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촌부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래여 Jun 21. 2022

46. 농주에 얽힌 이야기

농주에 얽힌 이야기  


    

 낮은 길고 밤은 짧아지는 초여름이지만 잠은 없어진다. 젊어서는 새벽잠이 많아 시어머님과 농부의 눈총을 샀던, 올빼미 형이었던 내가 요즘은 새벽 형 농부를 따라잡고 있다. 농부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나도 따라 일어난다. ‘아직 6시도 안 됐다. 더 자라.’ 농부의 다독거림에 잠을 청해 보지만 소용없다. 훤한 창밖, 서늘한 아침 공기가 좋다. 이불을 얌전하게 개켜놓고 거실에 나와 마당부터 본다. 밤사이 달라진 것도 없는데 어제 본 마당이 아닌 것 같다. 바짝 말랐던 마당에 물기가 촉촉한 것이 반갑다. 


 간밤은 잠을 설쳤다. 요양병원에서 퇴원하시겠다고 전화가 빗발치는 시어른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어째야 하나. 집에서 모실 형편이 안 되는데. 백수가 코앞인 어른이 원하는 일이지만 요원하다. 사흘들이 수혈과 약과 주사로 사시는 어른이다. 집에 오시면 며칠이나 견디시겠느냐고 아무리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다. 자식의 도리도 며느리의 도리도 챙기기 어려운 시점에 왔다는 것을 노인은 모르신다. 오직 큰 병원 가서 병을 고치고 집게와 살겠다는 의지만 불태우신다.  


 농부가 거실 구석에 놓인 철제 침대를 끌어당긴다. 아침운동을 시켜준다. 서너 가지 간단한 스트레칭이지만 엉덩이에서 발가락까지 저릿저릿하던 불편함이 사라진다. 농부는 장작을 패거나 보리 산책을 시키러 나가고 나는 따뜻한 물에 아침 약을 먹고 마당 돌기를 한다. 겨우 두세 바퀴지만 걷기 운동을 하고 나면 허리에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디스크, 척추협착증은 걸어야 산단다. 허리 병 환자에게 걷기만큼 힘든 일도 없다. 마당 돌기, 억지로 하던 것이 조금씩 차도를 보이자 재미가 붙었다. 허리가 뻐근하고 무릎이나 발목에 통증이 오면 중단한다. 


 텃밭에 들어가 인사를 한다. ‘밤새 잘 잤는가? 두더지가 또 밥 먹겠다고 설쳤지?’ 고추 곁가지도 따 주고 두둑도 밟아주고 오이꽃, 더덕 순, 토마토 순을 쓰다듬어준다. 토마토가 제법 달렸다. 오이는 쑥 키가 자랐고 토마토 알도 고추도 굵어졌다. 아침 식탁에 올릴 쌈 채소 한 주먹 따서 텃밭을 나온다. 아침은 간단하게. 삼시세끼 먹는 밥이지만 양이 조금씩 준다. 채소를 싫어하고 고기나 면 종류를 좋아하던 내가 아침부터 쌈을 싸 먹기를 즐긴다. 나잇살이라지만 내장지방이 많은 나는 적게 먹을수록 속이 편하다.  


 최인호 소설 <상도>에 보면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던 계영배 술잔이 나온다. ‘가득 참을 경계하라.’는 뜻이 담겼다. 그 잔에 술을 따르면 70%만 차고 나머지는 새어나간다고 하여 절주 배라고도 하던가. 계영배는 한 도공의 인생역전을 담은 잔이다. 강원도 홍천 출신의 도공 우명옥은 도예기술이 뛰어났다. 그는 도공으로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자 순수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 교만해지고 방탕해졌다. 그가 죽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자 다시 처음 마음이 된다. 도공의 길로 이끈 스승 지외장을 찾아간다. 스승은 ‘이제 그릇은 굽지 말고 네 모습을 만들어 구워보라’고 한다. 그는 작은 술잔을 구워 스승에게 바쳤다. 지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 하여 계영배라 했다. 


 인생이란 선택과 절제의 연속이라 하던가. 흔히들 체질이라 하지만 내가 살이 찐 이유는 음식을 절제하지 못했고, 스트레스를 풀 방법으로 음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허하거나 화가 나면 배가 고팠다.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가리지 않고 먹어치웠다. 생활 속의 욕구불만은 식욕을 촉진시켰고 내 의지와 반대로 절제하지 못한다. 소설 <상도>를 읽을 때만 해도 가득 참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수시로 계영배를 들먹였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다이어트도 생각했지만 작심삼일에 그쳤다. 


 농사꾼 아낙은 일에 치어 산다. 일꾼 두 끼 새참과 점심은 필수다. 주부에게 삼시 세 끼는 본업이다. 지치고 힘들수록 댕기는 것은 술이었다. 항상 항아리 두 개를 번갈아가며 농주를 담가 놓고 새참으로 드셨던 시어머님과 대작을 했다. 아이들 젖 먹일 때는 젖 많이 나온다고, 일할 때는 허기를 달래준다고. 속상하면 속 풀이한다고 술과 친해졌다. 분가하니 술이 고팠다. ‘오메, 막걸리 한 병 주세요.’ 시댁에서 일을 끝내고 올 때면 막걸리 병을 차고 오곤 했다.


 그러나 농주 빚는 것도 시나브로 마무리가 되었다. 시어머님은 상노인이 되고, 우리 밀 심는 것도 포기하니 누룩이 귀했다. 한 때 시장에서 누룩을 사다 막걸리를 담근 적이 있다. 내 손으로 담갔지만 시어머님의 막걸리 맛이 안 났다. 농부는 툭하면 집에서 담근 농주 타령을 했었지만 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쏙 들어 가버렸다. 구들목에서 이불을 싸고 앉아 명상에 들던 술 항아리, 이삼일 지나면 보글보글 괴어오르면서 입맛을 다시게 하던 술 익는 향기는 시어머님보다 친정엄마를 그립게 한다. 


 30대 과부였던 할머니의 시집살이는 혹독했다. 유일하게 엄마에 대한 할머니의 칭찬은 ‘에미는 술 하고 떡 하나는 참 잘한다.’였다. 옛날에는 술도 떡도 집에서 했다. 없는 살림인데도 우리 집은 농주가 떨어지지 않았다. 술 좋아하시던 아버지, 친정집 농주는 아버지를 위한 할머니의 사랑이었다. 부모 곁을 떠나 도시 유랑하면서 잊었던 막걸리 맛을 시어머니를 통해 다시 찾았다. 시댁 농주는 새참용이었다. ‘아나, 한 잔 해라.’ 시어머님이 권하는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고부간에 술 힘으로 노동의 고단함을 잊었다. 막걸리 살일까.


 이제 살찌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의사는 살을 빼야 오래 산단다. ‘벌써 오래 살았는데요.’ 대답해 놓고 미안하다. 건강을 돌봐주려는 의사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배시시 웃어준다. 맛 집 순례기행에 대해 열을 올리면 할머니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직 젊다. 늙어봐라. 맛있는 것이 없다. 양도 자꾸 줄어든다. 안 죽으려고 먹지. 배가 고파 먹는 것이 아니더라. 살도 저절로 빠진다. 살 빼려고 애쓰지 마라.’하신다. 


 친정엄마의 마지막을 생각하면 눈물 난다. 밥알도 미음도 목구멍에 걸려 안 넘어간다고 빨대로 물만 한 모금씩 마셨었다. 여든 하나에 돌아가신 엄마는 어디 계실까. 딸 셋 중에 나만 별종이다. 엄마의 식성을 닮은 두 언니는 술도 육 고기도 즐기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 식성을 닮았다. 오늘따라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시어른의 삶에 대한 애착을 보면서 자식들 덜 힘들게 하고 적당할 때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45. 부추 밭의 손님은 누구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