아이고 간도 커십니더. 지는 마 이런 집에서 하리만 살아라 캐도 뒤로 자빠지것심니더. 자고로 사람은 이웃캉 담 헐어 놓고 살 정도는 돼야지예."
"맞는 말이지."
집 주위를 빙 둘러보니 녹슬고 삭은 농기계나 멍석, 바지게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서쪽 부엌문 앞에는 돌담으로 둘러쳐진 장독간이 있고 커다란 독과 떡시루 등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찌나 독이 큰지 내가 들어가 앉아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집이 완전히 빈지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그 집을 나오며 김 주사에게 물었다.
"글쎄예. 제가 예닐곱 살 적에 와 봤어예. 그때는 정지에 그릇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방에는 장롱이랑 반짇고리 같은 물건이 고대로 있었지예. 사랑채엔 한지로 만든 책들이 가득 차 있었고예. 옴마 모심는데 따라와 놀다가 친구랑 이 집에 와서 해작질 치며 놀았지예. 그날 옴마한테 엄청 혼났습니더. 귀신이 대낮에도 생사람 잡아 묵는 집이라꼬 함부레 가모 큰 일 난다 했지예. 그 담부터 얼씬도 못했심니더. 인자 가입시더."
"벌써 가자고? 와송이 참 많은데 저걸 좀 딸 수 없을까?"
"지붕에 올라갈 수가 없으니 딸 재간이 없지예."
"그러게, 지붕에 올라갈 재간이 없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구먼."
"진짜 과장님은 암시랑토 안 합니꺼?"
"이 사람아 그래도 사람이 살던 흔적이 있는데, 얼라도 아니고, 겁은 무슨...."
"저는 아직 알라 아닙니꺼."
"그러니까 빨리 장가가라니까."
"과장님 딸내미 주신 담서예."
"떼끼."
나는 웃었다. 겨우 고등학교 2학년짜리 딸을 두고 하는 김 주사의 농담이 밉지 않아서다. 제 어미를 닮아서 배꽃처럼 뽀얀 살결에 귀염성을 지닌 딸이다. 만약 그 녀석이 혼기 찬 아이라면 김 주사 같은 사윗감이면 마다할 리 없을 텐데.
그러나 나는 금세 환해졌던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을 감추지 못했다. 아들 때문이다. 문득 그 아이를 이 꿈뜰에다 풀어놓고 키우면 어떨까. 아들이 깡충거리며 논두렁을 달리거나 보리밭 새를 참새처럼 들락거린다면 아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식물을 가꾸고 짐승을 키우고 살면 좋아하지 않을까.
"과장님 퍼뜩 오랍니더."
멀리서 일행들이 손짓을 했다.
다시 둔덕에 올라 그 집을 돌아봤을 때, 대나무 숲이 일렁거리면서 사그랑 사그랑 울었다. 마치 내가 떠나는 것을 서운해하는 것처럼. 서쪽 능선에 한 뼘쯤 남기고 있는 저녁 햇살이 그 집을 포옥 감싸고 있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