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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n 16. 2022

45. 부추 밭의 손님은 누구일까.

부추 밭의 손님은 누굴까.


 텃밭 가에 아주 오래전에 만든 부추 밭이 있다. 딱 손바닥 반절 정도 크기다. 경상도에서는 전구지, 전라도에서는 솔, 표준어로는 부추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불가에서 금하는 파, 마늘, 달래, 무릇, 부추는 오신채에 속한다. 봄에 처음 올라온 부추는 남편 상에만 올린다고 할 정도로 양기에 좋단다. 3년 간격으로 뿌리를 파내 다듬어서 다시 심어줘야 너풀너풀하고 건강하다. 봄에 첫물만 베어 겉절이를 하거나 김치를 담가놓고 먹지만 방치하기 일쑤였다. 가을에 하얀 꽃이 피면 참 예쁘다. 


 우리 집 부추는 가꿀 필요가 없다. 심심풀이 땅콩 먹듯이 부추 밭에 풀이 무성해지면 호미를 들거나 맨손으로 풀 뽑기 놀이를 한다. 직사각형으로 선을 그어놓고 소꿉놀이하듯 뿌리를 들썩여주기도 한다. 부추 잎이 가늘어지고 거름기가 없으면 아궁이의 재를 푹 퍼다 쩔쩔 흩어주면 끝이었다. 음식 찌꺼기를 버리는 거름더미 옆에 있어서 그런지 부추가 이들이들 하고 좋다. 


 올해는 첫 부추가 튼실하게 올라왔다. 며칠 내로 한 소쿠리는 베겠다 싶어 좋아했다. 막상 매운 고추 다져 넣고 부추 전을 부치려고 소쿠리와 칼을 챙겨 부추를 베러 갔다. 부추 잎은 하나도 안 보이고 제비꽃과 비름 등, 잡풀만 무성하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가 집 비운 새에 누가 와서 베어갔나? 야생인 줄 알고 뿌리까지 캐 갔나?’ 의심의 눈으로 봤다. ‘누가 그걸 캐 가? 저절로 죽었겠지.’ 농부의 말에 남을 의심한 나를 자책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낯선 누군가를 의심하다니 벌 받지. 고추장떡이나 해 먹지 뭐.’ 단념하고 잊어버렸다.


 텃밭에 고추 모종 이식하는 날이었다. 고추 모종을 심고 나오다 풀밭이 된 부추 밭을 봤다. 깡그리 없어진 줄 알았던 부추의 새순이 파릇하게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여보, 부추가 있네. 안 죽었어. 누가 뿌리를 파 간 것도 아니네.’ 신바람이 나서 떠들어대며 풀을 매 줬다. 내 손가락 길이쯤 자랐으니 며칠 있으면 베어도 될 것이다. 시장에서 부추를 산 적이 별로 없다. 텃밭에 있는 부추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농부는 부추김치도 겉절이도 즐기지 않지만 나는 좋아한다. 집에서 야생으로 키운 부추는 저장성도 좋다. 


 그러던 어느 날, 부추를 베야겠다고 소쿠리와 칼을 들고나갔다. 없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지난번처럼 깡그리 없어지고 말았다. ‘이건 사람이 하는 짓은 아닌 것 같아.’ 쭈그리고 앉아 부추 뿌리가 있는지 확인을 했다. 야무지게도 뜯어먹었다. 칼이나 낫으로 벤 것이 아니라 뜯어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개 풀 뜯는 소리 같지만 어떤 짐승이 뜯어먹은 거다. 야생 염소나 고라니? 토끼? 고양이는 아닌 것 같다. 개를 묶어 키우자 고라니가 마당에 내려오고 토끼가 마당의 나무 밑에 똥을 싸놓고 간다. 고라니라면 개가 냄새로 알아채고 밤새도록 짖어댈 텐데. 산토끼일까? 마당이 온통 토끼풀 밭이지만 가뭄을 타서 누렇게 말랐다. 토끼가 부추를 먹나? 모르지.


 올해는 부추김치도 부추 겉절이도 부추 부침개도 물 건너간 것 같다. 아직 범인을 확인 못했지만 맛있게 먹고 갔으면 됐다. 사람 손 안 탄 것만도 고맙지 뭐. 괜히 낯선 사람을 의심해 부끄러울 따름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눈여겨 살피면 범인을 알겠지. 어떤 녀석이 부추를 좋아하는지 알아야겠다. 부추 뿌리를 캐내 부추 밭을 다시 만들고 싶지만 허리 병 환자에게 쥐약이니 포기하는 게 낫지 싶다. 텃밭의 다른 작물에 입을 안 댄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여보, 부추가 없어. 부추 찌짐 대신 김치 찌 짐 어때요? 돼지고기 몇 점 다져 넣을까?”

  온종일 창고에서 기계공을 하는 농부에게 소리친다. 헌 분무기를 고치는 중이다. ‘새로 산 건 어쩌고?’ 물었다. 감산을 임대한 청년에게 줬단다. 분무기 하나로 두 집이 같이 쓰자니 번거롭단다. 부품을 사다가 처박아 뒀던 헌 분무기를 꺼내 고친다고 진땀 뺀다. 우리가 농사짓던 감나무는 3백 주가 넘는다. 감산을 청년에게 임대해주면서 가장 취약한 부분에 있는 60주만 농부가 농사를 짓기로 했다. 넓은 감 밭 전체에 사용하던 분무기를 끌어내리기가 힘들단다. 분무기를 따로 설치하는 게 편할 것 같단다. 헌 분무기에 필요한 부품을 사다가 온종일 씨름을 하더니 시험운전을 했다. 분무기가 작동하는 것을 보고 ‘역시 맥가이버네.’ 손뼉 쳤다.

 

 농부는 수돗가에서 분무기 시운전을 할 동안 나는 서둘러 새참 준비를 한다. 부추 밭의 손님이 발길을 끊어야 우리 먹을 부추가 생길 텐데. 평소엔 무심하던 것이 새삼스럽게 아쉽다. 부추의 범인을 짐작할 일이 벌어졌다. 상추를 뜯으러 갔더니 놀랍게도 상추 잎까지 뜯어먹었다. 방울토마토 어린것도 쪼아 놓았다. 발자국을 보니 큰 새의 발자국이었다. 까마귀구나. 아니, 산비둘긴가? 까치인가? 작은 새가 아니라 큰 새라는 것을 짐작했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부드러운 어린 풀도 귀하다. 까마귀도, 산비둘기도, 까치도 채식주의 잔가보다. 그래, 나눠 먹자. 어쩌겠니. 모두 목이 마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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