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연꽃 전설 6

가을이었다.

by 박래여

6. 가을이었다.


가을이었다. 거리의 가로수 잎도 단풍이 들어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고 있었다.

나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의자를 창 쪽으로 돌려놓고 앉아 팔짱을 끼고 창밖을 바라봤다. 색색들이 물든 앞뜰의 나뭇잎을 바라보며 내 나이를 생각했다. 사십 다섯이라는 나이는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많은 나이도 아니지만 왠지 맥 빠지는 나이 같다.

우울했다. 요즘 들어 우울한 기분이 하루 내 계속되곤 한다.

내게 아들 영덕이는 유일한 대물림 자리인 셈인데, 그 아이가 정상아가 아니기 때문에 느끼는 곤혹스러움과 아비로서의 죄의식을 떨쳐버리기엔 내 성격이 너무나 소심한 모양이다. 나는 형제자매 없이 친인척도 없이 홀로 자랐다. 그래서 많은 아이를 원했다. 내 외로웠던 어린 날의 기억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나는 친척 많은 아이들이 부러웠다. 큰 집, 작은 집, 아재, 아주머니, 고모, 이모 등 형제자매끼리 놀다가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일가붙이들이 모여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이웃들을 보면 나도 저런 집 아이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그러나 아내는 두 아이면 족하다고 했다. 아들이든 딸이든 한 명 더 낳자고 했지만 아내는 첫마디에 고개를 흔들었다. 영덕이가 있지 않느냐. 그 아이에게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런 아내 마음을 이해는 하면서도 섭섭했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도 아내를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당신이 지를 얼마나 심 들게 하는지 압니꺼. 따지고 보모 내 잘못만은 아니라 예. 태교에 신경 안 쓴 것도 아니라는 것 당신이 더 잘 암시로. 그라모 내가 우짭니꺼.”

“누가 뭐라 하나. 괜히 그런다.”

퉁명스러운 내 한 마디에 아내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곤 했다.

“자꾸 힘들어서 그래 예. 그 아를 장애아 복지 센터라도 보내야 되는 거는 아닌지 모르것네예. 우리가 끼고 있다꼬 달라질 것도 아닌데. 어머이가 허락을 안 해 예.”

간밤에 잠자리에서 아내와 나눈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도 힘들 것이다. 모르는 척 외면하지만 결코 무심하거나 몰라서만은 아니다. 그건 어머니와 아이가 원치 않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올 들어 부쩍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았다. 많이 수척해지신 칠순의 노모와 덩치는 벌써 애비만 하지만 지능은 겨우 서너 살짜리 아이에 불과한 열다섯 살짜리 아들과의 끈끈한 정을 느낄 때마다 나는 핏줄의 힘이 놀랍다는 생각을 한다. 어찌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관계다.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원래 극진한 것이고 손자가 할머니 따르는 것 또한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핏줄 당김이다. 그것이 너무 지나쳐 아내와 내가 죄인처럼 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안에서만 사는 것 같았다.

“어머님이 당신 돌아가시고 나면 영덕이를 선암사에 맡기는 기 우떻것느냐고 하시데예. 잔심부름이나 함시로 부처님 곁에 사는 기 그 아를 위하는 길이람서.”

“쓸데없는 소리. 어머이가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당신 아나?”

“지가 그 속 깊은 뜻을 어찌 알낍니꺼. 다만 부모가 있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섭섭하다 했습니더.”

“우리 짐 들어주시려고 그러시지.”

“그래도, 어머님이 야속합디더. 그 아가 어떤 앤데.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예. 제 자식 중하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어딨습니꺼. 모자라는 자식일수록 정은 더 깊고 질긴 건데. 어머이는 당신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우리 생각해서 하는 말이겠지만 저는 자꾸 섭섭한 생각이 듭니더.”

“연세도 연세니까 당신이 신경 좀 써소.”

나는 아내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았다. 지난 십여 년을 마음고생하며 살아온 아내다. 아이를 어머니가 맡겠다며 선언한 후에도 아내의 노력은 눈물겨운 것이었다. 거기다 영덕이 마저 제 어미를 소 닭 보듯 대하면서 할머니만 찾자 전생에 내가 그 아이의 원수였나 보다면서 비통해하기도 했다.

“이 아는 내 업연을 지고 온 아이다. 너거는 죄 없다. 너거가 서운해하는 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 내가 풀어내야 할 업이다.”

“그게 무슨 소립니꺼? 어머이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이소. 어째서 자꾸 어머이 탓이라는 겁니꺼? 우리 탓이지 예.”

“너거는 모르니라.”

언젠가 어머님이 우리 부부를 불러 놓고 하신 말이다. 뭔가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물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과거를 묻는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 들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니가 에미 과거를 알고 싶거든 에미가 죽는 꼴을 봐야 할 끼다.”

나는 어머니의 모진 면을 알고 있었다. 당신 자신의 문제만큼은 추호도 내 비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 대침 사건만 해도 그랬고, 영덕이가 저능아란 것을 인정할 수 없어 방황할 때도 그랬다. 어머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각인이 살아오면서 내 마음속에 박혀 있었다.

“저 아이에게 우리는 뭘 줄 수 있을까요.”

아내의 목소리는 너무도 슬펐다.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는 것 외에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혼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어야 하는데. 도시의 그늘에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장애인을 보는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평범한 사람인데도 평범하게 봐주지 않는 시선 속에 우러나오는 것은 연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다. 몸이 정상이 아니면 정신이라도 정상이면 또 제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도 있지만 영덕이는 그럴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길에서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리면 헤벌려 웃을 줄만 안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다. 딸의 말처럼 천사의 마음을 가진 아이다. 가끔 영덕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는 날은 나 자신조차 자꾸만 남의눈을 의식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자격지심이랄까,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 아닐까 힐끔힐끔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나 자신조차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된 느낌이다. 바보가 된 느낌이다. 어쩌다 내 아들이 저렇게 태어났을까 싶어 세상이 원망스럽고, 똑똑하고 잘 생긴 남의 아이들을 보면 부럽다. 내 심정이 그럴 때 아내의 심정은 어떨까. 알면서도 아내가 원망스러운 적도 많았다.

영덕이가 서너 살이 되도록 걸음마도 제대로 못하고, 말도 못 하자 아내는 더 이상 아이를 갖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한 아이만 더 가지자고 아내에게 보챘지만 아내는 잠자리마저 거부하며 화를 냈다. 겁난다는 것이다. 나는 영진이를 보라면서 그 아이는 총명하고 똑똑하지 않느냐고 하면 아내는 오히려 그런 영진이가 비정상 같다는 말을 했다. 제 나이 또래보다 조숙하고 총명한 것이 비정상 같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나 역시 아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도 있으니 영진이와 영덕이를 반반으로 섞어서 다시 태어나게 할 수는 없을까 그런 허무맹랑한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어머이는 영 절에서 사시기로 작정을 하신건가? 요새는 통 집에도 안 오시니 무슨 맘이신지. 영덕이도 보고 싶은데.”

나는 아내의 옷을 벗기면서 물었다.

“영진이가 고 3 올라가니 공부에 방해돼 끼라고 절에 계속 계시겠답니더. 제가 자주 댕기니 어머이 걱정은 마실 소.”

아내는 내 손놀림을 거들어 궁둥이를 들어주면서 말했다.

“스님들 시중 들기도 쉽지 않으실 텐데.”

“젊은 보살님이 두 분이나 계십디더. 어머이는 그저 영덕이랑 염불 공부만 합디더. 요새는 단풍이 어찌나 곱던지 절 주위가 별천지 같아예. 오죽 하모 저도 절에 가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참 어머님이 지난주에 저한테 묻데예.”

“뭘?”

“혹시 당신 그 새 지난봄에 갔던 그 동네 이약 하더냐고 예.”

왜 어머니가 그곳에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내가 반응이 없자

“내가 그 동네를 아느냐고 물었더니 장사 다니다가 들린 곳이라 함서 '그냥 물어봤다.' 하시는데 어머이 표정이 그리 쓸쓸 해 보일 수가 없었어예. 어머이 속내는 아무래도 모르겠어예.”

“나도 내 어머이를 모르겠는데 당신이 어찌 알겠노.”

나는 내 입술로 아내의 입을 털어 막았다. 아내는 두 팔로 내 등을 꽉 조이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를 어스러질 만큼 끌어안았다.

“과장님, 결제 안 해주고 아침부터 먼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꺼?”

언제 옆에 왔는지 김 주사가 결재 판을 들고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직도 내 몸에서 아내의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만약 우리 과 직원들이 다 보이는 자리였다면 어쩔 뻔했는가. 이럴 때는 과장실이 따로 마련된 것이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덕분에 김주사와 사담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별소릴, 결재 판이나 이리 주고.”

“좋은 일 있습니꺼? 과장님도 가을 타는 것 같네예.”

“실없는 소리 말고.”

“학교 이전 관곕니더. 인구가 자꾸 늘고 아파트가 줄줄이 들어선께 도시 중심에 있는 학교는 교육 환경이 자꾸 나빠지니 우짭니꺼. 부지 선정을 해서 외곽으로 빠지는 기 옳은 처사지 예.”

“맞는 말이거마. 그리고 김 주사 떡국 주는 거는 어찌 됐노?”

“쪼맨만 더 기다려 보이소. 물이 뽀글뽀글 끓고 있는 중입니더. 날이 더 쌀쌀해져야 떡국 맛이 나지 예. 그라고 담 주일쯤 산에 안 갈랍니꺼?”

“오데로?”

“장함 산은 가실에 가야 진면목을 봅니더. 단풍이 기맥히지예.”

“그래? 안 그래도 우리 집 사람이랑 아들내미 데리고 가 볼라 캤는데.”

“사모님이랑 예? 잘 됐네. 우리 숙이랑 갈라 캤는데.”

“잿골 할매라는 분 만나 볼 수 있을랑가.”

“이해할 수 없십니더. 과장님이 우째서 그 집에 그리 관심을 가지는지.”

나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 자신에게 따져 물어봐도 내가 왜 그곳에 그리 관심을 가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요즘 교육계도 명예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대 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무능한 사람은 자진해서 나가 달라는 말이다. 신입 사원의 학력도 대졸이 태반이다.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의 실업률이 높다 보니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그 영향으로 공무원을 선호하는 추세란다. 9급 공무원 시험의 응시자가 90% 이상이 대졸이란다.

그러나 공무원 생활도 갈수록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내 나이 또래에 공무원을 시작한 사람들은 거의가 고졸이거나 중졸로서 검정고시 출신이다. 공무원이라 하면 모범생에 공부 잘한, 머리 좋은 사람이란 인식이 대부분이었으니 주위 사람들로부터 옛날 과거에 장원급제한 거나 진배없는 대접을 받았다. 고용직 사환으로 관공서에 들어왔다가 독학을 해서 학력을 따기도 하고, 특채 시험을 쳐서 정식 공무원이 되기도 하고,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공부하여 학력과 실력을 인정받은 입지전적 인물도 있다.

그러니 공무원이라 하면 어딜 가나 대우를 잘 받았다. 만약 가난한 농촌 출신일 때는 그 고장에 인물이었다. 가문을 빛낸 인물이었다. ‘아이고, 그 집 아가 벼슬했다며? 출세했다. 인자 그 집 묵고 사는 걱정은 없겠다.’ 이런 부러움과 칭찬이 동네 사람들 입질에 오르내렸다. 물론 그 집 부모는 당연히 한 턱을 냈다. 부모 어깨를 으쓱거리게 해 주는 공무원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나 역시 대학을 포기하고 공무원을 시작한 것도 어머니의 은연중에 비추는 그런 기대 심리를 따른 것이 아니었나 싶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대학에 갈 생각이었다. 대학 강단에 서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 중학교 때 일 것이다. 그 수학 선생님의 영향이 컸었다. 그 선생님이 어머니에게 연정을 품으면서 나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닭이 봉황의 날개를 단 셈이었다. 수학 선생님은 내 재능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고 수학에 천재적인 머리를 타고난 아이라고 내 간을 키워 주었다. 대학 강단에 선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수학 선생님이 내 공부 지도를 핑계로 어머니를 만나려 와서 죽치는 것은 무척 괴로운 일이었지만

“니는 에미를 믿고 공부만 열심히 하모 된다.”

혹여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아들의 공부에 지장을 초래할까 싶어 수학선생님을 박대도 못하고 교묘하게 시간을 끌며 수학선생님 스스로 나가떨어지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부서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고 3학년, 대학 입시를 앞두고 나는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책과의 전쟁을 했다. 대학 예비고사 성적만 좋으면 부산 대 장학생을 바라본 내 나름대로의 포부가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순정이를 만났다. 대학에 합격할 때까지는 만나지 말자는 약속을 하고 있었는데 약속을 깨고 나를 찾아온 것이었다. 공부가 안된다는 것이다. 책만 펴면 내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면서 딱 한 번만 보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송정 바닷가를 걸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바닷가의 풍경은 사춘기 소년 소녀의 마음을 달뜨게 했고, 청춘의 피는 끓어 넘쳤다.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닷가는 남녀의 마음을 무작위로 흔들어 놓았다. 숲과 바다는 유혹의 향유를 뿌렸다. 우리는 그 향기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졌다. 손을 꼭 잡고 바닷가를 지나 올망졸망한 논두렁을 타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어스름이 깔리는 바다에 주홍색 노을이 풍덩 빠지면서 붉게 물들었다. 솔잎이 내는 향긋한 냄새와 파도가 칠 때마다 왈칵 불어오는 바람결에 무섭다며 기대 오는 그녀의 살 냄새가 내 말초 신경을 바늘 끝처럼 솟구치게 했다.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의 순정이에게서 성숙한 여자 냄새가 났다. 나는 순정이를 솔밭에 뉘었다. 꽃무늬 원피스의 앞자락이 벌어지면서 그물에 갓 끌려 올라온 물 오른 생선이 할딱거리는 것을 꿈결 인양 가슴으로 느꼈다. 그녀의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손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처마를 걷어 올리고 속옷을 끌어내렸다.

모든 것은 허망하게 끝났다. 황홀한 순간이 지나고 내 눈앞에 떠 오른 것은 시장 가에서 좌판을 벌이고 앉아 단 돈 100원에 손님과 실랑이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나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오시는 어머니 얼굴이었다.

“정말 이젠 만나지 말자. 대학생 돼서 만나자 우리.”

그녀랑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하지만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그녀의 살 냄새는 날이 갈수록 내 숨통을 조여 왔고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공부에 전념할 수가 없었다. 책만 펴면 순정이의 뽀얀 살빛이 나를 달뜨게 했고 그 가쁜 숨결이 내 온몸을 휘감는 환상에 사로잡혀 허우적댔다. 어머니에 대한 죄의식 또한 한몫을 했다. 참자, 어머니를 위해, 순정이를 위해 조금만 더 참자. 일단 시험이다. 좋은 성적, 장학생의 꿈이 우선이다. 그때까지 아무리 네가 보고 싶어도 참을 수 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다독이며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순정이가 집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많이 야위고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왜, 무슨 일이야? 성적은 어때?”

“엉망이지 뭐. 아무리 생각해도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가 없었어. 미안해......”

“무슨 일인데 그래?”

“병원에 갔었어. 친구랑.”

“무슨 일로?”

“임신이래. 미안해. 공부도 할 수가 없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는 것 같아서 미치겠어. 어떻게 해.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우리 아부지 알면 나 죽어. 권섭아, 나 어떻게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 들어온 얼굴은 역시 어머니였다. 고등학생 신분인 우리에게 돈이 있을 리 없고, 그 방면에 대해서는 서로가 너무 모르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도 해결책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아이를 지우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참고서와 책을 헌 책방에 갖다 팔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돈을 마련했다. 순정이는 변두리 허름한 산부인과를 찾았고, 아이는 그렇게 세상 구경을 못하고 떠났다. 순정이의 충격은 내가 위로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는 보기 좋게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어머니의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학교 선생들도 믿기지 않는다 했다. 더 심했던 것은 순정이가 절교 선언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그녀의 절교 선언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순정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나도 은근히 그러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순정이를 만나는 것이 괴로웠다. 그 시절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그렇게 순진한 면이 있지 않았을까. 요즘 아이들의 개방적이고 무모하기까지 한 개방된 성 문화를 보면서 자조를 금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은근하고 비밀스러웠던 남녀 간의 사귐도 당당하게 내놓을 수 있는 자칭 x 세대의 솔직하고 당당한 자세만 봐도 그렇다.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딸도 남학생을 사귄다는 것이다. 처음에 무슨 여편네가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성 사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느냐고 역정을 냈었다. 딸애 단속 잘하라고 야단을 쳤더니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당신하고 내 핏줄인데 어련하겠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다음 말이 더 가관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딱 한 가지 있어예. 요새 애들은 부모 눈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다는 겁니다. 제 앞가림은 제 스스로가 잘한다는 깁니다. 내가 슬쩍 물어봤죠. ‘너거 사이가 어디까지 간 것이냐’고. 딸애 말이 더 기차요. ‘엄마 좀 세련되게 물어보셔요. 키스는 해 봤느냐, 그 이상이냐, 엄마 그건 인간의 생리적 현상이래요. 생리적 현상은 배설을 하는 것이 원칙이래요. 하지만 걱정 마셔요. 그 애는 그냥 친구일 뿐이에요. 친구들 중에 피임약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애들도 있어요. 그렇다고 그 애들이 문제아는 아니에요.’ 하드라니까요. 학교에서 피임법을 가르친답디다. 우리들 세대는 어수룩해서 그것이 큰 잘못인 줄만 알았으니 당신도 나고 힘들었던 게지요.”

세대 차이란 이것만이 아니었다. 고정관념 깨어 부수기란 말이 유행어가 된 적도 있지 않은가. 아직도 우리 세대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지 않을까. 그때 나는 참으로 절망적이었고 고통스러웠다.

어머니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쳤으면 싶다고 했더니 어머니는 내 눈을 깊이 오래오래 바라보시더니 간단하게 결정을 내렸다.

“니가 원하는 대로 해라.”

어머니는 늘 내 의견에 찬성하는 편이었지만 그것이 또한 마음에 차지 않았다.

결국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몇 달을 허송세월 하다가 마음을 잡고 공부를 했다. 부산시 교육 위원회에서 주관하는 교육 공무원 공채 시험에 응시했고, 5급 공무원이 되었다. 지금 9급이었다. 친구들이 대학생일 때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쥐꼬리만 한 봉급을 받으면서도 어머니께 효도하는 기분이었다.

순정이를 다시 만난 것은 몇 년 뒤 봄 신학기였다. 길에서 만났더라면 우리는 모르는 척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실에서 맞닥트린 것이었다. 나는 학무과 초등 계 장학사에게 결재할 것이 있어 갔던 길이고, 순정이는 초등학교 준교사 채용 시험에 합격하여 발령을 받으러 온 길이었다. 그때는 준교사 시험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가 모자랐던 것이다. 나와 헤어진 순정이도 대학을 포기하고 어느 작은 개인 기업에 들어가 경리를 보다가 고등학교 졸업자에 한해서 시험을 칠 수 있다는 준교사 공채 시험에 응시했고, 합격하여 교사 발령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처녀가 된 순정이도 총각이 된 나도 서로 할 말을 못 찾고 허둥댔다.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끼리 다시 만나면 그 상처 자리에 다시 생채기가 나기도 하고, 그 자리가 더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서로를 묶어 주기도 하는 것인데 순정이와 나는 후자에 속했다. 첫 정의 아릿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다시 어울렸다. 교사와 말단 서무과 직원으로서.

그러나 그 상처는 영덕이의 모습에서 구체적인 문제로 다시 아내와 나를 힘들게 했었다. 아내는 죄 값이라 했다. 우리들이 저지른 그 무모했던 상처가 그렇게 돋아난 것이라고 아내는 절규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부딪혀 보지 않은 이상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다. 막상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던 문제가 자신에게 제기되었을 때 지혜롭게 처신하기보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소리치고 절망하고 회피하려고만 한다. 그러다가 체념도 배우고 달관도 하고, 팔자소관으로 돌리기도 하며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는 것 같다.

“과장 니이임. 아직도 그라고 있습니꺼? 퇴근하시야지예. 과장님이 그리 버티고 앉아 계싱께내 부하 직원들이 아무도 못 나가고 있습니더.”

“응, 시간이 벌써 그리 됐나? 퇴근들 하라고 이르지.”

“가을은 가을인 것 같습니더.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쿠더이 과장님도 가을 타는 갑네예. 가입시더. 오늘 저녁에 지 색시될 처녀 선 뵈 드릴라 쿱니더. 시간 있습니꺼?”

“하모, 좋지. 술 생각도 나던 참인데.”

“고향 아구찜 아지매가 과장님 기다린다던데 예. 거 가 있으라 캤십니더. 함 봐 주이소. 가시나가 보통내기가 넘어예. 그래도 고기 올매나 예뿐지.”

“허, 우리 김 주사 혼이 쏙 빠졌구마 벌써. 그럼 얼렁 앞장서게. 사실 그 집 찜 맛을 못 잊고 있었는데. 찜도 묵고 아가씨 선도 보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김 주사는 좋것네.”

내 농담에 젊은 총각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거리에 나서니 가을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문득 어머님이 추우실 것 같아 걱정되었다. 오래오래 사시다가 영덕이 사람 구실 하는 것 보고 돌아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과연 그런 기적이 일어날까 한숨 먼저 나왔다. 어머니는 아직도 내겐 든든한 기둥이고 안식처다. 머리가 하얗게 센 어머니 모습이 새삼스럽게 가슴에 와닿았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어머니 같은 깊은 정을 주는지 모를 일이었다. 청상으로 살아오신 어머니께 나는 아버지 맞잡이 같은 존재였으리라.

“참, 과장님 숙이한테 들은 이약인데 예. 제가 그 집에 대해서 알아보라 했거든 예. 그 집이 몇 년 전에 팔렸답니더. 미국서 그 집 딸하고 외손자가 나와가꼬 집을 팔고 들어 갔답니더.”

“그래? 그럼 지금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아나?”

“거기 또 얄궂어예. 그 잿골 할매가 자기 아들을 앞세워서 거간꾼 노릇을 했다는데 우떤 사람이 샀는지는 토옹 말을 안 한답니더.”

“그 집 주소만 알모 등기부 등본 한 통 떼 보모 알겠네.”

“그렇겠지예. 그라고예. 또 재미있는 이약이 있습니더. 요새 도시 사람들 꿈이 돈 벌모 경치 좋은 시골이나 고향 찾아가 근사한 집 지 놓고 전원생활 만끽하며 사는 거 아닙니꺼. 그런데 그곳이 경치가 그만하니 도시 사는 사람들이 흔히 들어와 살고 싶어 한답니더. 빈 집이나 마땅한 터가 있는지 묻기도 한답니더. 과장님 맹키로 그 집을 본 사람들 중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사람이 더러 있었답니더. 어떤 젊은 부부가 자기들은 그림을 그리는데 그 집에서 살고로 해 달라고 잿골 할매한테 와서 목을 맸답니더. 하도 애원을 해댄께 할매가 그 집 내력을 이야기함서 그래도 살것냐고 했답니더. 그 젊은 부부는 요새 세상에 그런 미신을 믿는 사람이 어딨냐며 빌려만 주면 집 잘 가꿈서 살것다고 했답니더. 그래서 그 화가 부부가 살게 되었답니더. 그런데 한 달도 채 다 못 채우고 남자가 이사를 나갔다데예. 남자가 잿골 할매한테 와가꼬 세상에 이런 일이 있느냐면서 하는 말이 그 부부가 이사한 날이었답니더. 저녁때였는데 하얀 두루 막을 입고 대나무로 만든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짚은 점잖은 할배가 대문간을 들어서더랍니더. 남자가 누구신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그 할배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집 주위를 비잉 둘러보고 나오더니 ‘여긴 내 집이다. 당장 보따리 싸서 나가거라. 우리 귀한 손이 올 때꺼정 내가 지킨다.’하면서 호통을 치더랍니더. 남자는 별 실성한 할배도 다 봤담서 나가라 캤답니더.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돼 건강하던 남자의 아내가 밤마다 꿈이 험해 잠을 못 자겠다더니 한 달 만에 저승 간기라예. 아침에 일어나니 죽어 있더랍니더. 그 남자는 홀아비가 되어 당장 그 집에서 나갔다는데 믿을 수 없는 이약 이지예. 진짜 까예?”

진짤까, 나 자신에게 되물어 보는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귀신의 존재를 믿으려니 황당하고, 믿지 않으려니 뭔가 허전하다고 했다. 나는 미신을 믿는 편이다. 점도 믿고 사주도 믿는다. 다만 과신하지는 않을 뿐이다.

밤거리는 아름답고 현란하다. 추한 면을 적당히 감추어 주고 자극적인 부추김을 은근히 드러내는 밤거리의 풍경, 청춘 남녀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생기 차게 들린다.

문득 나는 젊음의 무리에서 너무 멀리 가서 서 버린 느낌이다. 내게도 저런 한 때가 있었던가. 나는 검정 양복 차림의 내 모습을 거리의 유리 거울에 비추어 본다.

“젊다는 기 참 좋구먼.”

내 말에 김 주사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싱긋 웃는다.

“아직 나뭇잎에 단풍 다 들라모 멀었십니더.”

“십 년만 젊었어도 그런 소리 안 하겠네.”

“지는 과장님이 부럽십니더. 여직원들한테 우짜모 그리 인기가 좋습니꺼? 시인 같은 과장님, 멋쟁이 과장님이라 쿠는 줄 아시지예?”

“떼끼, 어른 놀리모 못 써?”

그래, 유쾌해지고 싶다. 진짜 유쾌해지고 싶은 날이다.

우리는 <고향 아구찜>에서 그 처녀를 만났다. 막연하게 정을 느꼈던 처녀의 첫인상은 무척 해맑은 느낌이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에 쌍꺼풀 진 눈이 맑은 처녀였다. 단발머리여서인지 무척 앳되어 보였다. 보통 키에 오동통 해 보이는 몸매지만 한 마디로 귀여운 인상이었다. 어찌 보면 살짝 내리 감는 눈초리에 언뜻 색기를 본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들어서자 손님 시중을 들고 있던 처녀가 반색을 하는데 김 주사를 보고 수줍어하는 모습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다. 사랑을 하는 처녀의 수줍음이 마음에 들어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과장님 머합니꺼?”

내 뒤에 서 있던 김 주사가 등을 밀면서 말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뻔했다. 처녀는 가볍게 내게 묵례를 하고 김 주사 옆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우리 과장님이 첫눈에 진숙 씨한테 반했는 갑다. 들어옴서 봤제? 정신을 못 차리더라 아이가.”

“아이참 경수 씨 너스레는 못 말려.”

“귀한 손님을 뒷방으로 모시지 않고 머하노? 내가 총각 애인을 좀 부리 묵었다꼬 머라쿠지는 않것제?”

보촌 댁이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로 웃으며 우리를 반겼다.

처녀를 따라 주방 옆을 지나갔다. 좁다란 길 안쪽에는 의외로 자그마한 마당이 나오고 안채가 있었다. 아직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양옥처럼 단장을 해서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집이었다.

나는 작은 마당 가운데 서서 화단가에 환하게 핀 소국의 자잘한 꽃망울을 바라보며 당감동 뒷골목에 살던 셋집 풍경을 떠 올렸다. 이런 집에서 셋방살이를 많이 했었다. 어머니는 셋집이지만 손바닥만 한 자투리땅이라도 있으면 꽃씨를 구해다 심어 가꾸셨다. 해바라기를 무척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여름 내 해바라기의 키를 바라보며 사셨다. 하늘을 바라보며 자라던 해바라기가 씨가 여물어 고개를 숙일 때쯤이면 채소전의 좌판을 거두고 여행을 가셨다. 사나흘 만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몹시 지치고 외로워 보였지만 하루 동안 죽은 듯이 누워 주무시고는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시장으로 나가시곤 했다. 어디를 다녀오셨느냐고 물으면 '부처님 뵙고 왔다.'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나는 어머니 말을 믿었다. 아니 믿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머니와 같이 다니던 절 나들이를 내 머리가 굵어지자 공부 핑계로 자꾸만 빼먹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나흘이 일 년 중 어머니가 누리시는 유일한 휴가란 것을 인정하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 역시 어머니의 그 휴가 기간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나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나이가 된 것이었다.

집안이 썰렁해 보이는 것이 이상했다.

“김 주사, 바깥 쥔은 오데 계시노?”

“보촌 아지매도 참 박복한 분입니더. 젊어서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사시는 분이라 예. 딸린 자식도 없이. 팔자 고칠 일이 생기모 좋을 낀데.”

“안으로 들어 오셔요.”

처녀가 현관문을 열면서 말했다. 그 처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우울함이 싹 달아날 것 같았다. 복스럽고 사근사근한 배처럼 티 없이 맑았다.

“자네, 처복은 타고났나 보네.”

김 주사는 그저 싱글벙글이다. 사랑, 참 좋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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