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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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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13. 2022

44. 싸가지 없다

 

싸가지 없다.     


  ‘참 싸가지 없다.’ 내 입이 걸어지는 것도 싹수없는 사람 때문이다. 한 나라의 살림을 맡은 정치꾼도 어느 집안의 형제자매도 싹수없기는 매한가지다. 싸가지는 소갈머리, 싹수의 방언이다.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 흔한 쓰임 말이다. ‘저 자식 참 싸가지 없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싸가지가 안 보이는 것들이야.’ 싹수가 없다는 뜻이다. ‘싹수가 노랗다.’는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밖으로 향했던 눈을 돌려 나를 본다. 나는 싹수가 있는가. 남이 봤을 때 나 역시 싹수없는 여자는 아닐까. 욱하는 성질머리 때문에 남의 흉도 본다. 싹수없기는 매한가지다. 나도 흠집 많은 여자다. 한 성깔 한다. 남 욕하면 내 입만 더럽다. 형제자매간에 의리가 상하는 것도 말 때문이다. 언제 당신들이 부모 생각을 그렇게 했느냐고 따지고 싶을 때 있다. 효도도 생색내기로 전략해버렸다. 참 싹수없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한의원 가는 일이 다반사다. 날마다 가기도 하고, 하루 쉬었다 가기도 한다. 농부와 나란히 누워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한다. ‘할매 할배 없으니 엄마 아빠가 병원 출입이 잣네.’ 무슨 말을 하겠나. 몸은 이미 망가졌다. 일을 조금만 해도 온몸이 아프다. 두 어른처럼 부를 자식도 옆에 없다. 다행이다. ‘자식 힘들게 하지 맙시다.’ 우리 부부 모토다. 아프다는 내색조차 않으려 하지만 수시로 전화를 하는 아이들이 부모 목소리만 들어도 상황 파악이 되는 모양이다. 

 

 시어른의 전화조차 가볍게 받는다. ‘피 주사를 연이틀 달아 맞았더니 좀 낫다.’는 노인이다. ‘아무래도 내가 죽을 때가 된 것 같다. 집에 가야겠다.’는 노인에게 ‘집에 와서 또 어지럽고 아프면 어쩌시려고요. 병원에 느긋하게 계셔 보이소.’했다가 ‘그럼 내보고 병원에서 죽으란 말이냐?’ 역정을 내신다. 노인은 수혈 덕분에 이삼일 잠잠하다 또 퇴원하시겠다고 전화를 하신다. 시어머님 쓰던 재활 보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큰 시누에게 좋은 걸 사 오라 한 모양이다. 사다 드렸단다. 우리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요양원에 계신 시어머님을 뵙고 가면서 농부에게 전화 한 통도 안 했다. ‘좀 그러네.’ 농부도 섭섭한가 보다. 골이 난다. 어쩌다 내 마음이 꽈배기처럼 꼬였나.

 

 부부의 날이란다. 농부가 붓글씨 쓰는 방을 꾸미겠단다. 안방을 치우는 과정에서 나온 헌 책과 잡지, 신문 등을 싣고 고물상에 갔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신난다.’ 농부랑 책 판 돈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몇 천 원 보태야 밥값이 됐다. ‘다음에 돈 없으면 서재에 쟁인 책 한 트럭 싣고 가서 팔자. 밥값은 되겠네.’ 우스개를 했다. 책이 참 소중하던 시절이 있었다. 책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이제 모아둔 책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 오래된 책들부터 치우는 작업도 힘에 부친다. 쉬엄쉬엄 할 생각이다.

 

 수영장에서 친척 형님을 만났다. 시댁에 살 때 참 많이 도와준 형님이다. 그땐 엄청 어른인 줄 알았다. 나이를 따지면 겨우 몇 살 많은데. 여장부 소리를 듣던 형님은 열아홉에 시집와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 형님은 아이엠에프 타격을 받고 도시로 떠났다가 몇 달 전에 읍내로 이사를 오셨다. 든든한 형님이 옆에 있어 좋다. 종갓집 맏며느리였던 형님이 이웃에 살았기에 윗대 제사만 되면 불려 가서 도와드렸었다. 덕분에 제수 거리 장만하는 것을 배웠고,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문중 대소사 뒤치다꺼리하는 것도 배웠다.

 

 그 형님이 혼자되어 돌아왔다. 아주버님도 돌아가시고, 사 남매 혼사도 다 시키고, 손자 손녀 돌보는 것도 끝나자 홀가분해져 고향 근처로 온 것이다. 형님이 저녁을 사준다. 한정식 집에 갔다. 식복이 많아서 나는 살은 못 빼겠다고 우스개를 날리자 오늘이 5월 21일 부부의 날이란다. 부부의 날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른다. 왜 부부의 날을 정했을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타인이었던 남녀가 만나 법적으로, 공식적으로 결혼을 하면 부부다. 모처럼 부부의 날을 만끽했지만 여전히 부부의 날 의미를 모르겠다.

 

 온종일 ‘싸가지 없다.’는 문장에 꽂혀 있어서 그런가. 우리 부부는 ‘싸가지 있는 부부’인가. ‘싸가지 없는 부부’인가. 노인 대열에 들어서서 싹수가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어떤가. 시골 노인은 밥 심으로 산다는 말을 달고 산다. 상노인이 되어도 사흘에 밥이 아홉 그릇이라며 오래 사는 것을 타박하기도 한다. 사는 날까지 밥그릇 축내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나 자기 편리에 의해 살고, 남보다 내가 우선이다. 싹수 타령할 필요 없이 그러려니 하고 사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아니다. 남은 나날은 싹수 있는 삶을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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