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단편소설>
산삼이 따로 없었네.
“하이고, 환장하겠네.”
김 노인은 온몸을 쓱쓱 긁어대며 끙끙 앓았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그 깡촌이 뭐가 좋다고 찾아 댕기다 이 고생인가 말이다. 그놈이 내한테 무슨 억하심정으로 그걸 먹인단 말인가. 내가 그것 때문에 멈스리가 나서 고향 등진 놈인데. 그 영감탱이가 밉단다꼬 그랬지. 지난 분에 하도 밉상을 떨길래 한 마디 했더니 덟었던기라. 심뽀가 꼬꾸랑했던기라. 그걸 가심에 찡가 놨다가 분풀이를 한기라.”
김 노인은 속에서 열불이 나서 죽을 맛이다.
병원을 다닌 지가 벌써 근 열흘이 되었건만 몸은 나을 낌새가 없다. 온몸이 새빨갛게 부풀어 올라 근질근질한 것이 한 번 긁기 시작하면 체면이고 나발이고 다 던져버릴 정도로 박박 긁어도 시원치가 않았다. 이 병은 밤이 되면 더 심했다. 따끈한 방에라도 들면 밤새도록 열꽃이 힘겨루기를 해서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잠자리를 따뜻한 안방 놔 놓고, 불도 안 땐 옆방의 냉돌방으로 옮긴지도 근 열흘이 넘었다. 일흔이 넘은 노인네가 찬방 신세를 지니 감기까지 달려들어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병증이 심각했다. 아내는 아예 같이 밥도 안 먹으려 든다. 그 병 옮을까 봐 수건도 따로 쓰지, 그릇도 따로 쓰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지 날마다 씻고 닦고 삶아내느라 허리가 휜다고 구시렁거렸다.
“니 거가 건질건질 하제? 인자 사내구실 못한다고 구박이가? 올매나 됐다꼬?”
김 노인이 언성을 높이자 아내는
“아이구 남새시러버라. 누가 들으모 우리 보고 이팔청춘이라 카것소. 말도 안 되는 소리 작작하고 퍼뜩 병이나 나사 보소. 그 의사 순 돌팔이 아닌 교? 다른 병원에 가 보던가.”
“이 등신아, 이건 시간이 가야 낫는 병이란 거 모리나?”
김 노인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이 상했다. 누구보다 더 자신을 잘 안다고 믿었던 아내의 은근한 구박이 얄밉기도 했다.
“내 옆에 오지 마소. 촌에서 나사 오던지 하제. 만다고 왔소? 촌이 좋다면서?”
“임자는 내캉 몸만 안 섞으모 괜찮은데 뭔 걱정이고? 인정머리 없는 여편네 같으니.”
김 노인은 아내에게 왈칵 역정을 내 보지만 그런다고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따가운 것이 가라앉는 것도 아니다. 소금물에 씻어도 보고, 병원에서 주는 연고로 떡칠을 해도 증상은 나을 기미가 없다. 항문이나 샅, 겨드랑이 등, 땀이 차고, 살이 부드러운 곳이 더 심하다.
하루는 아내가 어찌나 정나미 떨어지게 구는지 심술도 나고 ‘오냐 니도 당해봐라.’ 싶은 오기도 생겨 밤 되기만 기다렸다. 사실 이 병은 밤이 되면 더 심해지는 병이니 잠을 잘 수도 없고, 불알 밑을 긁다 보니 슬그머니 회도 동했다. 속으로 비아그라라도 사 먹고 시작할 걸 그랬나 하면서. 물건은 젊어서처럼 무쇠 같지는 않지만 아직 제 구실은 실하게 하는 터라 아내의 속살 속에라도 밀어 넣고 휘저으면 잠시나마 화딱질 나는 가려움증을 잊을 수 있을 듯싶었다.
김 노인은 슬그머니 잠자는 아내 옆에 다가가 팬티 속으로 손을 쓱 밀어 넣었다. 한참을 조몰락거려도 가만히 있기에 팬티를 벗기려 들자 ‘에구머니나 이 영감탱이가 돌았나 베.’ 기겁을 하면서 발딱 일어난 아내는 옆방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다음 날 병원에 간 김 노인은 의사에게 짜증을 냈다.
“주사 맞을 때뿐이고, 약도 바를 때뿐이니 의사 양반 제발 좀 안 건지럽거로만 해 주소.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겠소.”
“할아버지는 진짜 왜 이렇게 안 나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사흘만 주사 맞고 연고 바르면 낫는데.”
피부과 전문의도 툴툴거렸다. 간단하게 치유되어야 할 병이 열흘이 넘도록 끌자 의사로서 면목도 없는 데다 이 피부병은 남에게 전염을 시킬 수도 있으니 의사인 자신도 예사로울 수 없을 것이다.
김 노인은 이래저래 심기가 불편했다.
사건은 열흘 전에 시작되었지만 이야기는 지난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태 전부터 도시에 사는 김 노인은 심심해지면 촌에 사는 동생 집에 가서 쉬었다 오곤 한다. 쉬었다 오는 것은 핑계일 뿐, 실은 동생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고 오는 것이다. 그는 동생 집에 들어서자마자 신사복을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텃밭에 나가 채소를 돌보거나, 닭을 마당에 쫓아 내놓고 닭장을 치운다.
동생은 남의 빈 집을 빌려 부엌과 목욕탕만 현대식으로 고쳐 혼자 산다. 처음에는 그 집에 딸린 논 두 뙈기를 얻어 농사를 짓다가 얼마 전부터 읍내에 있는 친구의 공장에 다닌다. 김 노인이 본격적으로 동생의 농사일을 거들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다. 마침 동생이 이웃집 단감단지를 얻어 도작을 하려던 참이라 더욱 김 노인의 손이 필요했다. 말이 도작이지 공짜나 다름없다. 주인아저씨가 돌아가신 후 단감단지를 돌볼 여력이 없는 아주머니가 공짜로 지어먹으라 했다. 자식들이 모두 도시에 나가 사니 단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동생은 해마다 그 집 식구 먹을 만큼 단감을 갖다 준다. 아주머니는 자식들에게 한 두 박스 보내주는 것만도 고마워 어쩔 줄 모른다.
김 노인은 그동안에 조용하고 한가로운 농촌 살이에 흠뻑 정이 들어버렸다. 게다가 수입도 짭짤했다. 지난가을에도 김장 거리를 시골집에서 전부 해결했다. 논에 심은 무와 배추로 해결했을 뿐 아니라 고추도 100근이나 땄다. 시골이라면 치를 떨던 아내도 통통한 무와 알이 꽉 찬 배추와 잘 말린 건 고추를 한 자루 갖다 주자 이게 ‘웬 떡인가’ 하면서 아들과 딸 집에 싸 보내는 재미로 입이 귀에 걸렸다. ‘너거 아베가 삼촌 집에 가서 직접 가꾼 무공해다. 짐치가 이래 꼬시고 맛있는 것 첨 묵어봤다. 다 너거 아베 덕이다.’ 아들네, 딸네 집으로 택배를 보내고 나서 전화통을 잡고 수다가 늘어졌다.
어디 그뿐인가.
“영감, 전구지 베 올 때 안됐소? 짐치도 담글 때가 됐고, 알도 다 묵었는데. 촌에 가서 좀 챙겨 오시구려. 데럼이야 혼자 몸잉께 많이 묵다 안 하끼고, 반은 써카 삐기 더 하겠소?”
아내는 은근히 촌에 안 가느냐고 김 노인의 등을 떠 밀 정도가 되었다.
도시 살이란 늘 그날이 그날 같다. 김 노인도 도시의 여느 노인들처럼 눈 뜨면 ‘오늘은 누구를 불러내 무엇으로 소일하며 하루를 넘기나’ 했던 사람이다. 집에서 붓글을 쓴다거나, 동네 비원에 가서 내기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것이 고작이었건만, 촌에 들어와 살아보니 하루가 어찌나 잘 가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논에 거름을 낸다거나 김을 맨다거나 하며 괭이질을 좀 한 날은 밥맛이 꿀맛이었다. 텃밭에서 푸성귀를 뽑아다가 물에 헹구어 날 것으로 된장에 쿡쿡 찍어먹어도 밥 한 그릇이 금세 바닥나곤 했다. 잠도 잘 왔다. 날씨가 쌀쌀하면 아궁이에 장작 몇 개만 포개 불을 지펴 놓으면 방바닥이 슬슬 끓었다. 흙냄새 풀풀 나는 방에서 땀을 혼곤히 흘리며 자고 일어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뿐해서 더 좋았다.
‘촌에 사는 기 지긋지긋해서 도망치듯 벗어난 곳인데. 허참.’
김 노인은 혼자 군담을 하곤 한다.
꽃바람이 살짝만 불어도 몇 달을 고생했던 젊은 시절, 무조건 농촌이 싫어 도시 속으로 편입했던 김 노인은 육십이 넘어서야 새삼스럽게 흙을 가꾸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동생이 혼자 촌에 들어가 살겠다고 했을 때는 ‘미친놈’이라고 욕설을 퍼 붓기도 했지만 어느새 동생 집에 와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건강도 눈에 띄게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해지는 벱이제.”
하지만 그 푸짐하던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이 되자 김 노인도 어쩔 수 없이 시골행이 뜸해졌다. 농촌의 겨울은 도시 노인에겐 견디기 어려운 한 철이다. 한 겨울에도 짧은 반팔로 살 수 있는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노인이 사방이 뻥 뚫린 시골집에서 밤을 보낸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다.
김 노인도 겨울 두어 달은 도시의 아파트로 돌아가 지냈다. 가끔 맛있는 삼계탕이나 백숙이 먹고 싶다거나 아내가 알이 떨어져 간다고 하면 깔끔한 양복에 두툼한 털외투를 걸치고 시골집을 찾았다. 하루나 이틀쯤 동생과 지내다가 집에 갈 때면 닭장에서 닭 두어 마리 잡아 다듬어서 통에 담고, 그동안 동생이 모아 둔 계란을 한 바구니 담아놓고 호기롭게 아들을 불렀다.
승용차로 모시러 오라는 전갈이었다.
김 노인이 농촌 살이에 정을 붙이면서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라면 자신감을 되찾은 거였다. 예전에는 용돈조차 궁해 어딜 나가려면 아내와 아들, 며느리의 눈치가 보여 늘 망설이곤 했다. 아들이 설령 ‘아버지 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해도 ‘괜찮다. 바쁜 네가 그랄 필요 없다. 급하모 택시 타도 된께내 내 걱정은 말거라.’ 하면서 손사래를 치곤 했었다.
그런데 지난해 단감 가격이 좋아 주머니가 두둑해진 데다 아내와 며느리가 무공해 식품의 맛에 반해서 은근히 김 노인의 시골 행을 종용하면서부터
“갖고 갈 짐이 많다. 온제 올래?”
김 노인은 양손에 들고 갈 정도의 짐이라도 당당하게 아들을 불렀다. 여기에는 또 다른 계산이 숨어 있었다.
바로 이웃집 홍 노인 때문이었다. 김 노인이 처음에 혼자 사는 동생 집에 오자 옆집에 살던 홍 노인이 알은체를 했다. 양복을 말쑥하게 입고 왔을 때는 높은 사람 대하듯 예예 하더니 어느 날부터 수시로 들락거리며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농사를 짓는다고 설치자 콩 칠팔 칠하면서 선생 노릇을 하려고 들었고,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사사건건 걸고넘어졌다. 김 노인이야 물론 농사일을 해 본 경험이 까마득하니 모든 것이 서툴 수밖에 없다. 농기계를 빌린다거나 논 골을 타서 거름을 내는 방법까지 일일이 홍 노인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섭섭지 않게 막걸리도 사 주고, 담배도 사 주었다. 홍 노인도 처음엔 ‘아이구 내가 뭘 알아서예. 어르신이 더 잘 아시 겄지 예.’하면서 자신에게 물어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던 사람이 어느 날 통성명을 하고부터
“내보다 나가 많은 줄 알았더마 갑장이네. 띠동갑이라쿵께 참말로 더 반갑다이. 인자부터 친구끼리는 말 놓는 기 우떻것노? 농사도 지 본 사람이 잘 아니께 모르것거들랑 머시든지 내한테 물어봐라.”
하면서 말을 깠다. 김 노인은 기분이 좀 요상했지만 갑장이라니 친구 아닌가. 서로 존댓말 보다 말을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러자고 했다. 홍 노인은 친구, 친구 하면서 경운기로 논도 갈아주고, 거름도 내 줄 정도로 싹싹하게 굴었다. 김 노인은 홍 노인에게 의지해서 생전 처음으로 농사꾼 노릇을 제대로 배우는 셈이었다.
그러나 친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조금 두라는 말이 있다. 홍 노인은 새벽 댓바람에 눈만 뜨면 김 노인의 집을 찾아왔다. 자기 집처럼 들어와서는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해가 똥구녕을 쑤시는데 이즉지 자느냐’고 언성을 높이지 않나, 예사로 주방에 들어가 술을 찾아다 부어 먹질 않나, 닭장에 들어가 알을 주워가질 않나, 형님이 되어서 동생이 오십이 넘도록 장가도 안 보내고 뭐 하느냐고 따지질 않나. 그 동생에게 얹혀 지내려는 심보가 놀부 심보 아니냐고 놀리질 않나.
김 노인은 홍 노인에게 점점 정나미가 떨어져 노골적으로 집에 오는 것을 싫어하게 되었다. 그래도 홍 노인은 눈치가 없었다. ‘김 샌은 몇 분을 갈차 조도 그걸 제대로 몬 하나? 눈썰미가 그래 가꼬 우찌 살았노? 도시에는 정신 똑바로 몬 채리모 눈 깜짝할 새 코 베 가는 세상이라 카드마. 낫살은 오데로 묵었시꼬. 내랑 갑장이라 캄서, 그것도 몰랐나? 배운 사람이 더 멍치랑께’하면서 퉁을 주기도 하더니 아예 시도 때도 없이 선생 노릇을 하려고 덤볐다. 한 마디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상 무식한 영감으로 보는 것이었다. 더구나 가을 내내 동생 네 얹혀서 집 봐주고 가을걷이를 돕자 오갈 데 없는 불쌍한 노인네로 아주 믿는 눈치였다.
김 노인은 슬슬 홍 노인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야 이것저것 챙겨주고, 가르쳐 주니 도움이 많이 됐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받아들일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지난봄이었다. 막 점심을 차려 먹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홍 노인이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홍 노인은 외양간에 넣을 풀 한 짐을 베다 놓고 오는 길이라며 수건으로 겉옷을 툭툭 털더니 수돗가에서 대충 손을 씻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점심 안 묵었제? 같이 먹세.”
“나는 맨바닥에 앉아 묵던 질이 들어서 높은 걸상에 앉아 밥을 무모 밥이 넘어갈랑가 모르것네.”
하면서 넉살 좋게 맞은편 의자에 턱 걸터앉았다.
“요새는 촌에도 다들 양옥집 짓고 사는데. 친구도 새 집 지으라모.”
김 노인은 그만 정나미가 떨어져 가시 돋친 말을 한마디 내뱉었다.
“돈이 씨가 몰랐는데? 그래도 우리 아들이 자꾸 집을 새로 짓자쿠는데. 내사마 빚내서 집 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고, 그렇다고 저거들이 돈을 추렴해서 지 줄 형편도 아니고. 여편네는 하루를 살다가 죽어도 좀 편하게 살아보자고 달달 볶아대지만. 내사 생각 없거마.”
말을 하는 동안에도 홍 노인은 자꾸만 궁둥이를 뭉그적거리는 것이 몹시 불편한 모양이었다.
김 노인이 식탁에 된장을 보글보글 끓여 내 올리고, 어린 배추를 뽑아다가 겉절이를 해서 내놓고, 밥 한 공기를 퍼다 홍 노인 앞에 놨더니
“하이고 이거, 간에 기별도 안 가것네. 한 그릇 더 수북이 도고. 거 있는 양푸이도 일로 주고. 맵은 고치는 없나?”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이 시키는 대로 해 줬더니 양푼에다 공기 밥 두 그릇을 붓고, 배추 겉절이랑, 된장을 퍼 넣고, 고추도 뚝뚝 분질러 넣더니 쓱쓱 비벼 허벅지게 먹었다. 김 노인은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슬쩍 홍 노인의 비빔밥을 한 숟가락 떠먹어 봤더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
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밥 묵다 말고 와 우노?”
“울기는, 자네 밥 묵는 것을 보니 우리 옴마가 푸성귀 넣어 비벼주던 그 꽁보리밥이 생각나서 그렇제.”
“그럴 끼라. 요새 회관에 가모 동네 여편네들이 모이가꼬 꽁보리밥 해 묵는 기 유행이란다.”
김 노인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못 살고 가난한 시절 입에 물린 음식이 그리워진다는 것은 살날 보다 살아온 날이 길다는 뜻이겠지. 김 노인은 꼴망태 메고 풀 베려 가는 것이 참으로 무서웠다. 말벌이나 땅벌, 뱀이 무서웠고, 뱀 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옻나무였다. 옻이란 말만 들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가려웠다.
옻나무는 두 종류가 있다. 개옻나무와 참옻나무다. 개옻나무는 오비자라는 벌레집 열매가 약재다. (사전에서는 개옻나무와 붉나무가 다르다하고, 오배자 벌레집이 달리는 것은 붉나무라고 하는데. 우리 지방에선 개옻나무라 한다.) 참옻나무는 어린 순을 먹을 수 있고, 껍질이 약제지만 독성이 강해서 아무나 먹을 수 없다. 체질에 따라 알레르기 반응이 심하게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김 노인처럼 옻 말만 들어도 몸에 반점이 돋아나는 특이체질은 옻 때문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옻은 독성이 강한 대신 뱃속을 따뜻하게 한다는 속설이 있다. 닭이나 개와 함께 푹 달여 먹으면 원기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김 노인의 고향엔 유난히 옻이 많았다. 논두렁 밭두렁, 길섶에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옻나무 천지였다. 동네 이름조차 옻나무 골이었다. 김 노인에게 봄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그때만 해도 집집마다 좀 산다는 집은 농우 한 마리씩은 마구간에 매어 있었다. 농우는 살림 밑천이었다. 풀이 파릇하게 돋기만 하면 아이들은 목동이 되어야 했다.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도착하면 지게를 지고 소를 몰고 산으로 가야 했다. 산에다 소를 쳐 놓고 나면 풀을 베야 했다. 풀 한 짐 베어놓고 나면 자유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가장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지만 김 노인에겐 지긋지긋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만약 멀리 옻나무라도 있다면 그날 밤부터 당장 고통의 시작이었다. 온몸에 쭉쭉 줄을 긋듯 붉은 반점이 도드라지기 시작하면 약이 없었다. 어머니는 된장을 퍼다 발라주기도 하고, 나중에는 먹을 것도 없는 귀하디 귀한 달걀을 구해다가 노른자위를 으깨어 발라주기도 하고, 옻은 씻으면 더 심해진다고 솥 밑에 숯검정을 긁어다가 밀가루와 반죽을 해서 발라주기도 했지만 한 번 타기 시작한 옻은 시간이 지나 저절로 사그라질 때까지 고통을 참아내야 했다. 긁어서 심해지면 진물이 줄줄 흘렀다. 진물이 흐르면 소금물로 씻겼는데. 그 아픔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요즘 세상이야 병원도 가깝고, 좋은 약과 주사도 있어 병원 며칠 들락거리면 낫는다지만 그 시절 시골구석엔 병원도 없었다. 약이래야 조약이 전부였다. 할머니께 들은 민간요법을 어머니가 답습해서 아이에게 전수하는 것이 전부였다.
김 노인은 옻이라면 만정이 떨어졌다. 오죽하면 스무 살 드는 해 동갑내기 이웃 처녀에게 장가를 들면서 도시로 떴을까. 옻나무가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 천국일 것만 같았던 것이다.
일단 도시 속으로 편입한 김 노인은 고향을 등지다시피 했다. 어렵사리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 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기반을 잡자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논밭 떼기도 헐값에 팔아치웠다. 다시 돌아볼 것도 없다는 듯이 외면한 고향이었다. 어쩌다 동창회니 뭐니 해서 고향 근처에 갈 일이 있어도 옻나무 골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친구를 근처로 불러내곤 했다. 특히 봄에는 아예 옻나무 골 뒤편에 있는 선산에 벌초도 가지 않았다. 부모님이 살았을 적에는 부모님과 동생들만 고향을 들락거렸지 자신은 늘 일 핑계로 빠지곤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친인척 어른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선산에 모시지 않고 도시 근교의 공원묘지에 모셨다.
세월이 흘러 김 노인도 옻나무에 대해 어지간히 면역이 생겼는지, 옻 소리만 들어도 온 몸이 근질거리고 경직되면서 두드러기가 일던 증상이 없어졌다. 살아가면서 체질은 여러 번 바뀐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체질도 바뀌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옻에 관한 한 마음을 풀 수가 없었다. 간간히 죽마고우였던 고향 친구를 만나면 옻나무 골 소식을 듣곤 한다. 옻이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김 노인인 줄 아는 친구는 그냥 나무 골이라 하지만 그 나무가 돈 나무가 되면서 옻나무 골에도 옻나무 구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힘들어졌단다. 일부러 산에 있는 옻나무를 파다가 밭에 심어 재배를 하는 집도 생겼다고 한다.
김 노인은 슬그머니 옻나무 골에 대한 그리움이 일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등 하나 넘으면 되는 것을 고개를 외로 꼬고 고향 쪽으론 눈을 돌리지 않았건만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슬그머니 고향 흙이라도 만져보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옻나무 골 앞들에는 보리 이랑이 푸르게 일렁거릴 것이다. 그 힘들었던 보릿고개가 지금 아닌가. 옻 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즈음 아닌가.
“우리도 꽁보리밥 한 분 해 묵어 볼라나?”
김 노인이 숟가락질을 하면서 꽁보리밥에 대한 추억에 잠긴 듯이 한 마디 하자 홍 노인은 밥을 먹다 말고 물끄러미 김 노인을 바라봤다.
“자네, 와그리 보노? 내 이마에 밥풀 붙었나?”
“자네는 꽁보리밥에 데지도 않았나? 나는 꽁보리밥이고 죽이고 안 묵네. 허연 이 밥이 좋아. 여편네들이 꽁보리밥 해 묵다다꼬 지랄하는 거 보모 참 기 차더마. 나는 건강식 우짜고저짜고 함서 비싼 보리쌀 사다가 섞어 묵는 거 보모 세상 참 요지경이란 생각을 한다네. 그 소원 소원하던 쌀밥 묵은지 올매나 된다꼬 보리밥 타령인지 원. 사람이 그리 간사시럽은 종자네 그랴. 호강에 바쳐 벼랑박에 똥칠 하는기제.”
홍 노인은 발끈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김 노인은 어이가 없어 숟가락을 잡은 채 멀뚱히 앉아 있었다.
지난가을, 김 노인은 기어이 언성을 높였다. <계속>