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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밤거리는 낮보다 더 화려하다. 그는 거리의 간판에 걸린 빛을 몽땅 혼자서 지고 온 것처럼 환하게 웃으며 내 앞에 섰었다. 그날 나는 너무 놀라고 좋아서 어린애처럼 팔짝팔짝 뛰면서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웬일이야?”
“당신이 저녁도 안 먹었을 것 같아서. 당신 좋아하는 찜 먹으러 가자.”
“우리 가게 처음이란 거 알아?”
“그랬나?”
“상현 씨에게 전화해 보지 왜?”
“그 친구 바쁘잖아.”
“내가 해 볼까? 어제저녁에도 우리 가게에 왔었는데.”
“그만둬. 잘 있다는 거 알면 됐지 뭐. 못 나가나?”
“아니, 우리 아가씨 보고 카운터 지키라고 하면 돼.”
나는 그와 시장 안의 단골 아귀찜 집에 들어갔었다.
“아이고 잉꼬부부께서 요새는 어째 그리 얼굴 보기 힘들 당가?”
산청 댁이라는 오십 대 아주머니는 호들갑스럽게 우리를 맞아들였다.
식탁 앞에 푸짐한 아귀찜과 소주 한 병이 놓였다.
그는 소주병을 따서 나의 잔에 술을 따르고 그의 잔에도 술을 따르더니 건배하자는 말도 없이 혼자서 거푸 잔을 비웠다. 그를 마주 보고 앉은 나는 차츰 내 앞에 거대한 무인도 하나가 버티고 앉아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외로운 섬처럼 그가 내 앞에 앉아 있는 데도 그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너무나 먼 섬 같았다. ‘상현 씨라도 부를걸.’ 잠시 생각했다.
그가 집에 칩거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인 상현 씨에게도 연락을 거의 끊고 지냈다. 어쩌다 상현 씨가 전화라도 하거나 찾아오면 무덤덤하게 받아 줄 뿐 그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다들 제 밥벌이하기도 바쁜데 부담 준다고 싫다고 했다. 한 동안은 등산을 다녔다. 배낭을 메고 집을 나가면 사나흘씩 산을 타다가 지쳐서 돌아오곤 했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잔을 만지작거리며 기다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평상시 답지 않게 묵직한 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나도 섣불리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소주병이 반이나 빈 후에야 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당신 혼자 살 수 있겠지?”
“무슨 소리야?”
“집을 한 채 봐 놨어. 그 뒷산도 맘에 들더라. 머구 골이란 곳인데 참 아담하고 좋았어. 나도 그런 곳에 들어가 살았으면 좋겠더라. 그래서 지난번 등산 갔을 때 사실은 그 빈집에 대해 알아보러 갔었어. 흥정만 되면 한 채 사려고. 아니면 빌리던지.”
“가서 살 것도 아니면서 시골집은 왜?”
“우리 도시 생활 싹 청산하고 당신하고 나 시골 들어가 살까? 텃밭이 딸린 집에서 책이나 읽고 살았으면 좋겠어.”
“난 시골이 싫은데.”
“그래, 당신은 도시 사람이지.”
“꼭 이사 가려고 작심한 사람 같네.”
그는 허허 웃더니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잊은 줄만 알았다. 농담 삼아 한번 내 의향을 떠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 빛이 너무도 맑아서 눈이 시린 그런 날이었다. 출근 준비를 하는 내 뒤통수에 대고 그가 말했다.
“그 집을 빌렸어. 할머니 한 분이 사시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다네. 그 집 친척 된다는 아저씨가 관리를 하는데 그분 말이 그냥 살아도 된대. 비록 내 집은 아니지만 그 집이 마음에 쏙 들더라. 마당이 축구장만 해. 고목이 다 된 감나무랑, 밤나무가 담장 안에 있어. 당신도 보면 금세 맘에 쏙 들 거야. 나 오늘 거기 갔다 올게”
그렇게 집을 나선 그는 그 길로 두 달 여를 집에 발걸음도 하지 않았다. 가끔 전화를 하곤 했지만 집을 고치는데 필요한 물건을 구해서 택배로 부쳐 달라는 부탁이 전부였다.
“나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그런데 어떻게 참어?”
“그래도 참아야지 어떡하니?”
보고 싶어도 참는다는 말을 어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을까. 상대방이 믿도록 만들어 버리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아닌 줄 알면서도 믿고 싶은 것이 또한 여자 마음이다. 십 수년을 바라봤지만 내가 아는 그는 속을 통 내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몇 달 만에 내 앞에 앉아 있다. 날마다 얼굴 맞대고 사는 심드렁한 부부처럼 마주 앉아서 수제비 덩이를 건져 먹고 있다. 그가 없는 자리를 메워 볼 요량으로 사다 둔 소주 한 병이 바닥나고 있었다. 그는 주로 저 혼자 마시고, 내 잔이 비면 말없이 술잔을 채웠다.
나는 그의 침묵이 두렵다. 그 침묵 뒤에 이어질 절망의 그늘이 무섭다. 한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나와 버릴 뻔했다. 나는 그의 침묵을 견디기엔 너무 약했다. 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해 뛰쳐나갔던 그 기간조차도 나는 그의 침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의 침묵은 허물어지는 모래 늪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지난날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번엔 더 쉬울 거야.”
나지막하게 한 내 말을 그는 알아들었던 것일까.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아.”
“지금 당신의 침묵이 그래.”
“그랬어? 또 운다. 바보같이.”
나는 금세 글썽해지는 눈초리의 눈물을 찍어 냈다.
“바보. 겁내지 마. 난 예전 그대로야.”
“이야기해 봐. 무슨 일로 갑자기 왔어?”
“낼 저녁이 구월 구일이잖아.”
“어! 어머니 제사!”
“그래. 이번 제사는 시골에 가서 지내고 싶어. 당신이 제수 거리 좀 장만해 줄래? 늘 하듯이 간단하게.”
“미안해. 당신 아니었으면 잊을 뻔했네.”
나는 정말 미안해졌다. 음력 구월구일은 양수의 극인 구가 겹친 날로서 고대 중국으로부터는 명절로 삼았을 정도로 일 년 중 가장 좋은 날로 쳤다. 지방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날은 집도 없이 죽은 영혼들이 떠돌다 제 집을 찾아간다는 날이었다. 그날은 집안의 친 인척 중에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거나 객사를 한 사람을 위해 제사를 지내 주면 그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간다는 날이다. 해마다 음력 구월 구일 밤이면 시어머니를 위해 제사를 지냈다. 시어머님은 돌아가신 것일까? 살아 계신 것일까? 그의 친어머니 존재를 안 것은 결혼을 하고도 몇 년이 지나서였다.
하루는 전화가 왔었다.
“나야, 좀 멀리 출장을 왔거든. 갑자기 오는 바람에 당신에게 이야기도 못 했네. 빨리 일 보고 돌아가려고 했더니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래서 부탁인데 오늘이 구월 구일 맞지? 어머님께 나 대신 당신이 밥 한 그릇만 따뜻하게 지어서 건너 방 낡은 상 위에 차려 놓을래? 긴 말은 담에 만나서 하고, 꼭 부탁한다.”
“어머님? 무슨 소리야?”
“그렇게만 알고 있어.”
그제야 나는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가끔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문제가 바로 그의 친어머니 존재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와 연애할 때도 결혼 후 몇 년이 지나도록 그의 친어머니 존재를 몰랐었다. 가끔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있었다. 그는 맏이인데도 시댁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명절날에도 당일 아침에 시댁에 가서 잠깐 차례 상만 지내고는 금세 일어서거나 어떨 때는 아버님과 어머님께 선물만 보내고 우린 그냥 편하게 지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할 정도로, 부모님이 보고 싶지도 않느냐고 하면 가까이 있으니 자주 보는데 뭘 그러느냐고도 하고, 우리 대신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니 제수씨 보기 미안해서 그런다고도 했다.
그 말은 사실이긴 했다. 고개 하나를 넘으면 시댁 마을이었다. 부모님은 시동생 내외가 모시고 살았다. 나는 이름만 큰 며느리지 진짜 며느리 노릇은 동서가 다 하고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시댁 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못 하는 큰 며느리, 자식도 없이 한 주먹 거리도 안 되는 개를 자식처럼 기르며 사는 이상한 며느리로 호가 난 것은 고사하고 시어머님은 늘 나를 어려워하셨다. 동서나 시동생, 심지어 시아버님까지 우리가 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명절이나 시댁 대소사에 봉투만 보내고 빠지는 횟수도 늘어났다. 시댁에 가 보면 내가 설 자리가 없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네 가족이 어찌나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지. 나는 늘 이방인 같아서 손님처럼 인사만 드리고 물러나기 바빴다. 그것이 편하기도 했지만.
“고마워, 당신!”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내일 제사장 봐서 나도 같이 갈까?”
“수제비 진짜 맛있네. 한 그릇 더 먹고 싶은데.”
“알았어.”
나는 그의 그릇에 국자로 냄비에 담긴 수제비를 가득 떠 담으며 물었다.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어?”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는 또 말을 잘못했구나 싶어 가슴이 쿵 떨어졌다. 침묵이 길어지는 것이 불안해 빈 그릇을 챙겨 식탁에서 일어나려는데 그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냥 있어. 우리 할머님이 그러셨지. 참 심성 곱고 착했던 사람이 어머니셨다고. 너무 착해 빠져서 마음병에 걸린 거라더군. 우리 어머니의 꿈이 뭔 줄 아니? 작은 텃밭이 딸린 삼 칸 집에서 남편과 아들 딸 낳고 오순도순 사는 거. 어머니는 그 꿈을 이룰 수 없었지. 왠지 알아? 낳지 말아야 할 나를 나았기 때문이지. 어머니는 어린 핏덩이를 놔두고 집을 나갔다더군.”
“왜?”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였기 때문이겠지?”
그는 숟가락질을 하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난 늘 그런 열등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 내가 생기지만 않았다면 어머니는 집을 나가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
“그랬어?”
그랬다. 난 그에게 친어머니에 대해 물을 수 없었다. 사람에겐 누구나 아킬레스건이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원수지간이 될 각오가 없다면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그와 같이 살면서 내가 터득한 그의 아킬레스건은 친어머니였다.
그는 빙그레 웃더니 맛있게 수제비 그릇을 비웠다. 소주병도 바닥이 나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열여섯에 김 씨 가문에 시집을 왔어. 아버지는 스무 살이셨지.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거야. 옛날에는 아이 못 낳는 게 다 여자 잘못이라고 생각했잖아. 시집온 지 3년이 지나자 할머니의 구박이 심해졌지. 애 못 낳는 여자는 쫓겨나도 할 말이 없던 시절이니. 어디 할머니의 구박뿐이겠어? 아버지는 이웃에 살던 처녀와 바람이 났던 거야. 공공연하게 소문이 나자 할머니는 이웃에 집을 한 채 사서 아예 그쪽 처녀를 둘째 부인으로 들어 앉혔다더군. 더구나 그 여자가 임신을 했다는 소문을 들은 어머니는 까무러쳤지. 그 길로 며칠을 끙끙 앓아누웠던 어머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긴 했지만 정신이 약간 이상해지기 시작했다더군. 내가 뱃속에 든 줄도 모르고. 할머니가 어머니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보고야 알았다니까. 두 여자가 한꺼번에 아이를 가진 거지. 우리말에 시앗을 보면 돌부처도 돌아앉는다잖아.”
“시앗을 보면 아이 못 낳던 본처가 아이를 밴다는 말을 나도 들은 적이 있어.”
“그래. 어머니와 그 여자는 한 달 간격으로 아들을 낳았어. 그런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어머님이 나를 낳고부터 증세가 더 심해지셨나 봐. 내게 젖을 안 먹이려고 했다더군. 그러다가 어느 날 집을 나가셨대. 그 길로 집에 안 들어오셨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대. 그 여자는 나를 거두어 당신의 아들로 키운 거지.”
“그 여자가 지금의 어머님이시구나. 그런데 도련님은 한 살이나 어리잖아.”
“아버지는 나를 장남으로 먼저 올리고 동생은 일 년 있다가 출생신고를 했다더군.”
“당신은 그 사실을 언제 알았어?”
“중학교 때.”
“제사는 언제부터 지내는 거야?”
“사실은 지금 어머님이 오래전부터 지내고 계셨다고 해. 친엄마가 집을 나간 다음 해부터. 그러다가 내가 장가를 가자 나보고 지내라더군.”
우리는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그는 나를 꼭 껴안고 어려서 할머니나 이웃으로부터 귀동냥한 어머니에 얽힌 사소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었다. 나는 어느새 그의 손을 잡고 푸른 평원을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어머님이 손짓하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