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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촌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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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래여 Jul 21. 2022

51. 우담바라 꽃을 본 날

 우담바라 꽃을 본 날   

  

  아침에 지은 밥도 있고 어제 담근 오이소박이도 맛나고, 매실 장아찌, 마늘종 장아찌 등, 장아찌도 있고, 국물김치도 있고, 김과 달걀도 있고, 대충 꺼내놓고 한 끼 해결해도 충분한데 밥 차리기가 싫다. 국수를 삶아볼까. 국수 삶는 것보다 있는 밥, 있는 반찬이 더 편한데. 괜히 그에게 투정 부린다. ‘국수 삶을까? 밥 차릴까?’ 그는 대뜸 눈치 챈다. ‘나가 먹고 싶지?’ 맞다. ‘내가 사 줄게. 나갈래?’ 눈치를 본다. ‘마누라가 사 준다는데 나가야지.’ 그가 능글거린다. ‘나 용돈 들어왔어. 여성농업인 바우처 십만 원 받았거든. 그걸로 사 줄게.’ 나는 큰 선심 쓰는 것처럼 군다. 


  남자들은 참 단순하다. 여자가 밥 차리기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감도 못 잡는다. 외식을 좋아한다고만 생각한다. 그 돈으로 반찬거리 사면 몇 끼를 먹을 텐데. 외식으로 돈 쓰는 게 아깝지 않은 주부가 얼마나 될까. 집 밥만 고집하는 남자의 속내는 뭘까. 아내랑 나가는 것이 불편해서는 아닐까. 밥하기가 왜 싫은데? 있는 반찬 차리면 되잖아. 하늘 같은 남편을 위해 그 정도는 해야지. 밥 순이 사 표 내고 싶다고 툴툴거리는 아내에게 일침을 가하는 남편들이 의외로 많다. 직장에 다녀도 들일을 함께 해도 집에 들면 아내는 부엌으로 직행하고, 남편은 씻고 느긋하게 신문이나 본다. 아내가 '밥 자시러 오세요.’ 할 때까지.  

 

 농부는 읍내 형님을 청하잔다. 전화를 했지만 부재중이다. 아직 퇴근 전이지 싶다. 소머리 곰탕집으로 갔다. 농부는 그 집 음식이 입에 맞는지 둘이 외식하러 가면 거기 가잔다. 나는 별로다. 나는 등 너머 피 순대를 먹으러 가고 싶지만 내색을 않고 그를 따른다. 남이 차려주는 밥상만으로도 족하기 때문이다. 물가도 기름 값도 고공행진인 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만원 하던 물건이 만 오천 원이다. 일단 한 번 오른 물건 값은 내리지 않는다. 농산물 값은 올라봤자 풍년이라는 언론의 한 마디에 폭삭 내려앉지만 생필품이나 농약 값, 비료 값은 한번 오르면 그 가격 유지다. 내리기 어렵다. 

 

 나는 통 크게 논다. ‘온 김에 이 집 소머리 수육도 맛보고 가자. 당신이 맛있다며?’ 3만 원짜리 작은 걸로 시켰다. ‘곰탕은 한 그릇만 하지.’ 3만 원짜리 소머리 수육은 나 혼자 먹어도 모자라겠다. 다행히 바닥에 깐 양파와 육수 맛이 괜찮다. 고기는 맛있었다. 곰탕 한 그릇은 나누어 먹었다. 배는 부른데 어째 더 허전해진다. ‘소머리 하나 주문해서 집에서 고울까?’ 시댁에 살 때는 그랬다. 기름기 제거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소머리편육은 맛있다. 사골 곰 하는 것에 질려서 더는 싫은데도 아이들이 오면 먹이고 싶어서. 모정이란 누가 가르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거다. 

 

 현관문을 열다가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여보, 이리 와 보세요. 우담화가 있어요. 딱 세 송이.’ 농부도 신기해한다. 현미경을 가져와서 확대해서 본다. 가는 실 끝에 하얀 점이 맺혀 있다. 우담 화는 불교 경전에서 말하는 상서로운 꽃, 우담바라 꽃이다. 인도에 우담바라 나무는 있지만 꽃은 3천 년 만에 한 번만 핀다는 전설의 꽃이다. 여래가 태어날 때나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만 그 복으로 피는 꽃이란다. 실제로 우담바라는 꽃이 아니라 진딧물을 잡아먹고 산다는 풀 잠자리 알이라는 설이 있다.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으니 신비감을 더하긴 한다. 우담바라 꽃이든지, 풀 잠자리 알이든지, 복을 전해주는 전령사 같아서 반가웠다. 그것도 현관문에 피었으니 귀하다.  

 

 나는 ‘우담바라!’ 가만히 외워본다. 전설의 꽃, 부처님이 위로 차 보낸 꽃 같다. 겉으로는 평온을 가장해도 속내 조금만 뒤집어보면 두 어른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 돋아난다. 시어른께서 병원 나들이하는 날이다. 예정은 삼촌이 모시고 가기로 되어있었지만 요양병원에서 보호자가 안 와도 된단다. 요양병원에서 모시고 다녀오겠단다. 퇴원하시고 싶다는 시어른을 다독이기 위한 조치일까. 자식들 만나면 병원에 다시 안 돌아가시겠다고 떼를 쓰실 것을 아셔서일까. 우담바라는 그런 내 마음의 갈등을 쓰다듬어주기 위해 보인 것은 아닐까. 아침에 시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별말씀은 안 하시지만 기운이 쭉 빠진 목소리였다. 

 

 어쨌든 우담바라 꽃이든 풀 잠자리 알이든 상관없다. 소원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시어른께서 요양병원에 적응하시어 마음 편하게 계셨으면 좋겠다. 시어른은 24시간 간병인이 붙어있어야 할 상황이다. 현실을 받아들이시면 좋겠다. 자식에 대한 원망이나 미움, 분노조차 내려놓고 마지막 수순이라 생각하시고 편안해지셨으면 좋겠다. 늙어가는 우리 부부도 하루하루가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몸이 개운하길 바라는 것이 어불성설이겠지만 사는 날까지 살아갈 것이다. 죽음을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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