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

<끝>

by 박래여


3.


내가 그 아이 소식을 들은 것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저녁나절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마중 갔다가 돌아온 길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현관문을 열기가 바쁘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야야, 내다”

“엉가가 이 시간에 우짠 일이고? 와 집에 무슨 일 있는 기가?”

속사포처럼 내 쏘는 내 말에 언니는 한동안 대꾸를 하지 않았다. 순간 친정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싶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팔순을 눈앞에 둔 노인네들만 기거하는 친정이라 늘 귀 한쪽은 친정 쪽으로 가 있었다.

“태호가 아푸단다.”

나는 순간 긴장을 했다.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라면 결코 좋은 소식은 아닐 것이라는 지레짐작에서다.

“와? 사고 났다더나? 근데 새삼스레 말라꼬 그 아 이약을 하노?”

“나도 오늘에 사 들은 소식인데. 다 죽게 생겼단다.”

“벌 받는 갑지 뭐.”

내 입에선 야멸친 말이 튀어나왔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보란 듯이 성공해서 잘 산다는 소식 전하지는 못할망정 다 죽게 생겼다니 마음 한 구석이 아릿했다. 정이란 것이 뭔지. 그 아이의 행동거지는 괘심 했지만 불쌍하고 애잔한 마음이 더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박 씨 가문의 귀한 장손, 내 소중한 남동생이었다.

“무슨 병이라 카던고?”

“암이란다.”

“지금 병원에 있다더나?”

“아니다. 집에 있다는데 우찌 된 긴지 잘 모르것다.”

“......”

“연아, 듣고 있는 기가?”

“그래. 얼마나 산다데?”

“확실히는 모르것다. 우째야 되꼬? 가 봐야것제?”

“그래야것제. 근데 집에는 알렸나?”

“알릴 필요가 있것나? 어른들 마음만 아푸지.”

“그래도 죽을병에 걸렸다는데 말 안 하기가 그렇잖아.”

“아직 기다려 보자. 아부지나 옴마 가슴에 멍 하나 더 늘이는 셈이다. 그래도 그놈은 참 잘난 놈이다. 그리 아픔시로 소식 한 장 없더니.”

“언니는 우찌 알았는데?”

“그 여자가 입을 나불거리고 댕기는 모양이더라. 그러니 그 말을 다 믿을 수가 있어야제. 자슥이 아푼데도 시가 쪽에서 병문안도 한 번 안 온다꼬 험담을 하는 모양이더라.”

“소식이나 전하고 그런 소리 한대?”

집안이 잘 되려면 그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그 아내 탓만은 아닐 것이지만 그 아내 탓만 같으니 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에 수긍을 아니할 수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 아이가 장가를 들고부터 태도가 달라졌으니 그 말에도 일리는 있다.

올케라는 여자는 나이가 어렸다. 나와는 십 년이란 거리가 있었다. 그 아이가 결혼하겠다면서 처녀를 데리고 내게 선을 보이려 왔을 때, 스무 살이라는 여자는 화장을 진하게 한 데다 웃음이 헤펐다. 어찌 보면 철이 없는 것도 같았고, 어찌 보면 논다니 판에서 어린 뼈가 굵은 여자 같은 인상이었다. 그 아이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여자는 어려서 부모가 이혼을 했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고 배 다른 동생이 둘이나 있다고 했다. 친 어머니도 재혼을 해서 서울에서 아이 낳고 잘 산다고도 했다. 계모의 학대가 심했단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식모살이를 했단다. 독학으로 검정고시를 거쳐 중학교 졸업장을 땄단다. 지금은 전자 제품 만드는 공장에 다니며 야간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나는 마음고생이든, 생활고든, 고생을 많이 한 여자니까 살림은 야무지게 살겠거니 생각했다. 서로 비슷한 처지니 정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잘 살겠거니 했다. 그나마 성격이 밝아 보여 마음에 들었다.

그 아이는 결혼을 했다. 어머니는 혼수품 일체를 장만해 주고 나는 괜찮은 장롱을 장만해 주었다. 올케는 결혼을 하고도 철이 없었다.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 속옷이 보일락 말락 한 미니 스커트를 입고도 시부모님 앞을 스스럼없이 설치고 다니며 애교를 피웠다. 말을 속에 담아두지 못하고 떠벌리는 탓에 주위 사람들에게서 늘 핀잔도 듣고, 주의도 받았지만 타고난 태성인지 고칠 줄을 몰랐다. 두 아이가 생길 때까지 그 여자는 우리 집 맏며느리 역할을 했다. 말로만 하는 맏며느리였다.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이나. 제사에도 빈손으로 와서 일을 거들고는 갈 때는 수고비를 받아갈 정도였다. 그렇다고 살림을 야무지게 사는 것도 아니었다. 다분히 허영 끼를 타고 난 여자였다. 나는 동생이 여자를 잘못 만난 것 같아 애가 탔다. 여자가 살림 맛을 알면 나아지겠지. 아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던가.

“니는 우짤래?”

“우째야 하것노? 생각해 보고. 가 보긴 해야것제. 언니가 먼저 가 보든가.”

그랬다. 그 아이는 누가 뭐라 해도 내 동생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끈끈한 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처녀 시절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고등학생인 그 아이의 학비를 댔다.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동생의 학비를 대기엔 고생스러웠지만 그 덕분에 우리 남매의 정은 더 돈독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동생이 든든했다. 늘 혼자 놀다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생긴 동생이 예뻤다. 그것은 할머니에게 끝도 없이 구박을 받으면서도 대거리 한 번 안 하시고 참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탓인지 모른다. 청상으로 남매를 키우고 평생을 수절하신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의 소원은 집안의 대를 이어 줄 손자였다. 그 손자를 낳아주지 못하는 어머니는 미움받아도 쌌다. 손녀가 보는 앞에서도 어머니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집안 망친 년, 집안 망친 년’하셨다. 그 광경을 보며 자란 나는 내 밑으로 남동생이 생긴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동생이 생기고 나니 할머니의 불같은 성정이 삭아서 어머니에게 살가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밖으로만 돌던 아버지께서 집안일에 매달리시는 것도 좋았다.

“니는 우찌 지내노?”

“맨날 그렇지 뭐.”

언니랑 잡다한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가 봐야 할까? 죽을병에 걸린 그 아이의 얼굴을 나는 바라볼 수 있을까. 지난 육 년의 공백 기간을 건너뛸 수 있을까? 서른 해를 키워 준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떠났던 그 아이의 행동을 용서할 수 있을까? 병신 같은 놈, 그렇게 나갔으면 잘 묵고 잘 살아야 하는 거 아니가?’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4.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용서가 되는 것일까. 아무리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해도 그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용서가 되는 것일까. 그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짧다는 것을 알고 나니 착잡했다. 하루아침에 칼로 무 자르듯이 부모 간의 정도, 형제간의 정도 싹둑 끊어버리고 남이라면서 돌아섰지만 우리 식구들은 아무도 그 아이가 남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명절 때가 되면 혹시나 오려나 하고 대문간을 서성이며 기다렸고, 손자들 설빔이니 추석빔이니 사서 장롱에 넣어놓고 기다렸다.

“모진 놈, 동창회니 저거 친구 부모들 회갑 년이니 해서 이웃에 왔다가 자고 가도 전화 한 통 안 하더라. 내가 헛고생 한기라. 지는 알 끼다. 내가 지를 우찌 따독임서 키웠는지. 지가 사람 새끼모 그리 몬 할 끼다. 짐승은 구하모 은혜를 갚고, 사람은 구하모 악물을 한다더이 그 말이 딱 맞는 기라.”

어머니는 그 아이가 왔다 갔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목소리가 꽉 잠겨서 전화에 대고 푸념을 하셨다. 그 아이 때문에 우시기도 많이 하셨다. ‘잘 살아야 할 낀데. 우찌 사는 고.’ 하시면서 자나 깨나 걱정이었다. ‘인자 이자삘란다.’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늘 마음이 쓰인다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들을 때마다 그 아이에게 화가 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발단은 욕심이었다. 그 아이는 어려서부터 자기를 편애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 말에 나도 부정은 못한다. 핏덩이 때부터 우리 집에 와서 자랐다면 한 정 더 있을지 모르나 눈치코치 다 살피는 애어른으로 우리 집에 왔으니 선뜻 그 아이에게 정을 주지 못했는지 모른다. 언니는 아주 표 나게 그 아이를 싫어했다. 그것은 나보다 더 현실을 빤히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가끔 그 아이의 어머니가 왔다가 집안에 분란을 일으켜 놓고 가곤 했다. 양식이 떨어졌니 돈이 떨어졌니 하면서 수시로 손을 내미는 것도 탈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님이 돌아가셨다.

할머님이 돌아가시자 여자의 발걸음이 뜨음해졌다. 더구나 할머님이 없는 집에 들어섰다가 ‘당신이 왜 우리 집에 오냐’고 그 아이에게 호되게 당하고 나선 발걸음을 끊었다. 소문에 막둥이라고 애지중지 하던 아들이 자신을 어미라고 부르지도 않고, 집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면서 서러워서 서울 사는 큰 아들네로 간다 하더란다.

하지만 그건 과거사였다.

문제는 그 아이가 결혼을 하면서 우리 집 재산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당연히 장손인 그 아이 몫이 될 재산인데 서둘러 갖고 싶어 했다. 친정 마을이 관광지가 되면서 땅 값이 금값이 된 것도 그 아이의 욕심에 부채질을 한 셈이었다. 그 아이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집에서 목돈을 가져가는 횟수가 늘어났다. 급기야는 선산 몫으로 정해 둔 산을 팔아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그 산은 전체가 송이버섯 군락 지였다. 그 아이는 산을 팔아 사업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도와줄 수 없다.’ 자연히 부모님이 제동을 걸게 되었고, 언니가 깃대를 잡았다. 아버지도 단안을 내려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모든 재산은 아버지 사후에 상속하도록 하고 산과 얼마간의 땅은 어머니 앞으로 등기 이전을 해 버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우리 자매랑 공동 분배를 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날, 아버지 칠순 잔칫날이었다.

그 아이는 아침부터 술을 퍼마시기 시작했다. 저녁때는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거나하게 취했다. 손님들이 돌아간 후 엄마 아버지께 슬슬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이 놈아, 정신 좀 차리고 살아라. 애들한테 부끄럽지도 않냐?’ 대수롭지 않은 언니의 한마디에 술 상자를 뒤엎고, 잔칫상에 올랐던 그릇을 때려 부수며 패악을 부렸다.

“난 이 집하 곤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놈이 라요. 알기나 하요? 그걸 안 께네 내 앞으로 아무것도 안 주는 거 아니요? 영감탱이 죽을 때까지 머슴살이하라고요? 아부지, 누야들이 아부지 죽고 나모 아나 니 재산이다 함서 내줄 것 같소? 아나 콩콩 이요. 아부지하고는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이놈한테? 인자 끝이라요. 다시는 이 집에 안 오요. 야들아 가자. 인자 이 집 구석 하고는 인연 끝났다.”

그 아이는 술기운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 모르나 평생 하지 말아야 하고, 듣지 말아야 할 말을 쏟아내 놓고 제 식솔을 거느리고 떠났다. ‘니가 와 이라노?’하면서 붙잡는 어머니의 팔을 뿌리친 것은 올케였다.

“지도 마 벌써 알고 있었십니더.”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문제는 그 아이가 술만 취하면 어머니께 전화를 해 댔다.

“새경 주소. 우리 옴마가 재산 보고 날 보냈다디요. 한 밑천 잡아서 인자 우리 옴마 모시다가 살라쿠는데. 그랄라꼬 머슴살이 죽은디끼 했는데, 새경도 안 주고 쫓아내요? 내 일해 준 삯 내놓으란 말이오. 이 할망구야.”

“너는 누가 뭐라 해도 박 씨 가문의 장손이다. 우리 죽고 나모 이게 다 니 재산 아니냐.”

“나는 제사 안 지내 줄 끼요. 예수님 믿소. 호적도 파 가 끼요.”

하면서 복장 거리를 시켰다.

제사 때나, 명절 때도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애가 달아 전화를 했다.

“인자 그 집 며느리 아니니 함부로 오라 가라 하지 마이소.”

올케라는 여자의 말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몹시 아파 한 달 동안 그 아이가 있는 도시의 종합 병원에 입원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아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날마다 헛소리를 하며 그 아이를 불렀다. 그러나 끝내 오지 않았다. 아마 내 마음이 그 아이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이 그 시점이 아닐까 싶다.

“인자 그 아는 내 아들 아니다.”

어머니도 마음의 문을 닫은 듯했지만 말만 그랬다. 언제나 기다렸다.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버지도 언니도 나도 기다렸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세상 풍파를 겪다 보면 부모 맘 알겠지. 하면서 기다렸다. 그 사이 6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언니의 전화를 받은 지도 꽤 여러 날이 흘렀지만 나는 그 아이를 찾아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친정에 갔다. 오랜만에 친정 부모님께 맛깔스러운 밥상이나 차려 드리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안고 간 걸음이었다.

고향 마을은 산과 산으로 감싸인 채 변함없었다. 푸른 대밭 속에 웅크린 단층집은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포근해져 왔다. 대나무 울타리는 여전히 집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마루에 올라서기도 전에 그 아이 소식부터 전했다.

“야야, 엊그제 그 아가 왔다 갔다. 올매나 고맙던지. 너거 할매가 돌본 기라. 지가 잘못했다고 막 움시로 용서해 달라고 빌더라. 몸이 많이 아푸담서 약초 좀 구해 달라더구나. 영지하고, 인정 쑥이랑 이것저것 챙겨 주고 병원비에 보태라고 급돈도 맹글어 줬다마는 무슨 병인지 니는 모르나? 꼬챙이 겉이 말랐더라. 살박(삽짝)에 들어설 때까지 그 안 줄 몰랐니라. ‘어무이’ 소리에 하마터면 내가 뒤로 발랑 넘어질 뿐 했니라. 무슨 병인지 말도 안 하고 괜찮을 끼라 소리만 하더라. 저거 동무하고 같이 왔더라. 니는 아나? 가가 무슨 병인지?”

“옴마도 참, 내가 우찌 알아예? 연락도 안 하고 산지가 언젠데.”

나는 놀랍고 당황한 마음에 시침을 뚝 떼었다. 어차피 그 아이가 제 발로 돌아온 이상 언젠가는 부모님도 그 아이의 병명을 알게 되겠지만 내가 서둘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 또 온다고 했어예?”

“다음 달에 할배 제사가 안 있나. 그때는 며누리하고 아거들 데꼬 오겠다더라. 큰 머스마가 벌써 핵교 댕긴단다. 약초를 좀 구해 놨다가 챙기조야 할 낀데. 인자 너거 아부지도 맘 정했단다. 그 아가 조라쿠모 재산 몽땅 갸 앞으로 해 줄 끼란다. 우리 제사 모실 아는 그 아 뿌잉께 맘 안 상하고로 다 조삐고 말라는 구나.”

“그리 하이소. 어차피 그 아 몫인데.”

“너거 엉가는 얼런도 없다. 그 아가 사업한다고 나부대다가 잘못 되모 우짤끼냐고. 우리가 길바닥에 나가 앉으모 우짤 끼냐고. 죽을 때꺼정 재산 넝가주모 안 된다 캐서 그 사단이 난 기라. 너거 엉가 말도 일리는 있제. 인자 그 아가 병만 나사모 지 앞으로 해 줄란다. 아푸고 나모 심성이 달라진께 괘한컷제.”

하얀 머릿결에 구부정한 몸피를 하신 어머니는 얼굴 가득 화색이 만면하였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그 아이의 병명을 알릴 수가 없었다. 또한 그 아이에게 한없이 고마움을 느꼈다. 진작 그랬어야 하는 것을, 그렇게 용기가 없었느냐고 나무라고 싶었다. 육체에 병이 들만큼 힘들어했으면서 왜 진작 오지 않았느냐고 붙들고 펑펑 울고 싶었다.

‘바보 같은 놈, 부모님이 천년만년 사는 것도 아닌데 느긋이 기다리면 다 제 것이 될 것을 뭐가 그리 급해서. 설마 누나들이 재산 차지하려고 할까 봐 그리 조급했던가.’

이상하게 그 아이에 대한 응어리가 봄비에 잔설 녹듯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가 너무도 보고 싶었다. 금세라도 누야! 하면서 삽짝을 들어설 것 같았다. 나는 조만간 아이들을 데리고 그 아이를 찾아가 위로해 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감나무 잎사귀에 앉아 반짝거리는 해맑은 날이었다.

친정에서 사흘을 쉬다가 집에 돌아오기 위해 짐을 챙기고 있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석기 할매 집이지요?”

쇳소리가 나는 노인네의 목소리였다. 짜증이 가득 묻은 노인네의 목소리에 이상하게 거부감이 먼저 일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도 딱딱해졌다.

“석기요? 그런 사람 모르는데요.”

“대체 아지매는 뉘요?”

“이 집 딸인데요.”

“내 개똥이 에미다. 석기 할아부지 바까 봐라.”

“지금 안 계신데 왜 그리십니까?”

“엊저녁에 우리 개똥이가 죽었다. 지 애비가 봐야 입관을 시키든지 말든지 하제.”

사람은 왜 이렇게 늘 뒷북만 치게 될까?

멍하니 창밖을 바라봤다. 하얀 나비가 마당 가득 배회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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