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5

5. 전설

by 박래여


“참말인지, 지 낸 이약인지 잘 모르겠지마는 그 집에 전해 내려오는 내력은 들어 볼만 합니더. 나도 어른들한테서 주서 들은풍월이라 오데까지가 진실이고, 오데까지가 지낸 이약인지 모르겠지만 한분 들어 볼랍니꺼? 오늘은 아무래도 두 분이 마지막 손님이 될 것 같네. 장사 작파하고 술이나 한 잔 묵어 볼까나.”

보촌댁은 아예 장사를 작파할 양인지 문을 닫아걸었다. 손님이 별로 없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렁께내, 그 집을 지은 할배가 그곳 사람이 아니라드마. 처갓집 이웃 동네에다 터를 잡았던 기라. 그 아랫 담에 김 머시기라쿠는 사람이 살았는데 우직하고 인정스럽어서 이웃 간에 인심을 얻고 살았다니요.”

그 김 씨가 하루는 마당에서 멍석을 짜고 있는데 거지 아이가 밥을 얻으려 왔다. 열댓 살은 됨직한 머슴아가 쪽박을 차고 다니니 김 씨는 애잔한 생각이 들어서 그 아이를 다독거리며 태생을 물었다.

“니 오데서 왔노?”

“지리산 유독골서 왔십니더.”

“지리산이라쿠모 엄청 먼덴데 우짜다가 여게까정 왔노? 해 안에는 너거 집에 갈 수 없시낀데?”

“집에 갈 까닭이 없거마예.”

“와? 좇기 났나? 니가 죄 진거 있나?”

“아이라 예. 옴마, 아부지가 돌림병으로 죽고, 지 혼자뿌이라 예. 그 이웃에서 쇠도 믹이 주고 꼴도 베다 주고 지냈거마 하도 몬사는 동네라서 눈치가 비더마 예. 오데가모 입치레 하나 몬할까 싶어서 떠돌아 댕기는 길입니더.”

“그으래? 성은 머꼬?”

“박가라예.”

김 씨는 그 아이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부지런히 짚을 앗아 주었다. 말을 시켜보고, 일을 거드는 양을 살펴보니 본데없이 자란 아이는 아닌 것 같고 천성이 부지런한 아이 같았다.

“그라모 니, 내 옆에서 짚이나 앗아 줌서 우리 집에서 지낼래? 우리 형핀에 머슴 둘 처지는 아니다만 혈혈단신이랑께 우리 집에 있음 시로 오데 머슴살이할만한 데를 찾아보자. 인자 날도 추버지모 얻어 무로 댕기지도 몬 한다.”

“그리 거다 주모 백골난망 이지예.”

아이는 그날부터 김 씨 집에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지지리도 못 살던 시절이라 누구 집에나 입 하나 느는 것이 큰 걱정거리였지만 김 씨 내외는 얼마 안가 자신의 집에 복덩이가 들어온 것을 알았다. 김 씨도 남의 소작은 아니더라도 논 두어 마지기로 일곱 식구의 생계를 유지하는 집이라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 씨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아들딸이 넷이었다.

보촌댁은 이야기 중간에 자신의 입담을 실어 걸쭉하게 설명까지 하고 넘어갔다.

“귀신 씨나락 까 묵던 시절 이약 잉께 이 입, 저 입 건네서 때가 묻어서 올매나 씰만한 이약인지 모르것지만, 아무튼 그 집 내외가 그 아한테 홀딱 반해 삔 기라. 그 아는 첫 새복에 일어나 산에 가 낭구 해 오고, 허드레 일까정 우찌나 얀다무치고 기운도 센지, 난중에는 골짝 기슭 일가서 논 밭 맹글어 주면서 살림을 일가 주는데 그 집 살림이 날로 달로 펴지는 기라.”

나는 술잔을 비울 생각도 못하고 보촌댁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갔다.

김 씨 집 가세는 갈수록 퍼져서 몇 년 지나지 않아 그 마을에서 알부자란 소리를 듣게 되었다. 김 씨는 그 아이가 복덩이라서 그렇다며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 했다.

김 씨는 그 아이를 큰 사위로 삼았다. 이삼 년이 지나자 장인은 사위를 분가시킬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외손자도 태어났고 살림도 넉넉했지만 친 아들이 장가를 든 형편이고 보니 더 이상 사위를 끼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루는 사위를 불러 살림을 내 줄 의향이라면서 사위의 뜻이 어떤가를 물었다. 사위가 섭섭해하면 어쩌나 싶어 내심 걱정을 했는데 사위는 뜻밖에도 당연하다는 듯이

“장인어른, 지도 진작 제금 날 생각하고 있었십니더. 집터도 이미 봐 둔 데가 있으니 장인어른 허락만 떨어지모 일 시작할라꼬 생각했십니더.”

김 씨는 서운 키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 재차 물었단다.

“그래, 오데로 가기로 정했노? 혹여 니 안태봉으로 갈라는 거는 아니 제?”

“지는 인자 여개가 고향이라 예. 장인어른이 아니었시모 지가 이리도 살았것입니꺼. 얻어 묵는 비렁뱅이 신세 못 면했을 낀대 장인어른이 거두어 주신 은공을 우찌 모르것십니꺼. 그 은혜 모르모 사람도 아니지 예.”

“그람 오데다 터를 잡았다노?”

“웃담 옆에 있는 산하나 넘으모 대밭 안 있십니꺼. 그 안에 터를 닦아 집을 지을라 쿱니더.”

“송장산 옆에 말이가? 숭하고로 우째 해필 거기고.”

“물도 많고 땅도 너럽디더.”

“거게가 외진 곳인데다 집터가 될란 지 모르것다. 고마 내 가차이 집을 지서 니들이 나가 살모 좋을 낀데. 임자 있는 땅인가는 알아봤나?”

“예, 임자 없는 땅입디더. 사실은 꿈에 선몽을 받았습니더.”

꿈에 조상이라면서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타나 자기를 따라 오라 하드란다. 그 할아버지 도포자락을 잡자 할아버지가 갑자기 붉은 용으로 변해 날아가더란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용꼬리를 놓칠 뻔했는데. 용꼬리를 놓치면 죽는다 생각하고 젖 먹던 힘까지 보태 꽉 잡았단다. 용이 그 대나무 밭에 날아가 앉더란다. 다시 할아버지로 변한 그분이 둥근 구슬 하나를 주며 ‘이곳에 집을 지어라.’하며 하늘로 승천을 하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붉은 불기둥이 솟아 대밭을 활활 태우는 바람에 너무 놀라 깨었단다.

“꿈을 깨고 생각해 봉께 참말로 요상합디더. 날이 새자마자 웃담으로 달려갔지예. 꿈에 갔던 자리를 찾아가니 진짜 꿈하고 똑같데 예. 대밭 속에 가시덩굴이 꽉쪄린 곳이 있는데 동그스름한 터가 집 한 채는 너끈히 들어가 앉것데 예. 사방이 솔밭이지만 그 앞을 개간 하모 우리 식구는 안 굶고 살것다 싶디 예.”

“그라모 내랑 같이 가 보자.”

김 씨는 다음 날 풍수를 좀 보는 이웃 친구를 데리고 그 자리에 갔더란다. 친구는 산세, 지세를 쭉 둘러보더니

“허참, 명당자리가 여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런데 아깝긴 한데. 참 아까운 자린데......”

하드란다. 김 씨는 무슨 뜻인가 싶어 친구를 붙잡고 연유를 물었단다.

“이 자리에 집을 지모 첫 대는 삼백 석을 하고, 다음대로 넘어 가모 천석을 할 자리네. 허나 탈이 있어. 저 앞산이 탈이야.”

“와? 좀 세세히 말해 주게.”

앞산 때문에 안식구가 명 보전을 못하고 후대에 불상사가 나서 폐가 할 자리라 했다. 살림이 천석을 넘으면 지체 없이 이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김 씨가 가만히 생각하니 재산만 불어나면 좋은 터 잡아 옮기는 것이야 쉬운 일이고, 후대에 일어날 일은 유언을 해서 문서를 대대로 남겨 놓으면 탈이 없을 것 아닌가 싶었다.

그 시절에는 버려진 땅을 개간한 사람이 임자였다. 관공서에 신고만 하면 자기 땅이 되었다.

김 씨는 사위를 도와 그곳에다 집을 지었다. 웃담에서 산길을 내어 놓고 대나무를 베어 내니 산과 대밭이 둥그스름하게 싼 형국이라 여의주 자리가 틀림없구나 싶었다. 그래도 풍수쟁이 친구의 말이 마음에 걸려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했다. 지신을 다독거리고 산신을 다독거려 풍파 없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치성을 드린 후 딸 내외를 내 보냈다.

처가에서 분가한 박 씨 내외는 억척스럽게 그 집 앞 땅을 일구어 나갔다. 그 논에서 나는 알토란 같은 나락은 들논 두 배 이상 가는 소출을 내주었다. 자식도 5남매를 두고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동안 장인이 염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한시름 놓고 살았는데 나락 3백 석을 하는 부자가 되고부터다. 아내가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하더니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로 저승사자가 데려가고 말았다.

박 씨는 고생만 하다가 살만하니 저승 귀가 데려간 아내를 못 잊어 늘 얼굴빛이 어두웠다. 하인이나 소작인이 농사를 짓는데도 박 씨는 스스로 쟁기질을 하고 논밭에 나가 일을 했다. 아내와 개간한 땅에서 온종일을 살다가 들어오면 다섯 남매가 올망졸망하게 달라붙었다.

“박 서방 보기 미안시럽다. 박복한 딸년 생각하모 속이 씨리건만 우짜 끼고 얼라들 생각해서 새 장개를 가도록 해라. 우리 아도 그걸 바랄 끼다. 내가 중매를 설참인께 박 서방은 모른디 끼 따라오너라.”

박 씨는 장인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에게는 어미 손이 가장 필요할 나이이고 큰살림을 맡아 줄 안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후취는 꽤 먼 고장에서 시집을 왔다. 인품이 순하고 바지런 해 아이들도 아랫사람들도 잘 따랐다. 그러나 그 여인도 3년을 못 넘기고 죽었다.

장인은 기가 막혔다. 사위에게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 보라고 종용했지만 막무가내로 싫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피땀이 맺힌 그곳을 떠날 수 없다 했다. 장인은 지관이 말한 것을 이야기했다.

“살림이 있으모 머 하끼고, 내외간에 금술 좋게 살다가 죽는 거만 못하지 않는가. 이 터가 살림은 천석을 한다지만 홀애비로 살아야 한다니 좋은 터가 아인기라. 이사를 해 보자.”

“안 됩니더. 우찌 일간 땅인데 예. 조상님이 설마 나뿐 자리에 터 잡아 주시지는 안 했을 깁니더.”

장인은 아무리 해도 사위의 마음을 돌릴 수 없는지라 다시 큰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지관을 불러 방도를 모색하니 앞산을 밀어버리든가 과실수를 심으면 액땜이 된다기에 동네 사람들을 동원하여 앞산의 나무를 베어내고 밤나무와 뽕나무를 심었다.

박 씨는 다시 장가를 들었다. 세 번째 여자는 그 소문을 알면서 시집을 왔다. 가난한 집 딸이어서 논 열 마지기 값을 쳐 주고 데려온 셈이었다. 여자는 집에만 있으면 몸이 불편하다며 절 문이 닳도록 불공을 드리려 다녔다. 불심이 깊은 탓인지 명 보전은 했다. 그런 와중에 어린 자식 둘을 역병으로 잃었다.

세월이 흘렀다.

산으로 둘러싸였던 그 집은 집 앞에서 시작해 사방으로 논과 밭이 생겨나고 넓은 들이 형성되었다. 천석꾼의 집이 된 것이다. 일설에 장함산의 정기가 그 집에 다 모였다는 말이 있다.

“그 집이 대대로 천석을 내리하고 살았다는데, 일제 강점긴가부터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디요. 어른들 이약으로는 그 집 뒤로 길이 나는 바람에 장함산 정기가 끊어졌다는 소문이더마. 일본 놈들이 올매나 악랄하든지 그 촌구석에도 못할 짓 많이 한기라. 웃담에 있는 논이 거진 그 집 논이었든 기라. 왜놈들이 순사를 앞세우고 뺏을라꼬 덤비는 바람에 헛돈도 많이 썼다디요. 민족정기 말살 작전인가 했다 아이요. 그때, 지관을 데불고 다님 시로 명당자리를 깔아뭉개는데 그 집이 명당이라는 것을 알고는 술책을 부린 기라. 불티 재 넘어가는 길을 만듦시로 그 집 앞으로 난 길을 집 뒤로 돌렸다더마. 그래선지 우째선지 명당자리가 수명을 다 한긴지 자꾸 재산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기라요.”

보촌댁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집이 망한 사연은 아십니꺼? 대가 끊어졌다던데.”

“아까 말했다시피 어릴 때 두 아이는 먼저 보냈고, 남은 세 아이 중 아들은 자식 없이 죽었다는 소문이고, 딸 둘은 아마 외국으로 갔다 쿠제. 세세히는 모르요.”

“흉가란 소문이 있다던데 어째서 그런 소문이 났습니까?”

“과장님이 우째서 그리 관심을 보이는지 모르것네예. 흉한 소문이 있긴 있는데 이약을 해도 될랑가. 그 집에 할배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나 돈 것은 아매 그 사건이 터짐 시로 생긴 기 아닌가 싶어 예.”

“뭔 사건 말입니꺼?”

김 주사가 더 흥미를 느끼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보촌댁의 다음 말을 재촉했다.

“총각이 들으모 안 되는 긴데.”

“에이 아지매도, 구미를 스리 슬금 댕기고로 해 놓고 무신 말을 그리 섭하게 합니꺼. 지도 쪼맨은 아느마.”

“그라모 경수 총각이 이약 하라모. 나는 그 이약은 하기 싫으네.”

“아지매도 참. 상피 붙었다는 이약이 우때서 예. 요새는 동성동본도 혼인 신고하고 삽니더. 대한민국 성이 김가 아니모 박가라는 말 모릅니꺼. 따지고 보모 한 핏줄이라 예.”

“넘 말이라꼬 그리 쉽게 하모 안 되는데.”

보촌댁은 내 눈치를 먼저 살폈다. 우리가 교육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란 것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괜찮습니다. 어쩌다 폐가가 됐는지 아는 대로만 이야기해 주이소.”

“그라모 말 난 김에 다 해 삐까?”

일제 식민지 시절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그 집은 천석 살림이 한 해가 다르게 줄어들었다. 아들이라고는 단 한 명뿐이었고 명색이 하이칼라였다. 진주 농림 전문학교에 다녔는데 공부에는 취미가 없는 방탕아라 했다.

이름이 수백이었다. 인근에 소문이 날만큼 잘 생긴 수백이 총각은 인물값을 하느라고 공부에는 뜻이 없고 돈 써는 재미에 푹 빠져 박 씨의 속을 썩였다. 흠이라면 어미를 일찍 여의고 계모 손에 컸다 뿐, 돈 있겠다, 인물 되겠다, 동네 처녀들이 바람둥인 줄 알면서도 좋다고 목을 맸다.

박 씨는 아들을 장가라도 들이면 사람이 될까 싶어 혼처 자리를 구했다. 그런데 아들이 막무가내로 장가를 안 가려는 것이었다. 중매쟁이가 문전이 달도록 들락거려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구러 수백이 나이 스물다섯 살이 되었다. 누나 둘은 이미 시집을 간 처지였다. 나이가 꽉 찼는데도 수백이는 억지로 맞선을 보이면 그 자리에서 퇴짜를 놓는 바람에 박 씨도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쇠 맹키로 코뚜레를 끼어 끌어 댕길 수도 없는 노릇 잉께 부모 속이 시커멓게 탈 지경이었제. 쇠나 개나 치매만 둘러도 지 좋다모 장개를 보낼라 캤다드마. 뒤에사 알고 봉께 눈 맞은 색시가 있었던 기라. 그 색시가 다름 아닌 사촌 누이였든 기라. 그 총각보다 두 살인가 아래였다데요. 열예닐곱 살 때 시집을 보냈는데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다시 온 기라. 그 집안에서 소박데기 누이 캉 눈 맞았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기라. 그 일이 터짐 시로 안 기제.”

보촌댁이 다시 술잔을 비우며 뜸을 들였다. 식어빠진 아귀찜이 접시 위에서 한숨을 쉬었다.

“아지매 뜸 좀 고마 디리고 퍼뜩 이약이나 하실소.”

김 주사는 소주잔을 입에 털어 넣으며 안달을 했다. 나도 천천히 술잔을 기울였다. 그 사내의 괴로운 심기를 이해할 것만 같았다. 금지된 사랑을 하는 남녀의 짜릿하고 애틋한 마음을 주색잡기에 실어 보내려는 젊은이의 마음이 그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탈이 나부렀던 기라. 장개는 죽어도 안 가것다던 총각이 어느 날 맞선 본 처자한테 홀딱 반했삔 기라. 불티 재 너머에 사는 처닌데 인물이 우찌나 곱던지 그 총각이 고마 첫눈에 반해삔기제. 총각이 장개 간다꼬 소문이 나고, 사성이 왔다 갔다 하고 덜컥 날이 잡힌 기라. 총각이 좋다니까 번갯불에 콩 구 묵듯이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된 기제. 그런데 집안에서 혼사 준비로 눈 코 뜰 새 없는 한 날 새복이었다요. 총각이 거쳐하던 사랑방에서 '아이고 옴마 내 죽네'비명 소리가 터진 기라요. 사람들이 자다가 놀래서 쫓아가 보니 옷을 홀랑 벗은 총각이 사타구니를 붙잡고 넷 방구석을 매는 기라요. 불을 키고 봉께 방바닥에 피가 버얼겋더라요. 총각이 '옴마 내 좀 살려 주소'함서 하는 말이 '성자야, 성자야,'하더라요. 성자라는 사람이 바로 그 사촌 누이였든 기라. 그 색시는 그 질로 토끼 삐고는 다시는 고향에 발도 안 붙였다 디요.”

“그 총각은 우찌 됐십니꺼? 괜찮았어 예?”

김 주사가 물었다.

“괜찮키는. 거시기가 딸랑거리는데 사람 구실을 지대로 했것나. 아이구마 인자 숨이나 잠 돌리자. 과장님 한 잔 받으시소.”

“장개는 갔십니꺼?”

“갔제. 가모 뭐하노. 금세 헤어졌는 걸. 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데. 그 총각이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몇 년 안 가서 죽었다드마. 그 집 대가 끊긴기제. 총각도 함부로 처니 건드리지 마소. 여자가 한을 품으모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안 하요.”

“성자라는 여자는 우찌 됐십니꺼?”

“그거는 잘 모르제. 그 집안에서 넘 부끄럽다꼬 쉬쉬하는 통에 알 재간이 없제. 제 친정에라도 댕기 가모 이웃 간에 소문이 날 법도 한데 저거 부모가 죽어도 안 왔다쿠제. 그런 걸 보모 오데 가서 죽었다는 말이 맞을란지도 모르제. 남정네 병신 만들어 놓고, 집안에 똥칠 한 여자가 생목심 끊었지 살았것소. 소문에 정신댄가 순사한테 잽히가 만준가 오데로 끌려갔다 쿠기도 하고, 깔보가 됐시 끼라 쿠기도 하더마. 믿을 끼 못 되는 기라요. 아매 살았시모 한 칠십은 됐시끼거마. 그 때야 세상이 하도 어수선해 믿을 기 있어야 말이지. 과장님 예. 사요나라라는 말 아십니꺼?”

“한때 그 말이 유행을 했지예.”

“일본이 우리 상전 맹키로 군림할 적에 하도 사람을 때리 쥑이고 논이고 밭이고 뺏아가고 순사한테 잽히가모 소식이 없싱께 그 사람 사요나라 했다 캤지예. 죽은 걸로 치고 집 나간 날을 받아 제사를 지내곤 했지예.”

“아지매, 무슨 뚱딴지 겉은 소리를 합니꺼? 이약하다 말고.”

“그 이약은 바닥났소. 더 세세한 이약을 들을 라모 잿골 성님이나 알랑가. 그 성자 색시랑 친구였다니께.”

“그 할머니 아직 살아 계실까요?”

아주머니께 넌지시 물어봤다.

“아직 사흘에 밥 아홉 그륵은 묵는다니께 살아 있제 그람.”

나는 왠지 그 잿골 할머니란 분이 만나고 싶어졌다.

슬그머니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그 집을 싸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사실 고향이 부산인 나는 옮겨 갈 만한 터전을 찾는다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아내 역시 부산 토박이니 고향이 따로 있을 리 없다. 겨우 생각한 것이 아내의 외가가 있는 경북 영주가 어떨까 했는데. 우연히 그 집과 그 들을 보았던 것이다. 산이 포옥 감싸고 있는 그 고을조차 내 마음에 쏙 들었었다. 아니, 꿈에 늘 가던 집과 너무 흡사해서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인지 모른다. 어쨌거나 그 집은 흉가로 소문이 났으니 싸게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집을 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안 되면 빌려서라도 들어가 살아보고 싶다. 딸애가 일 년만 있으면 대학생이 되니 혼자 기숙사 생활하면 될 것이고, 나는 퇴직금을 받아 그 주위에 논이나 서너 마지기 사서 아들과 농사를 짓고 싶었다. 어머니도 좋아할 것이다. 도시 생활에 넌덜머리를 내는 아내도 대 찬성일 것이다. 농촌에 가서 살면 좋겠다는 소리를 먼저 꺼낸 사람이 아내였으니까.

내 머릿속에 그 집 전경이 선하게 떠올랐다. 육중한 대들보며, 굵고 힘차게 뻗은 서까래, 쭉쭉 뻗은 대나무, 감나무, 은행나무, 굴참나무 등, 왜 그럴까, 그 집 내력을 듣고 나니 무섬증이 들고 정이 떨어져야 마땅할 텐데 더 가까이 가서 느끼고 싶은 집같이 생각되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끔 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고향 아구찜>을 나섰다.

“과장님 인자 관심 꺼졌십니꺼?”

“글쎄, 더 관심이 가느마. 자네 고향이라서 그런가. 참 희한 하이.”

“요새 거기도 난리라 예.”

“와?”

“장함산이 유명세를 타는 바람이지 예. 타관 사람들이 자꾸 살로 들어 온답디더. 이농 현상이 걱정이라는 말이 우스울 지경이라캐 예. 산세가 빼어나다 보이 등산객들이 붐비게 되고, 소문이 난깨내 복부인들이 들락거림서 땅 값을 부채질하는 기라 예. 생각 있는 젊은 사람들은 걱정을 많이 한답니더.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어 순박한 농민들을 우롱하니 인심도 많이 야박해졌답니더.”

“그래? 나도 노후대책으로 그 집을 사고 싶은데. 싸게 구입할 길이 있지 않을까? 자네가 한 번 알아봐 주지 않겠나?”

“돈 있습니꺼?”

“돈? 당연히 없지. 담에 잿골 할매란 분도 한번 만나보고 싶거마.” <계속>

이전 04화<장편소설> 연꽃 전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