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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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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11. 2022

49. 혼자보다 둘이가 좋다.

 혼자보다 둘이가 좋다.   


  

  오이 다섯 포기 심은 것이 효자노릇 톡톡히 한다. 아침마다 서너 개씩 따 모았더니 한 소쿠리다. 6월 초에 서울 형님 오셨을 때 모았던 백다다기와 가시오이를 몽땅 싸 드린 후 다시 모아진 거다. 반찬 해 먹는 것, 생으로 먹는 것 합치면 오지다. 누구 갖다 줄까. 주변을 둘러보니 여름철 농촌은 집집마다 오이는 흔할 것 같다. 오이장아찌를 담글까. 오이소박이 할까. 둘이 먹는 것도 한계가 있다. 반면 한 더위에 잔손질 많이 가는 장아찌를 담가야 하나. 갈등도 인다. 그래도 오이를 버릴 수야 없지. 우선 오이소박이부터 담가 식감을 즐기기로 했다. 

 

 오전 내내 아랫마을 형님이 준 마늘을 깠다. 손가락 끝이 아릿해지는 것보다 허리가 더 아프다. 오래 앉아있는 것도 오래 서 있는 것도 힘든 몸이다. 마늘 한 소쿠리 씻어 놓고 소쿠리 들고 텃밭에 갔다. 가뭄으로 푸성귀가 귀할 때는 부추도 상추도 새들의 양식이었지만 약비 두어 번 다녀가니 텃밭 가에 바랭이 같은 풀이 무성하다. 덕분에 부추를 거둘 수 있다. 날마다 부추 자라는 것을 지켜봤다. 겉절이를 해도 좋을 만큼 자랐다. 몽땅 베니 소쿠리 가득이다. 부추 뜯어먹던 날짐승도 내 부지런한 발길에 긴장했나보다.

 

 부추를 다듬어 놓고 오이소박이에 들어갈 재료를 챙겼다. 오이는 씻어 먹기 좋게 등분하여 십자 칼집을 내고 소금물을 끓여 부었다. 오이가 알맞게 절여질 동안 매운 고추 몇 개 다지고 새우젓과 이태 전에 담근 젓갈 섞고 맛술 조금 붓고 양파와 마늘 다져넣고 부추를 잘라 넉넉하게 넣고 고춧가루를 풀었다. 찹쌀 풀을 끓일까 말까 하다 생략하기로 했다. 오이 자체에서 우러난 맑고 시원한 국물을 좋아한다. 우리 집 음식은 조미료가 없는 옛날식이다. 오이소박이 속에 들어갈 양념은 조금 짠 듯 버무려야 한다. 

 

 마침 봉사활동 갔던 농부가 왔다. 점심이라며 네모 곽을 건넨다. 내가 좋아하는 꽈배기와 찹쌀 도넛 등, 튀김요리다. 농부가 사 온 것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잘 절여진 오이의 물을 뺀 후 소를 넣기 시작했다. ‘짜면 어쩌지? 양념 간이 너무 센 것 같아. 오이도 짭짤하게 절여졌는데.’ 열심히 손맛을 보탰다. 김치종류나 장아찌는 재료 준비과정과 시간이 걸려 번거롭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밑반찬으로 제격이다. 갑자기 손님이 와도 반찬 걱정 덜 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만들기 시작하면 정성들여 맛내기에 집중한다. 오이소박이 한 통을 완성하고 나니 피로가 확 몰린다. 

 

 농부는 사나흘 잠을 설쳐서 그런지 허리가 아프단다. 농부는 침 맞으러 한의원 가고, 나는 수영장에 갔다. 수영보다 걷기 운동을 많이 했다. 그 시간에 수영장에서 만나는 할머니들은 칠팔십 대다. ‘일 못 해 먹겠다. 이런 저질 체질로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어떤 할머니가 한숨을 쉬자. ‘우리가 일이나 하나. 먹고 노는 것도 힘들어 쩔쩔매는데. 죽을 때까지 아야, 아야 하면서 살겠지.’ 또는 ‘요새는 반찬 만들기도 딱 싫다.’는 할머니께 ‘자네는 영감이 있잖나. 하기 싫어도 영감 밥은 챙겨줘야지.’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는 수다 속에 나는 물고기가 된다.   


  저녁에 오이소박이를 접시에 담아냈다. 돈가스도 튀겨 냈다. 오이소박이 맛을 본 농부가 맛있단다. 혼자 살면 돈가스 튀길 일도 오이소박이 담가 먹을 일도 없겠지. 농부가 없는 사나흘 밥솥에 밥을 짓지 않았다. 말 그대로 대충 때웠다. 단식을 해 볼 생각을 했으니 배꼽시계가 어찌나 정확한지 삼시세끼 한 끼도 건너뛰지 못했다. 무엇을 먹든지 먹어야 했다. 농부랑 먹을 때는 격식을 차리지만 혼 밥은 격식이 필요 없어 편하긴 했지만 혼자는 불안하다. 둘이어야 온전하다.

 

 농부가 없던 사흘 동안 챙겨먹은 삼시세끼를 돌아본다. 아침은 대충 건너뛰고 점심은 국수를 삶아서 먹거나 라면을 끓여 먹었고 식은 밥을 달걀과 볶아 먹었다. 국수는 간장, 깨소금, 참기름만 붓고 김치 몇 가닥 걸쳤다. 양푼 째 들고 나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 먹기도 하고, 식은 밥을 김치랑 비벼 쪽마루에 앉아 먹기도 했다. 먹다 남은 음식은 면발이건 밥알이건 마당에 던져 놓고 새를 불렀다. 새들이 종종걸음 치는 것을 구경하며 느긋하게 즐겼다.

 

 혼자 사는 노인이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이 되면 단백질 보충이 필수라는데 푸성귀만 먹거나 한 가지 음식만 먹기 쉽다. 영양의 불균형이 올 수밖에 없다. 자식들이 사다 준 반찬거리가 냉동실과 냉장실에 가득 쟁여 있어도 음식 만들기가 싫다는 혼자 사는 노인들 심정 이해하고도 남는다. 우리 나이쯤 되면 남이 해 준 음식이 맛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나겠지만 마음과 몸이 늙어가는 증거다. 아무튼 농부가 오니 든든하다.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혼자보다 둘이가 좋다. 꿈보다 해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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