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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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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07. 2022

48. 없으면 없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노인이 되면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야 한단다. 젊어서 악착스럽게 모았던 돈도 늙어서 풀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인이 될수록 돈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지는 것이 사람이라고 본다. 죽음의 문턱에 들어도 가진 돈을 풀 줄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돈만 악착스럽게 잡고 있다고 죽음이 비껴가는 것도 아니다. 노인이 죽고 나면 가족 간에 재산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자주 본다.


 예전에는 맏아들이 재산 상속을 하는 것이 당연했지만 지금은 부모를 모신 자식에게 우선권이 있다. 또한 부모를 모시지 않은 자식에게도 권리가 있다. 법정 소송까지 가면서 M분의 1을 찾으려 하는 재산분쟁도 본다. 부모의 재산이 많으나 적으나 돈에 대한 욕심을 접기는 어려운 것 같다. 또한 돈 벌기는 어려워도 쓰기는 쉽다. 남의 돈을 횡령하여 도박에 탕진하는 사람도 본다. 힘들이지 않고 수중에 들어온 돈이기에 그 돈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소치는 아닐까. 고생해서 번 돈은 그만큼 애착이 강하다. 


 왜 돈 이야기를 하냐면 시골 노인들은 돈을 꼭 쥐고 쓸 줄을 모른다. 남이 챙겨주기를 바라면서도 당신이 남에게 베푸는 것은 인색하다. ‘돈 모아 놨다 뭐 할래요? 돌아가시면 자식들 간에 분쟁만 남겨요. 시장 다닐 수 있을 때 먹고 싶은 것 사 드시고 사고 싶은 거 사세요. 한약도 지어 드시고 쇠고기도 사다 드세요. 노인이 될수록 단백질 보충은 필수랍니다.’ 그래도 소용없다. 자식들이 오면 맛집 모시고 간단다. 좋은 옷도 사다 준단다. 


 지인이신 할머님이 내게 간장게장 담그는 법에 대해 묻는다. 간장게장이 먹고 싶은데 담그는 법을 잊어버렸단다. 할머니는 퇴행성관절염이 심해 걷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지난 오일 장날은 반찬거리를 잔뜩 사서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것을 봤다. 승용차를 세워 짐과 할머니를 실어다 동네 입구에 내려드렸다. 고맙다며 다음에 맛있는 것 사주시겠다지만 할머니는 헛돈 안 쓰신다. 간장 게장도 농협 마트 음식 코너에 가서 구입하시라고 했다. ‘비쌀 텐데.’하신다. ‘할아버지 연금 받으신다면서요? 돈 아끼지 마시고 사서 드세요.’ 노인은 고개를 흔든다.


 나도 귀찮아서 잘 담그지 않는 간장 게장이다. 한 때 우리 집 식탁에는 간장게장이 자주 올랐다. 시장에 알이 밴 싱싱한 암 꽃게나 껍질이 부드러운 싱싱한 돌게가 보이면 망설임 없이 샀었다. 살아있는 싱싱한 게를 깨끗이 손질하는 것부터 갖은 재료를 넣어 육수를 끓여 식혀 붓는 것도 일이다. 무조건 음식은 재료가 싱싱하고 정성이 들어야 맛있다. 다시 한번 할머니께 고생하지 마시고 농협마트에 가서 사다 드시라 했다. 그 간장게장이 입에 안 맞으면 입에 맞게 국물을 개조해서 맛나게 하는 비법 공개까지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만들어진 간장게장을 사 드실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 돈 아껴 뭐 할 거냐고. 뭉치 돈 꿍쳐놓고 돌아가시면 자식들 살판나겠다고 뼈 있는 말을 했지만 들은 척도 않으신다. ‘언제 게장 한 번 담가 줄 수 있어?’ 그 말을 하고 싶은 눈치라 얼른 자리를 피했다. 나도 음식 하기 진력난 여자 아닌가. 어쩌다 마음이 내키면 뚝딱뚝딱 만들긴 잘한다. 마늘종도 그렇게 담가놓고 잘 먹는 중이고, 매실장아찌도 맛이 드는 중이다. 동네 형님이 자잘한 양파를 한 망이나 선물로 주는 바람에 저 양파를 장아찌 담가볼까 궁리하는 중이지만 귀찮다. 나도 별식이 먹고 싶으면 맛 집 찾아 주문할 생각이다.


 “우리 저녁 뭐 먹지?”   

 내가 운을 떼자 농부는 대뜸 알아차린다. 저 여자가 또 밥 차리기 싫구나.  

 “피 순대 먹으러 갈까?”

 내가 피 순대 좋아하는 줄 아는 남자다. 


 문제는 내가 가고 싶은 맛 집과 농부가 가는 맛 집이 다르다는 거다. ‘거기 피 순대 맛없던데.’ 그러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집은 꽤 멀다. 휘발유 1리터 값이 2,100원을 넘어섰는데 장거리 가자는 말도 못 하겠고 밤길 운전도 힘들 테고. 가까운 곳에 좋다. 운전기사 맘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집은 두 번째 실망한다. 피 순대는 다 팔리고 없단다. 내장국밥 한 그릇 먹고 왔다. 돼지국밥이 느끼하다. 매운 고추를 양껏 다져 넣어도 느끼하다. 내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만들어내고 싶을 정도다. 김치도 주문 김치를 내놓는다. 김치에 젓가락질도 않았다. 


 그래도 저녁 사준 농부에게 ‘당신 덕에 잘 먹었어. 고마워’ 인사한다. 돈 쓰고 기분 나쁘지만 괜찮다. 한 끼 팔아줬으니 됐다. 불경기라는데 음식점 주인도 먹고살아야지. ‘내 입이 별난 거야. 손님들이 많았어. 다른 손님들은 맛있다고 포장까지 해 가는데.’ 그렇게 고쳐 생각해도 속은 자꾸 느끼하다. 농부에게 미안해서 ‘외식 자제해야겠다. 우리는 저축한 돈도 매달 나오는 돈도 없으면서 외식이 너무 잦은 것 같지?’ 농부는 대답이 없다. 그래 봤자 작심삼일이다. 없으면 없는 대로 각자 살아갈 방법이 생기겠지. 천하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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