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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16. 2022

50. 백세 시대를 산다는 것

백세 시대를 산다는 것     


  지방 선거 투표장에서 장수 할머니를 봤다. 경북 어디에 산다는 118살 할머니란다. 시대가 바뀌면서 장수노인이 는다. 팔구십 대는 평균이다. 백 살을 넘긴 노인들 소식을 흔하게 듣는다. 지금은 환갑잔치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어렵다. 부끄럽다고 환갑잔치 같은 것은 없다. 두 어른이 환갑일 때는 동네잔치도 했고 여행도 보내드렸다. 졸수에도 동네잔치를 해 드렸다. 자식들은 모두 두 어른이 팔십을 넘기면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고 느꼈고 시어머님이 치매와 노인성 우울증을 앓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두 어른은 구십을 넘어 백 살을 바라보지만 여전히 살아계신다. 이젠 죽음조차 무심하게 된다. 돌아가시거나 살아계시거나 매일반이란 생각을 한다. 병원과 집을 전전하다가 요양원으로 모실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되면서 두 어른보다 노인이 된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 부부가 아픈 것도 노인성 질환이라는 것을 안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했지만 나이 들면서 젊어 고생한 것이 밖으로 드러난다는 사실도 인정하게 된다. 


 인터넷을 뒤졌더니 한국도 장수 노인이 많다. 어떤 노인은 현재 123살이라지만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고 한다.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좋은 약과 건강한 식단과 밝은 성격이 장수를 가름하는 것 같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지만 그 스트레스는 남이 주는 것보다 내 속에서 형성된단다. 천하태평으로 산다면 오래 살까? 오래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죽을 때까지 건강한 정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되려면 마음의 주인이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중국 청나라 때 사람인 이청운은 256세까지 살았단다. 한의사였던 그는 백 살 때에 한의학 부분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고 200세에도 대학에서 학술강연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장수 비결은 명상과 공동체 삶과 일이라고 한다. 그는 ‘마음을 늘 조용히 하라. 거북이처럼 앉고, 비둘기처럼 활기차게 걷고, 개처럼 잠을 자라.’고 했다. 구기자를 꾸준히 장복했다는 설도 있다. 부인이 24명이나 되었다니 그가 남긴 자손은 얼마나 많을까. 중국의 인구수를 늘리는 것에도 일조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그가 바로 장수하는 사람의 대명사 삼천갑자 동박 삭이라 불러 마땅하지 않을까. 실제 동박삭은 62세에 병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행복했을까? 


 노인이 백 살을 넘기면 자식들 몇은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다. 자식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다면 장수하지 못할 것이다. 아흔다섯 살 정도 된 할머니가 계셨다. 할머니를 모시던 아들이 이승을 떠났다. 사람들은 노인이 충격받을까 봐 쉬쉬하다가 결국 이실직고했단다. 할머니의 반응은 어땠을까. ‘죽을 때 돼서 죽었는데 내가 어쩌겠나.’하더란다. 할머니를 모시던 자식의 죽음조차 남의 일처럼 바라본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사람이 얼마나 삶에 집착하고 이기적이면 그렇게 될까.


 아흔 중반의 노부부가 있다. 할아버지는 치매환자에 귀도 잘 안 들리고 할머니는 건강한 편이란다. 몇십억짜리 집을 지니고 계신 노부부는 집을 주택연금에 넣어놓고 매달 일정 금액을 받아쓴단다. 돈을 꽉 쥐고 산다는 뜻이다. 그 집도 몇 남매가 있지만 아들들은 모두 부모에게 등을 돌렸단다. 노부부를 딸이 돌본단다. 아흔 중반의 할머니는 ‘저승사자가 저 영감을 잡아가지 왜 안 잡아가느냐.’고 화를 부리며 ‘이러다 내가 죽겠다.’ 하신단다. 할머니는 어디가 조금만 불편해도 딸을 불러 병원에 간단다. 딸은 사생활이 없다고 하소연하면서도 친정 부모를 돌본단다. 돈 때문일까. 정 때문일까. 


 부모의 사랑은 내리사랑이라지만 그것도 의식이 건강할 때 이야기다. 상노인이 되면 자식이 죽든지 말든지 관심 밖이고 삶에 대한 집착만 남는 것 같다. 죽음에 임박한 노인환자도 죽기 싫다는 강한 의지만 남는다고 하지 않던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라면 애정관계에 있던 주변 사람들까지 편해질 텐데.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오래 살면 어떻게 변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자. 받아들이는 자세만 바뀌지 않도록 나를 단련하는 일에 전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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